우리 동네 건강검진센터 ‘초록숲길 백련산’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6.11.10. 09:58

수정일 2016.11.10. 16:16

조회 2,031

백련산 정상 은평정 아래 자리한 매바위 ⓒ김종성

백련산 정상 은평정 아래 자리한 매바위

가끔씩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우편물이 오곤 한다. 굳이 병원에 들러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자연 속에서 내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곳이 산이 아닐까 싶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특히 하체근력과 폐, 심장 상태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 동네마다 자리하고 있는 뒷산은 그래서 천연의 건강검진센터다.

백련산은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 사이에 있는 해발 215m의 산으로 북한산과 안산 사이에 자리한 아담한 동네 뒷산이다. 백련산의 가장 큰 매력은 두 구(區) 지역을 지나는 긴 능선이다. 거칠지 않고 완만한 능선길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산으로, 안산의 편안함과 북한산의 산행 기분을 모두 누릴 수 있어 좋다. 서울시와 사단법인 생명의 숲이 '초록숲길(Green Trails)'로 지정할 만한 곳이다. 산자락엔 이 산 이름을 유래한 고찰 백련사라는 절도 있다.

다른 산들처럼 동네마다 나있는 들머리가 많지만 산의 능선을 종주해보기 위해서는 백련산 남쪽 서대문 문화회관(서대문구 백련사길 39) 뒤편에 있는 백련산 근린공원에서 출발하면 좋다. 능선까지 오르는 돌계단, 나무계단은 숨을 가쁘게 하고 허벅지를 뻐근하게 했지만, 내 몸에 대한 무관심과 게으름을 반성하게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산 공기에 호흡도 안정되고 덜 힘들 무렵 수목이 울창한 능선길이 나타났다. 산에서 만나는 가을 전령사 억새들이 피어나 반갑게 손을 흔들며 여행자를 맞아주었다.

수목이 울창하고 능선이 부드러운 백련산길 ⓒ김종성

수목이 울창하고 능선이 부드러운 백련산길

넉넉한 능선 길 외에 혼자 지나가야 할 정도로 좁은 오솔길 같은 숲길이 있어 좋다. 주인과 같이 산책 나온 반려견들도 흙길, 숲길이 좋은지 연신 곳곳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닌다. 길가에 서있는 여러 참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종류가 있는 참나무는 도토리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산속에 사는 동물들의 먹이가 될 도토리가 나오는 소중한 나무다.

도토리는 흔히 다람쥐가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토리를 먹이로 하는 야생동물은 다람쥐 외에도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 큰 동물에서부터 청설모, 산 쥐 등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새들도 도토리를 먹는다. 이렇게 산속 야생동물에겐 가을과 겨울을 나는 중요한 먹거리다. 가을날 산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도토리는 그냥 재미로 조금만 주우면 좋겠다.

‘리기다소나무’란 특이한 이름의 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로, 메마른 곳에서도 잘 자라는 덕에 지난 70년대 산림녹화사업 당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의 무분별한 나무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황폐하고 척박해져 어떤 나무도 좀처럼 뿌리 박고 살아갈 수 없게 된 곳에서 꿋꿋하게 뿌리 박고 견디며 아카시아나무로 잘못 알려진 아까시나무와 함께 이 강산을 푸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나무 이름이 독특하다 했더니 미국 대서양 연안이 원산지다.

백련산의 유래가 된 오래된 절 백련사 ⓒ김종성

백련산의 유래가 된 오래된 절 백련사

이 산을 백련산이라 이름 짓게 한 사찰 백련사(서대문구 홍은동)에 들렀다. 흰 연꽃을 의미하는 백련은 진흙탕(세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꽃이다. 신라 경덕왕 6년에 창건한 오래된 백련사는 처음 사찰을 지을 땐 ‘정토사’였단다. “누구든 아미타불(관음보살과 함께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주며 또한 극락왕생을 이끄는 부처)을 염(念)하면 극락정토(고통 없이 영원한 삶을 사는 곳)에 왕생한다”는 부처님의 정토(淨土)사상을 추종해서 지었다고 한다.

백련산 꼭대기 은평정자에서 보이는 풍경, 저 멀리 한강도 보인다. ⓒ김종성

백련산 꼭대기 은평정에서 보이는 풍경, 저 멀리 한강도 보인다.

오르막 능선길이 부드러운 나머지, 산 정상이라고 느껴지지 않은 곳에 2층 정자 은평정이 나타났다. 정자에 서면 주변을 눈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데 특히 월드컵경기장 주변 공원과 한강이 보여 좋았다. 은평정 앞에 자리한 큼직한 바위들에 흥미로운 안내글이 써있었다. 옛날 백련산은 응봉(매鷹, 봉우리 峰)이라고도 불렀는데, 왕족들이 매를 날리며 사냥을 즐겼던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엔 응봉의 상징 매바위가 있었는데 도시화와 더불어 그 흔적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를 아쉬워한 주민들은 은평정 아래 바위들 가운데 매와 비슷한 모양의 바위를 매바위라 명명하고 매년 ‘매바위 축제’도 한단다. 백련산 아래 은평구 응암1동은 매사냥을 하던 포수들이 쉬어가는 마을이라 하여 ‘포수마을’이란 이름이 남아 있다.

은평정에서 쉬다가 서대문구 홍은동에 산다는 외국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한국말도 잘하는데다 풍경 좋은 산속이라 그런지 쉽게 얘기를 텄다. 산이 많은 한국에 살다보니 백련산은 물론 안산, 인왕산, 북한산 등을 자주 오르게 된다는 아저씨, 한국의 산은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어 보았다. 산속에 운동기구가 흔해서 놀랐고, 한국인이 장수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산은 물론 하천과 강변에도 널려있는 운동기구를 생각해보니 그렇겠구나 싶었다. 나트륨 듬뿍 든 라면 섭취량 세계 1위, 최장의 노동시간, 극심한 입시·주거·취업 스트레스에도 장수할 수 있는 건 다 이런 운동기구 덕분이겠구나, 생각이 드니 나도 산속 운동기구들에 한 번 올라서보게 된다.

은평정을 내려오는데 쉼터에 웬 산악자전거들이 서있었다. 능선이 길고 오르막이 완만하다보니 자전거를 타고 오가나보다. 하지만 문제는 산행을 하는 사람들과 부딪쳐 사고가 날 위험이 많다는 거다. 일반적인 도로와 달리 넓은 길도 아닌데다 비포장 흙길엔 돌과 자갈이 많아 오르막 내리막길이 더 위험해 보였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민원이 발생했는지 능선길가에 구청에서 산악자전거를 타지 말아달라는 현수막을 달아 놓았다.

산길에서 만난 수녀님 ⓒ김종성

산길에서 만난 수녀님

푹신푹신한 흙길 위를 걷다가 이채로운 산길 동행인을 마주쳤다. 운동화를 신고 산행 중인 수녀님들로 자주 오가는 길인지 발걸음이 경쾌하고 여유로웠다. 주변에 성당이나 수녀원이 있나 궁금했지만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왠지 어려워서 다른 주민들에게 물어보았다. 백련산 자락에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한 도티기념병원과 시립 꿈나무마을이 있단다.

특히 1973년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꾸려오고 있는 꿈나무마을은 갈 곳이 없거나 부모가 돌볼 수 없는 환경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시설로 동네에서 유일하게 야외 수영장이 있다고. 한국의 종교는 개인의 성공이나 건강, 합격만을 바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기복신앙으로 여겨지던 내게 새롭고 새삼스러운 경험이었다.

백련산 초록숲길 구간. 서대문 문화체육회관에서 출발하면 산의 능선을 종주하기 좋다. ⓒ김종성

백련산 초록숲길 구간. 서대문 문화체육회관에서 출발하면 능선을 종주하기 좋다.(☞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3호선 전철 녹번역이 가까운 녹번동이 있는 백련산의 북쪽 끝에 다다랐지만, 산길은 끊기지 않고 생태연결다리로 북한산을 향해 연결돼 있다. 북한산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등이 여행자를 유혹하듯 일렬로 우뚝 서있는 풍광이 언제 봐도 장관이다. 실제로 백련산에서 멈추지 않고 북한산까지 산행하려는 사람들이 전망대를 지나 생태연결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백련산에서 북한산까지, 좋은 산행 코스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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