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서 ‘만세’를 외치다!

독립문이 우뚝 세워져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은 필자가 1년에 한 번 이상 방문하는 곳이다. 서대문형무소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매번 독립문을 지나쳐 서대문형무소만 보고 돌아왔는데, 공원 안에도 서대문형무소 못지않게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조형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대문구에서 운영하는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다. 지난 주말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 참여했다. ⓒ김수정 사전예약을 한 후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독립공원 방문자센터를 향했다.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을 시작하기 전 독립문이 생기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강사가 설명해주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왕이 된 태종은 자신을 왕으로 적합한지 보러 온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서대문 밖에 '모화루'를 세웠다. 이후 세종은 모화루의 규모를 확장해 '모화관'으로 개칭하고, 그 앞에 환영한다는 의미로 화강암 위에 홍살문을 세웠다. 이 문이 독립문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탐방에 앞서 독립문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수정 설명이 끝나고 독립문으로 향했다. 이복형인 연산군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자신의 정통성을 명나라에 설득하기 위해 문을 개축해 청기와를 입히고 '영조문'이라는 액자를 내걸었다. 그러나 명나라 사신은 ‘조’라는 글자는 황제가 있는 나라에서 써야 한다며 '영은문'으로 고치게 했다. 이렇듯 영은문은 조선이 중국에 휘둘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이 개국하고 500년이 흐른 후 고종 때 우리도 청나라와 대등한 나라로 자주독립을 해야 한다고 외친 이들이 생겨난다. 그 중 한 명이 독립운동가 서재필이다. 그는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백성들이 깨우쳐야 한다며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한다. 또한, 치욕의 문이라 생각된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만들도록 한다. 청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당당함을 드러내고자 한 상징물이 된 것이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기 위해 영은문의 화강암 기둥은 남겨두었다. ...
숭인원과 영휘원을 경계짓듯 지나는 금천교 밑 배수로 전경

사색 명당, 조선 왕실 묘역 ‘영휘원과 숭인원’

지난 주말 동대문구 홍릉로에 있는 영휘원과 숭인원을 찾았다. 원(園)으로 쓴 조선 왕실 무덤 13개소 가운데 서울에 남아 있는 단 두 군데의 원이다. 원은 왕의 실제 어버이나 왕세자, 왕세자빈 등의 무덤을 말한다. 영휘원(永徽園)은 1911년 조선 26대 임금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원황귀비 엄 씨를 모신 무덤이다. 순원황귀비는 이른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로 불리는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생모다. 양정, 진명, 숙명 등 학교 설립과 운영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도 회자된다. 숭인원 정자각과 원침을 끼고 목책을 따라 걸으면 영휘원으로 이어진다. ©염승화 숭인원(崇仁園)은 태어난 이듬해인 1922년에 요절한 의민황태자 아들 이진의 무덤이다. 그러니까 두 원은 할머니와 손자의 묘역인 것이다. 사적 제361호로 지정되어 있는 두 원은 같은 경내 좌, 우편 언덕 위에 각각 조성되어 있다. 전체 약 5만 5,000㎡ (약 16,600평) 규모다. 도로변에 맞닿아 있는 돌담길을 지나는 재미가 제법 삼삼하다. ©염승화 숭인원은 순종황제가 특별히 명하여 원으로 조성되었다. ©염승화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에서 내렸다. 두 원은 도보로 14분쯤 거리에 있다. 정문 앞에 다다르기 전 큰길에 바짝 붙어 있는 돌담길을 걷는 운치가 제법 쏠쏠했다.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오른 편으로 제례 공간임을 나타내는 홍살문이 가깝게 보였다. 그 뒤편으로는 제향을 모시는 건물인 정자각과 고인의 일생 등을 새긴 표석이 들어 있는 비각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이는 숭인원의 전각들이다. 발길이 자연스레 홍살문 쪽으로 향했고 정자각 옆까지 수직으로 곧게 놓인 돌길인 참도를 따라 걸었다. 길이가 짧기도 하거니와 향로와 어로의 구분 없이 하나의 통로로 설치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영친왕의 첫째 아들 원손 이진의 원에 세워져 있는 표석 ©염승화 표석 표면에 ‘원손 숭인원’이라고 새겨져 있는 비각 안을 둘러보았다. 갓난아이인 채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주인공이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동작구 흑석동 소재 효사정

한강변 최고 절경 ‘효사정’에서 효(孝)를 새기다

맑고 청명한 전형적 한국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한강물이 가장 맑아 보인다는 옛 흑석리, 근대 동작진 마을로 알려진 동작구 흑석동을 찾았다.일제강점기 때 생긴 '명수대(明水臺)'란 지명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동네 아파트 이름에도 명수대아파트가 있으니 물이 얼마나 맑겠는가. 서울현충원에 인접한 이 곳은 산세가 알을 품은 듯한 공작포란형 산세로 아늑하고 포근한 인상이 느껴지는 마을이다.효사정(孝思亭) 누각에 서면 멀리 강북 용산, 마포, 성동 등의 고층 건물이 훤히 내다보인다. ⓒ김영배마을 내력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을 벌리던 삼국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은돌이 많아서 흑석리 또 흑석동이 됐다는 설이 있다. 이 검은돌은 새까만 오석(烏石)이 아니다. 흑석동엔 새까만 돌이 없다. 강변의 바위가 검푸른 색을 띠게 되는데 이 검푸른 돌을 말한다. 지금도 서달산 정상 부근에 가면 검푸른 바위가 더러 보인다. 일제 강점기 한강철교와 인도교 부설시 일본인이 가까운 이곳으로 많이 유입해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명수대란 지명도 일본 거부의 별장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말이 있다.효사정 서편 급경사 데크 출입로(좌), 효사정 동편 정문 출입로 ⓒ김영배노량진 쪽에서 흑석동으로 이어진 고개를 넘어 서울현충원을 지나 강남고속터미널과 동작대로로 갈라져 이어지는 길이 ‘현충로’다. 이 현충로와 한강 사이에 자그마한 산등성이 절벽 위에 우뚝 솟은 기와집 건물이 바로 ‘효사정(孝思亭)’이다."가을 강물이 드넓은 하늘과 함께 일색이로구나(秋水共長天一色)!" 중국 당나라 시인 왕발의 등왕각서이다. 이 글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유장한 한강은 태맥 준령에서 발원해 천리 험곡을 때리며 굽이쳐 흘러와 유속이 빠른 대신 그지없이 푸르고 맑다. 중국의 장강이 길고 유명하다지만, 모르긴 해도 그보다 못하지 않을 것 같다.효사정은 이런 한강변 정자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높게 위치해 있다. 청명한 가을 날, 맑은 한강 건너 북쪽으로 북악산, 서쪽으로 안산, 동으로 응봉산 아차산 검단산, 남...
사대문 안 학교들 온라인 전시회 영상에 나오는 졸업생들의 이야기

100년 전, 사대문안에는 어떤 학교들이 있었을까?

서울 사대문안 학교들은 한양도성 사대문 안이라는 지리적,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 등을 자랑하는 사대문안 학교들을 한 눈에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온라인 전시가 있어 소개한다. 우리나라 교육사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유서 깊은 사대문 안 학교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이 전시는 서울특별시중부교육지원청에서 개청 4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고 있다. '사대문안의 학교들 그 100년을 돌아보다' 전시는 지난 4월 21일부터 6월 28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 현장 전시를 진행했으며, 이후 코로나19 여파로 현재는 온라인을 통해 역사 자료집과 전시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서 사대문 안의 학교들 역사자료집과 온라인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다.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 특히 '사대문 안의 학교들' 전시는 각 학교의 다양한 역사 이야기가 담긴 자료집을 참고하면서 영상을 감상한다면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근현대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해 볼 수 있다. 역사자료집에 나와 있는 사대문안 학교들의 목록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 온라인 전시회 및 자료집은 서울특별시중부교육청 홈페이지(http://jbedu.sen.go.kr/CMS/index.html) 메인화면에서 바로 만나 볼 수 있다. 먼저 메인화면 좌측 상단에 있는 역사 자료집을 읽어 본 후 오른쪽 위에 있는 온라인영상을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사대문 안에 있는 다양한 학교에 대한 역사 이야기와 사진 등을 먼저 확인하고 온라인 영상에 담겨진 또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면 졸업생들의 학교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 등을 함께 접목 시키면 보다 흥미로운 전시 체험을 할 수 있다. 온라인 전시회의 핵심 자료라 할 수 있는 역사 자료집에는 중부 관내 총 103개의 초, 종, 고에 대한 역사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 교동초에 대한 역사자료집 내용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
스토리가 풍부한 서울한양도성 광희문 전면과 단면

절절한 사연 품은 ‘광희문과 아리랑고개’를 가다

숭례문을 비롯한 서울한양도성의 이른바 8개문인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은 1396년(조선 태조 5) 9월 24일에 지어졌다. 도성을 다 쌓은 직후다. 이중 창의문, 서소문, 혜화문과 함께 사소문에 속하는 ‘광희문(光熙門)’을 지난주에 찾았다. 성문 안에서 바라본 광희문 전경. 문루로 오르내리는 돌계단이 눈길을 끈다. ©염승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광희문은 ‘동남은 광희문이니 속칭 수구문(水口門)’이라는 기록으로 나타난다. 흥인지문과 숭례문 사이에 놓인 문으로 청계천을 통해 도성 안의 빗물과 하수가 이 부근으로 빠지기에 수구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도성 안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시구문(屍軀門)’으로도 불린다. 성벽이 단절된 광희문 옆 도로 바닥 위에 성벽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염승화 도성이 있었음을 입증해주는 축대가 대로 맞은편 길가 건물 사이에 있다. ©염승화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렸다. 3번 출구로 나오니 길 건너편으로 늠름한 광희문이 보인다. 길가에서 도로로 끊어진 성벽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길 바닥에 성벽이 있었던 곳임을 나타내는 ‘서울한양도성’ 문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허투루 지나면 성벽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축대도 허름한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 표면에 ‘퇴계로 347-1’라고 쓰인 번지 안내판까지 붙어있으므로 얼핏 평범한 돌담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나 옛 성벽이라고 생각되니 공연히 감개무량해졌다. 천주교 순교성지인 천주교순교자헌양관과 아리랑고개로 이어지는 길목이 보이는 풍경. ©염승화 광희문을 안팎으로 꼼꼼히 살펴보기 전에 주변을 먼저 둘러보았다. 광희문 앞은 그러니까 성문 밖은 예로부터 사연이 많은 장소다. 평소에는 장례행렬이 지나며 초제를 지냈고, 조선 말기에는 서소문 앞과 마찬가지로 적잖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당한 가슴 아픈 곳이었다. 천주교 순교자헌양관이 광희문과 마주보듯이 설립되어 있는 까닭이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몽진에 나선 ...
남산 백범 광장에 세워진 백범 김구 동상

남산 ‘역사문화길’ 산책…민족의 얼을 찾아서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면려하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남은 한이 없겠노라.” (대한매일신보, 1910년 3월 25일 자) 죽음을 초월한 의연함으로 마지막까지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고 사랑했던 안중근 의사가 순국 하기 전 조국의 동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호소 ‘동포에게 고함’이다. 감동이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동상 ⓒ이봉덕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지금 독립 국가로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하며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밤낮으로 노력한 애국자들 덕택이다. 6월의 마지막 주말, 남산 역사문화길을 걸으며 애국 지사의 얼을 찾아가는 호국 보훈 역사 탐방에 나섰다. 남산둘레길 '역사문화길' 일대는 안중근 의사 동상 및 기념관, 백범 광장 및 백범 김구 동상, 이시영 선생상, 김유신 장군상, 다산 정약용상, 퇴계 이황상 등이 모여 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로 나와 10여분 걸으니 남산둘레길 '역사문화길'로 이어지는 백범광장이 나왔다.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 ⓒ이봉덕 안중근 의사는 일제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험에 처한 1909년 하얼빈역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한의 민족 혼이 살아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린 영웅이다. 체포되어 뤼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던 중 1910년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묵념의 예를 갖추었다. 민족 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서울 남산 현 위치에 1970년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했으나 철거되고, 2010년 새 기념관을 개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어 많이 아쉬웠다. 안중근기념관 앞 광장에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생전에 남긴...
50년 넘게 2대째 서울에서 자리 잡고 운영되는 고깃집인 서울미래유산 통술집은 우리 서울 시민들의 삶의 애환과 행복 등의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울미래유산을 찾아서…역사체험 떠나볼까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가 2013년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서울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유산 중 국가, 서울시 지정,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은 유, 무형 자산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 인물과 관련된 장소나 서울 시민에게 잘 알려진 특색 있는 장소, 기념물을 비롯해 기술, 음악, 경관 등 무형자산처럼 서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총망라한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 안에 녹아 있는 다양한 상징물, 기념물, 이야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서울미래유산이라는 말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특별한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선정된 미래유산은 2020년 5월 20일 기준으로 정치 역사, 산업노동, 시민 생활, 도시 관리 등의 테마로 분류되어 총 470개가 선정되어 있다. 서울시내 곳곳에 우리의 미래유산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서울미래유산은 관연 어떤 것이며 어디에 있고, 어떤 느낌일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을 찾아 한번 길을 탐방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web/main/index.do)에서는 미래유산 찾기 및 미래유산체험코스 메뉴를 등을 통해 다양한 체험코스를 만날 수 있다. 필자는 정해져 있는 코스 대신 홈페이지에 있는 미래유산 찾아보기 메뉴를 통해 내가 가고 싶은 장소와 코스를 따로 정했다. 어릴 적 거주했던 동네와 꼭 가고 싶은 곳을 고려하여 나만의 역사체험 코스를 만들었다. 필자가 선택한 코스는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사직터널에서 출발하여 터널 상층부로 계단을 이용해 올라 행촌동 일대의 특별한 골목길과 역사 현장을 찾아보고, 영천시장, 석교교회, 통일로에 위치한 통술집까지 걸어 보는 1시간 소요의 약 3km 코스이다. 이 코스에는 서울미래유산 4곳,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장권의 집터, 딜쿠샤 가옥 등의 특별한 의미를 담긴 역사의 현장이 담겨 있다.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일대에 위치한 서울미래유산 사직터널은 종로와 서대문을 잇는...
역사와 전통의 도시답게 서울엔 수많은 인재와 우국지사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박세호

종로 거리에서 만난 역사의 주인공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박세호 흔히 경주나 강화도 같은 지역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야말로 길거리 유적과 유물이 정말 많다. 박물관 입장은 엄두도 못내는 요즘, 걸거리에서도 역사적 장소를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종로 대로변 보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던 역사 인물들의 동상과 표지석들을 둘러보자.  광화문하면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상징처럼 떠오른다. '세종대왕' 동상은 용상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일부양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천체관측기) 등이 함께 진열돼 있다.세종대왕 재위 시(1418∼1450) 조선은 군사나 문화 측면에서 일본에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고, 세종 1년 해안가에 수시로 출몰하여 괴롭히던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을 이뤘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종대왕의 출생지 터가 있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바라보면 세종마을 입구 대로변에 표지석이 있다. 이 일대 경복궁 서쪽 마을을 서촌이라고 하는데 박노수 미술관, 화가 이중섭, 이상범 가옥, 윤동주 하숙집, 이상의 집, 벽수산장, 배화여고 선교사 건물, 이항복 집터, 이회영 생가, 황학정, 종로도서관 외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명당, 명소가 부지기수다.  세종대왕 동상 앞 양부일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의 조형물도 함께 볼 수 있다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 기개만큼이나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고, 앞자락 잔디밭을 널찍하게 간직한 채 광화문광장 끝까지 호쾌한 전망을 자랑한다.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왜군을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마지막 함대를 모아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육지에서도 왜군은 참패를 안고 돌아갔다.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 건너편이 교보문고 입구이며 만남의 광장이다. 이곳에 벤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소설가 ...
중구 12경 답사 참가자들과 함께 광희문에서 기념촬영

사(史)심 가득한 도심 산책! ‘중구 12경’ 답사기

중구 12경 답사 참가자들과 함께 광희문에서 기념촬영 서울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서울의 명소 중구는 소공동, 명동, 회현동, 필동, 장충동, 황학동, 신당동 등 15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남산이 둘러싸고 있고, 북쪽으로는 청계천이 흐르며 종로구와 인접해 있다. 지역적 위치만으로도 서울을 대표하는 지역이라 말 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중구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지역이며 유년시절을 보낸 역사 깊은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서울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그 중심에 담고 있는 중구에는 숨겨진 보물이 있다. 바로 ‘중구 12경’이라 불리는 숭례문과 남대문 시장, 남산, 청계천, 덕수궁과 정동, 약현성당, 문화역서울284, 명동,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충무아트홀, 광희문, 장충단 공원, 남산골 한옥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렇게 의미 있는 중구 12경을 전문해설사와 함께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다 같이 돌자 중구 12경’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해봤다. 관련 프로그램은 서울시 중구문화원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중구 구민, 중구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및 그 가족을 대상으로 1차 9월 8일, 2차 9월 15일에 걸쳐 진행됐다. 중구 12경 답사 코스는 충무아트홀에서 출발해 광희문-DDP-청계천-시청-덕수궁-정동길-약현성당-서울역-숭례문-남대문시장-명동-한옥마을-장충단-남산을 최종 종착지로 마무리했다. 답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덕수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구 12경 중 주요 코스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광희문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의 남동쪽 방향에 나 있는 성문이다. 태조 5년(1396)도성을 건설할 때 도성 사소문 중 하나로 세워졌다고 한다. ‘수구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유는 청계천의 수구에 가깝고 남산 북동쪽 일대의 물이 이 문 부근을 통해 빠져 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공사 중 매몰된 유물과 서울성곽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공원화가...
경교장은 임시정부 주요 활동공간으로 백범 김구의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되었다

강북삼성병원 안에 임시정부 역사의 현장 있다?!

경교장은 임시정부 주요 활동공간으로 백범 김구의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되었다 8월 29일. 지금으로부터 142년 전인 1876년, 백범 김구 선생이 태어난 날이다. 이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김구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적을 터. 그만큼 김구 선생은 많은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서울시에서는 백범 선생에 대한 흔적들이 많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 묘’, ‘백범 김구 기념관’ 등 그의 흔적과 발자취를 볼 수 있다. 그 중 그의 생생한 모습들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교장’이다.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 사적 제465호인 경교장은 광복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 무대였다. 그 전에는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최창학에 의해 1938년 건립됐지만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한 이후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의 활동 공간 및 김구 주석과 임정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공식만찬이 진행됐던 귀빈식당 김구 선생은 경교장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모아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해방 후 혼란한 나라를 수습하는 데 애썼다. 1945년 12월 3일, 중국에서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와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을 비롯한 임시정부 가교들은 이곳에서 국무위원회를 개최했다. 국무위원회는 임시정부의 정책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기구였다. 이는 환국 이후 첫 번째 국무위원회였고 그 장소가 경교장이었다. 이 외에도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추진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협상에 참가하는 등 최후의 노력을 기울였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의 고뇌와 흔적들이 담겨 있는 생생한 현장이다. 김구 선생의 혈의 경교장은 김구 선생의 마지막 숨소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1949년 6월 26일,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미군방첩대(CIC) 요원인 안두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