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100년 역사 품은 서울 전시회 3곳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

# 3.1운동 100주년 기념 100년 역사 품은 서울 전시회 3곳 #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염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만세 시위가 있었던 100년전 그날을 기념하는 전시공간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 3.1독립선언서 中 #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 유물 특별전 기간 : 2018.11.23~2019.3.10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문의 : 02-631--8566 # 3.1운동을 알리는 편지 딜쿠샤 내부 사진앨범 *앨버트 테일러(미국 AP통신사 임시특파원) -독립선언서와 3.1운동 관련기사를 작성, 국외에 알림 -3.1운동 참여자 재판, 고종황제 국장,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 현장 취재 앨버트·메리 테일러 부부가 1917년 ~ 1942년 동안 서울(경성)에 살며 남긴 자료 전시 고종황제 국장행렬 사진, 가옥 딜큐샤 사진앨범 자서전 등 #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독립운동! 장소 : 안국역 지하 4층 승강장~출구 문의 : 02-6311-8566 # 독립운동을 주제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소개, 헌정 조형물 등 전시 주변 역사탐방 : 손병희, 여운형 선생 등 독립운동가 집터 # 항일문화재로 보는 100년 전 그날 기간 : 2019.2.19~4.21 장소 : 서대문형무소 옥사 내 문의 : 360-8582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유물 전시 3.1독립선언서, 윤봉길 의사선언서, 3.1운동 당시 사용한 태극기 등 주변 역사탐방 : 독립관 / 독립문 / 순국선열추념탐 / 3.1독립선언기념탑 # 3.1운동 100주년 애국지사의 자주 독립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전시 공간에서 100년 전 그날을 함께 기념해주세요! ...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삼일절 되기 전에 ‘여기’는 꼭 가보세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유적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딜쿠샤 가옥을 복원 중이다. 딜쿠샤 가옥은,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계에 알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았던 집으로, 서양 근대기술이 도입된 서울의 몇 안 되는 서양식 가옥이기도 하다. 주인을 잃고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린 만큼 낡고 음산해진 딜쿠샤 가옥을, 3.1운동 100주년에 맞춰 복원을 한 다음 시민들에게 개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개방이 연기되어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기에 원형으로 복원된 가옥을 직접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앨버트 테일러 부부 그 아쉬움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으로 달래보자. 호박목걸이는 앨버트 테일러의 아내 메리가 남편에게 받은 결혼선물이자, 25년 간 그들의 서울살이를 기록한 자서전이기도 하다. ‘호박목걸이’ 영문판과 한글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당시 딜쿠샤 가옥 내부를 재현해 놓은 모습과 테일러 부부가 사용하던 식기와 생활용품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테일러의 아내 메리가 쓴 의 초고도 보인다. 메리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에서 겪었던 일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결과 영문판이 먼저 세상에 나오고 한국어판까지 니오게 되었다. 딜쿠샤에서 테일러 부부가 사용했던 식기(좌), 메리가 남편한테 결혼선물로 받은 호박목걸이(우) 앨버트 테일러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과 얼마나 깊이 연관돼 있었는가 전시장에 와보면 알 수 있다. 테일러는 세브란스병원에서 갓 태어난 아들의 요람 밑에서 독립선언서를 발견했다. 일본경찰이 병원을 수색할 것을 염려하여 외국인인 테일러의 병실에 숨겨둔 것이다. AP통신 기자를 겸하고 있던 테일러는 독립선언서와 3.1운동에 관한 기사를 써서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렸...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걸려 있는 대한독립선언서

3·1운동의 기폭제, 2·1대한독립선언을 아시나요?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걸려 있는 대한독립선언서 독립운동하면 어떤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3.1운동을 꼽을 것이다.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3월 1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전국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수많은 전시와 행사, 축제 등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도 이전부터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2.8독립선언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발표한 사건이다. 3.1운동과 함께 3.1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첫 독립선언인 ‘2.1대한독립선언’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서울시는 한 세기 전 이날에 선포했던 ‘무오독립선언서’라 불리는 대한독립선언서를 선포하고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대한독립운동 현장에는 항상 태극기가 존재했다 지난 1일, 서울시는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대한독립선언서 선포 100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대한독립선언서 선포 100주년 위원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 광복회 등이 후원한 이 행사에는 여러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석했다. 조인래 준비위원장이 대한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박유철 광복회 회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등이 축사했다. 기념식 후 서울광장에서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에서 우리 밀 씨앗 나눠주기 행사를 진행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한독립선언서가 이후 독립선어서의 씨앗이 됐다는 의미로 우리 밀 씨앗 나눠주기 행사를 가졌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대한독립선언서 선포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종찬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수많은 독립선언들을 발표했는데, 그 중 중요한 독립선언은 3개다. 2.1대한독립선언, 2.8독립선언, 3.1대한독립선언이다. 이 세 개의 선언은 같은 해에 일어났고 모두 연관돼 있다. 그러...
3·1운동 100주년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7일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이 ‘2.8독립선언’ 내용으로 교체됐다.

100년 전 2월 8일에 외친 ‘독립선언’ 세계에 알려요!

3·1운동 100주년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7일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이 ‘2.8독립선언’ 내용으로 교체됐다. 100년 전인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의 기독교청년회관(현 재일본 한국YMCA)에서 조선인 유학생 수백여 명이 조국독립을 선포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심장부에서 전 세계를 향해 일제가 한국을 침략한 정황과 일제의 폭력성에 대해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의지를 밝혔던 역사적인 '2.8독립선언'이다. '2.8독립선언'은 이후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내용의 기미독립선언서와 범민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서울시가 2.8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교육청, 사이버외교관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와 공동으로 '2.8독립선언서'를 번역해 총 5개 언어로 전 세계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100년 전 조국독립의 염원과 뜻이 현재를 사는 시민들에게도 쉽게 와 닿을 수 있도록 기존 국한문체로 쓰여진 선언문은 읽기 쉽게 풀어 쓰고, 이를 4개 언어(영어, 일본어, 중국어, 에스페란토어)로 번역했다. 특히, 중립적인 국제 공용어이자 식민지 청년들에게 가장 선진적인 의미를 가졌던 에스페란토어로도 번역했다. '2.8독립선언서'는 8일 오후 2시 3‧1운동 100주년서울시기념사업 공식 홈페이지와 반크가 운영하는 ‘독립운동가의 꿈’ 홈페이지을 통해 공개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반크는 선언문을 전 세계에 있는 한글학교와 해외 한인단체에,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내 전 학교에 공문 형식으로 각각 배포할 예정이다. '2.8독립선언서'는 같은 해 2월 1일 만주 지린에서 발표됐던 ‘대한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았는데 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조소앙 선생이 도쿄에 파견돼 유학생들을 지도해 선언서 작성이 이뤄졌다. 당시 와세다 대학교 학생이었던 이광수가 초안을 작성했다. 2.8독립선언의 주체들은 국한문체의 선언문을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고자...
영화 ‘말모이’의 감동을 안고 찾아간 종로 ‘조선어학회 터’

영화 ‘말모이’ 명소들…조선어학회 흔적을 찾아서

영화 ‘말모이’의 감동을 안고 찾아간 종로 ‘조선어학회 터’ 지난 1월에 개봉한 영화 가 관객 수 280만 명을 넘기며 뜨거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는 일제의 통치가 가장 극악했던 1940년대에 ‘조선어학회’가 펼친 거국적인 사전 편찬 사업을 그린 영화다. 조선어학회는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한글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고자 했다. 그래서 한반도에 있는 모든 말들을 모은다는 뜻으로 ‘말모이’ 작업을 펼쳤다. 1942년 10월, 조선인 민족말살 정책으로 한글을 연구한 학자들을 투옥시킨 ‘조선어학회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조선어학회의 노력은 계속됐다. 영화 의 토대가 된 조선어학회는 서울이 배경이었다. 서울 곳곳에는 실제 ‘말모이’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서울 속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장소들을 좇아본다. ① 실제 말모이 작업을 했던 곳 ‘조선어학회 터’ 조선어학회 회관이 자리했음을 알리는, 종로구 ‘조선어학회 터’ 안내문 영화 에서는 문당책방 지하에서 말모이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실제 조선어학회는 조선어학회 회관에서 말모이 작업을 진행했다. 조선어학회는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어학회가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정세권의 역할이 컸다. 당시 조선어학회 대표 이극로로부터 조선어학회 건물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정세권은 종로구 화동 129번지 1호 소재의 대지 32평 부지를 매입했다. 지금 시가로 땅값만 계산해도 12억 8,00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정세권 선생은 1935년 2층 양옥의 건물을 완성하고 이를 조선어학회에 기증했다. 조선어학회는 1935년 7월 11일 이곳에 입주했다. 1층은 조선어학회 대표 이극로의 살림집으로, 2층은 조선어학회 사무실 겸 사전편찬실로 사용했다. 이극로, 이중화, 한징, 정인승, 권덕규, 정태진, 권승욱, 이석린 8명의 사전편찬 정리위원들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사전을 편찬했다. 조선어학회는 이곳 회관에서 여러 업적을 남겼다. 조선어 표준말 사전 작업을 완수해 19...
정신여고 김마리아 선생 동상

3·1운동의 잔다르크 김마리아를 아시나요?

정신여고 에 세워져 있는 김마리아 선생 동상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600여 명의 조선 유학생들이 운집하였다. 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2·8독립선언’을 계획하였다. 이 자리에 여자 유학생 김마리아도 있었다.김마리아는 2·8독립선언문 10여 장을 복사해 몰래 숨겨 국내로 들어와 교육, 종교 분야 지도자들을 만나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리고 국내에서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촉구했다.이후 3·1운동 배후로 지목된 선생은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지만,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김마리아 선생은 일제 강점기 최대 여성 비밀 항일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대한민국 임시정보에게 독립자금을 보내기도 했다.“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고 했던 김마리아.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첫 여성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에 참여했던 김마리아 선생(좌), 정신여고 김마리아관 입구 조형물(우)잠실 정신여고에 가면 김마리아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마리아 선생의 모교이자 선생이 교편을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1944년 숨을 거둘때까지 민족의 교육과 여성교육,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유품은 수저 한 벌이 전부로 현재 정신여고 김마리아관에 보관돼 있다.정신여고 ‘독립운동나무’에는 김마리아 선생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전해온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지 몇 달 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정신여학교(현재 잠실 소재 정신여고의 전신)에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다. 일본경찰은 김마리아가 비밀리에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학교 건물을 수색했다. 그러나 조직원 명부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당시 모교인 정신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애국부인회를 결성한 김마리아는 일경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3·1 운동 관련 비밀 문서와 태극기, 한국 역사책 등을 교정 뒷마당에 있던 고목(古木) 구멍에 숨겨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이 나무는 수령 500년으로...
조소앙 선생의 여권사진

우리 겨레 첫 독립선언서 초고, 2월1일 시청에서 공개

조소앙 선생의 여권사진 말에도 씨앗이 있다. 대한독립선언은 독립선언의 씨앗이다. 이 씨앗이 퍼져 우리네 산천은 이윽고 ‘독립’과 ‘선언’의 대지를 이루었다. ‘민주’도 ‘공화’도 다 여기에 뿌리를 두고 태어날 수 있었다. 선언서에 서명한 39명은 39씨앗으로 밀알이 되었다. 광복을 맞아 돌아온 이는 고작 11명. 우리는 이번 대한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그 선언의 길을 섬기고 말씀을 새로 벼리고자 한다.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 서울시가 2월 1일 ‘대한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을 열고, 조소앙 선생(1887~1958)이 기초한 ‘대한독립선언서’ 초고를 공개한다. 조소앙 선생은 정치‧경제‧교육의 균형을 통하여 개인‧민족‧국가 간의 평등을 이루는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제창, 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제정 당시 국가이념으로 삼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다. 2월 1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사)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와 삼균학회의 주관으로 대한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자 마련됐다. 조소앙 선생을 비롯, 만주와 러시아 지역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며 1919년 2월 1일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는 이후 2‧8 독립선언서와 3‧1운동 독립선언서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한독립선언서는 우리 겨레의 첫번째 독립선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을 비롯하여 광복군 포고문과 대일본 선전포고문 등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문서에 기초가 됐다. (사)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는 기념식 직후 당일 정오부터 서울광장에서 ‘밀씨 나눠주기’ 행사를 30분 간 진행한다. 밀 씨앗은 대한독립선언서가 2‧8독립선언서와 3‧1운동 독립선언서의 씨앗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조소앙 선생의 대한독립선언서 육필초고는 이후 서울시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
석조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야경

대한제국 ‘환구단’에서 꼭 봐야 할 4가지

석조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야경 “오전에 환구단에 임하시어 하느님께 제사하시고, 황제위에 나아가심을 고하시고, 정오에 만조백관이 예복을 갖추고 경운궁에 나아가 태황제폐하, 황태후 폐하, 황태자 전하께 크게 하례(賀禮)를 올리니, 백관이 즐거워하더라. 집집마다 태극 국기를 높이 걸어 인민의 애국지심을 표하며,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얼굴에 즐거운 빛이 나타나더라.”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던 상황을 보도한 1897년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자 독립신문(獨立新聞)의 기사 내용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최초로 황제국이 됨을 하늘에 제사 드린 ‘환구단(圜丘壇)’은 어디일까? 한파가 계속되는 겨울 한복판,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는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이곳에서 동쪽의 도로를 건너다보면 빌딩 숲 사이에 큼직한 기와대문이 서있다. 대문과 이어진 담장 끝자락에는 ‘돌북’ 형태의 3개의 화강암 안내석이 나란히 놓여있다. 대한제국 탄생의 유서 깊은 장소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2000년 10월 서울시가 조성한 ‘환구단 시민 광장’이다. 돌북 형태의 화강암 안내석 3개가 놓여있는 환구단 시민 광장 환구단(일명 환단)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말한다. 1897년 고종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과 마주보는 남별궁 자리에 환구단을 설치한다. 하늘을 상징하는 원추형 제단을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고종은 황제로 등극한다. 이와 함께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대한제국의 탄생을 국내외에 선포하다. 당시는 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 대등한 자주독립국가임을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후 대한이란 국호는 상해 임시정부에 계승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제국 탄생의 상징이던 환구단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강제로 헐리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이 세워진다. 1960년대 후반 화재로 소실된 철도호텔 자리에 다시 들어선 것이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이다. 환구단은 호텔이 건축되면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음악 공모

3.1운동 100주년 기념곡 공모 ‘록·랩·발라드 가능’

서울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 음악 공모전 “오등은 자에 아음악”을 20일까지 개최한다 서울시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일 자유로운 장르와 주제의 음악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선정곡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콘서트와 8.15 광복주간 기념행사 등에서 공연으로 만날 수 있으며, 음원 사이트를 통해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1946년 당시 문교부 의뢰로 만들어진 3.1절 노래가 있지만 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락, 랩, 발라드, 가곡, 동요 등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기념곡을 제작해 3·1운동의 역사와 가치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공모전 명칭은 ‘기미독립선언서’ 서두의 “오등(五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를 활용해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음악(我音樂)”으로 정했다. 서울시는 공모에 선정된 8팀에게 서울산업진흥원 미디어콘텐츠센터를 무료 대관해 음원 녹음을 지원하며, 우수팀 4팀에게 곡당 400만 원의 음원제작비를 지원한다. 공모전 지원곡은 3·1운동 포함 항일운동 관련 순수창작곡으로서 락, 랩, 발라드, 가곡, 동요 등을 포함하는 대중음악 장르의 곡(연주곡 제외)이다. 참여대상은 순수창작곡 제작이 가능한 개인 및 단체이며, 서울시가 주최하는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공연이 가능해야 한다. 다만 음원제작비는 창작자 명의의 개인사업자,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업체(개인사업자 또는 법인사업자) 또는 등록업체 소속 창작자에 한해 지원된다.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은 “역사의 의미와 시대의 정신을 일깨우는 노래의 힘을 믿는다”며, “3.1운동 100주년 기념 노래가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경탁 서울시 경제정책과장은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 음악 공모전을 통해 젊은 세대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우리 민족의 ...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좌), 3·1운동 테마역사관인 안국역에 세워진 100년 기둥(우)

안국역~탑골공원 일대가 삼일대로라 불리는 까닭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좌), 3·1운동 테마역사관인 안국역에 세워진 100년 기둥(우)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3․1운동은 일제강점에 저항하여 독립의지를 온 세계에 피력한 대규모 민족운동이다. 우리 겨레는 이 운동을 1919년 4월 11일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갔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12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앞에 ‘100주년 기념 홍보탑’을 세웠다. 이 홍보탑은 중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모티브로 했다. 상해 현지에서 생산된 적색벽돌을 사용하고, 출입문도 시간의 흔적을 질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홍보탑 상단에는 3․1운동의 비폭력 평화정신과 임시정부의 민주주의 가치를 계승하는 의미로 100, 태극, 악수, 불꽃 등을 형상화한 엠블럼과 슬로건을 표시했다. 서울시에서는 ‘삼일대로’를 역사 상징가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안국역과 탑골공원 사이, 삼일대로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서울시는 이곳을 ‘3․1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이다. 3․1운동의 7대 핵심거점을 선정, 연결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고, 각 거점 사이를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오는 삼일절 완공 예정이다. 7대 거점은 ▲안국역 5번 출구 앞 ▲독립선언문 배부 터(현 수운회관 앞) ▲천도교 중앙대교당 ▲서북학회 터(현 건국주차장) ▲태화관 터(현 종로구 공영중차장) ▲탑골공원 후문 광장 ▲낙원상가 5층 옥상이다. 3.1운동 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인 7대 거점 그런데 왜 삼일대로를 역사 상징가로로 선정했을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1운동의 준비와 전개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3․1운동 준비 초기에는 천도교, 기독교 장로교계와 감리교계 등 종교계와 학생들이 제각각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거족적이고 일원화된 독립만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