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뭣도 모르고 늙음이 찾아왔다
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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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최경의 (64) 나이든 건 미안한 걸까?
예견된 일이었다. 방송에 사자성어가 등장하면 곧바로 인터넷 포탈사이트의 검색어에 오를 때 짐작했어야 했다. 미련하게 그것도 모르고 신기해했다. ‘설마 이 사자성어 뜻을 몰라서 검색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그거였다. 방송에 나오는 단어의 뜻이 뭔지 모르거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한 것이었다. 매주 방송을 제작하면서 막바지에 하는 일은 제목과 함께 마지막에 제작진의 생각을 담는 몇 문장의 메시지를 확정하는 일이다. 모두 모여앉아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며, 제목이 주제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가 얼마나 인상에 남게 할 것인지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시청자들은 흘려보낼 수도 있는 것인데도 제작진들은 머리를 쥐어짠다. 그래봤자 정작 방송을 보면 허무하게도 몇 초만에 훅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걸 알면서도 매번 모여 앉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날도 제목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한 청년이 부모를 찾는 사연에 대한 제목을 고민하다가 내가 불쑥 떠올린 단어는 ‘혈혈단신(孑孑單身)’이었다.
“혈혈단신 ○○씨의 뿌리 찾기, 이건 어때요?”
“헉, 너무 옛날 느낌인데요. 혈혈단신 이런 단어 요즘 잘 안 쓰잖아요.”
“이걸 제목으로 하면 혈혈단신 단어가 검색어 순위에 오를걸요?”
늙었나 보다. 얼마 전부터 어떤 일상적인 단어를 쓰면, 후배들이 웃는다.
“선배님이 쓰는 단어는 참 고풍스러워요. 어릴 때 할머니한테 들어봤던 말들이 새삼 생각나요.”
처음엔 농담처럼 들렸다. 낄낄거리면서 함께 웃었는데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돼 가나보다 싶기도 해서 씁쓸하다. “예전에 내가 프로그램 할 때는...”, “예전에 비슷한 아이템 한 적이 있는데...”, “나도 예전엔 그랬는데...” 과거가 자꾸 튀어나온다. 다행히 착한 후배들은 잘 들어준다. 심지어 재미있어 하면서 (어쩌면 재미있는 척 해주면서) 이야기를 들으며 마지막엔 코멘트를 잊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