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서울사람] “좋은 사람들은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저는 중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데 한국에는 여행하러 왔어요.한국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리무진 버스를 탔는데, 실수로 두 정거장이나 지나쳤어요.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서 원래 내려야할 곳으로 갔고 그러던 와중에 길을 잃어버렸어요.길가에 지나가는 사람한테 길을 물었는데, 놀랍게도 그 분이 중국어를 하시더라고요.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하는 수준이었어요. 그 분도 길을 모르긴 했지만 핸드폰으로 길을 찾아보고 알려주시더라고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별로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지만 알 수 있었어요.”“말이 별로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점을 알 수 있었나요?”“특별한 질문도 필요 없어요. 몇 걸음 다가서다 보면 좋은 사람들은 곧 그 느낌이 나거든요.”…“제일 슬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3-4년 전 정도 전이었어요. 제 자신에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저를 잃어버렸거든요. 무슨 일 해야할 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 너무 큰 질문이라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어요.”“그래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셨나요?”“일이 내게 잘 안 맞는 걸까, 결혼이 마음에 안 들었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큰 방향만을 생각했어요.”“그래서 답을 찾으셨나요?”“네. 그래서 제가 여기 이렇게 있잖아요.”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인터뷰어

[서울사람]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는 것”

“저는 원래 교육을 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레고 같은 걸 활용해서 공학을 가르쳤어요. 과학상자 같은 거죠. 한번은 제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오늘은 수업 못 하겠다’라고 한 적이 있거든요. 저는 애들이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어요. 수업이 취소되면 놀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학생들이 ‘난 수업 기다렸는데 왜 안 왔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애들한테 단순한 선생님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가르쳤던 아이들과는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요. 술자리를 갖기도 하고요. 저는 단순한 선생님보다는 인생의 멘토처럼 남고 싶거든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잘 됐어요. 자기 꿈을 찾고 잘 나아가고 있죠. 그런데 딱 한 아이는 가정 문제도 있고, 게임에 빠져버리는 등의 문제가 있던 아이였어요.”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잡아주지 못했죠. 아직도 자기 길을 전혀 못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학생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요. 어떻게든 좋은 길로 인도해주고 싶었는데… 언젠가는 절 찾아와 주길 바래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기경호 씨 ⓒ최용수

“우리 같이 인사해요~” 기경호 할아버지의 특별자전거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기경호 씨 이른 아침 기경호(75세, 응암동) 씨는 한강시민공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Good morning!” “안녕하세요?” “건강 조심하세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하며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자전거를 꽃으로 장식하고, 핸들 양쪽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미국), 오성홍기(중국), 일장기(일본)를 꽂았다. 헬멧에는 태극기를 꽂고 매일 아침 ‘애마(愛馬)’를 타시는 기경호 할아버지. 대체 무슨 사연일까? 서강대교 북단 한강공원에서 어르신을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어르신. 서울시민기자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A. 네, 반가워요. 날씨가 아직 덥네요. Q. 자전거가 독특한데요, 이렇게 꾸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A. 7년 전, 홍제천 합류 지점에서 큰 사고가 났습니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튀어나와 충돌 직전에 급하게 핸들을 꺾어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요. 아이가 크게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랬지요. 그 사고로 골절상을 입어 몇 개월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지켜본 사람들은 많았지만 도움을 주거나 신고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야속한 마음이 들었고 ‘평범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이렇게 꽃으로 꾸미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사람들을 위해 비상약품을 항상 휴대하는 어르신 Q. 국기를 5개나 꽂아 두셨는데요.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면 더 힘드실 텐데, 왜 여러 나라 국기를 꽂고 타세요? A. 뉴스를 보니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덜 찾는다고 해요. 아시다시피 미국은 우리의 혈맹 국가이고, 이웃 국가인 일본과 중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 국기를 꽂고 다니는 걸 보면 반가워하지 않을까요? 나이는 들었지만 조금이나마 나라에 보탬이 되고 싶어 국기를 꽂고 다닙니다. Q.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다들 아시는 분인가요? A. 아닙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만나는 사람...
공원에서의 시민 인터뷰-1

[서울사람] “가족도 한결같지는 않더라고요”

공원에서의 시민 인터뷰-1 “(오른쪽) 저는 요새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어릴 때는 부모님이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이 ‘이렇게 했음 좋겠다’라고 하면 그걸 따르는 편이었다면, 어느 순간이 지나서는 저한테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물어보기 시작하시고, 어느 순간이 더 지나면 역으로 저의 의견에 많이 의지하시기도 하더라고요.” “(오른쪽)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어요. 그게 ‘아, 이제 부모님이 옛날처럼 그런 울타리 같은 존재는 아니구나’ 싶다가도 ‘내가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니까요.” 공원에서의 시민 인터뷰-2 “(오른쪽) 부모님뿐 아니라 동생도 그래요. 동생이랑 둘이서 해외여행 간 적이 있었어요. 가서 똑같이 길 헤매고 있을 때 저는 거기서 멘탈이 깨졌거든요. 그런데 동생은 모르는 사람한테 저벅저벅 가서 물어보고, 알아보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 참 동생이 달라 보이더라구요.” “(오른쪽) 어릴 때는 동생이니까 챙겨줘야 할 사람 같았는데, 어느 나이 이상이 되면... 꼭 언니가 언니는 아니더라구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트롤리버스 ⓒ최은주

서울명소만 쏙~ 서울시티투어버스 여행기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트롤리버스 7월 초 일찌감치 휴가를 다녀온 우리 가족은 8월 성수기에 주어진 휴가 기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서울 시내 나들이를 생각했다. 더위도 피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서울사람 서울여행’ 콘셉트는 어떠냐는 아이들 제안에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서울 명소를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기 위해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을 찾았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도심 고궁 코스 ▲파노라마 코스 ▲어라운드 강남투어 코스 ▲야경코스 2코스 등 총 5개 코스를 운행 중이다. 우리는 하이데커 오픈탑 버스와 트롤리버스, 이층 버스를 갈아타며 서울의 명소를 구경할 수 있는 파노라마 코스를 선택했다. 이 코스는 광화문에서 출발해 명동 남산 세빛섬 63빌딩 한강유람선 홍대입구를 거쳐 다시 광화문에 도착한다. 전 코스를 도는 데 1시간 40분이 소요되며 요금은 성인 1만5,000원, 학생 1만원이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노선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마음에 드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좌), 고풍스러운 트롤리버스를 타고 서울의 풍경을 감상하는 관광객들(우) 티켓을 끊고 트롤리버스에 올라탔다. 1900년대 초반 노면전차 모습을 한 버스는 나무 의자와 황동 기둥 장식으로 고전적이고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광화문을 출발한 버스가 명동을 지나 남산길로 접어들자 버스를 탄 지 5분도 안 돼 도심과는 전혀 다른 숲길이 펼쳐졌다. 서울에 이렇게 싱그러운 녹음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길이 하얏트호텔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이층버스 타고 홍콩의 스탠리 베이에 갔던 것이 생각난다”며 외국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즐거워했다. 세빛섬에서 갈아탄 하이데커 오픈탑 버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을 출발점과 도착점으로 순환한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45분 간격으로 총 11회가 운행되고 있어, 원하는 정류장에서 하차해 구경한 후 다음에 오는 시티투어...
인터뷰어

[서울사람] “50 넘은 아들도 질투를 한다니까”

“(왼쪽) 자식 키울 적에는 하루에 두세 시간 더 자 본 적이 없어. 아침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니까 우리 애들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업고 다니면서 키웠어. 너무 정신 없어서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모르겠어.” “(오른쪽) 그 때는 먹고 살기 바쁘고 힘들게 살았지. 나도 안 해 본 장사 없이 내 힘으로 살아왔거든. 그래서 우리 삼남매는 동네 사람들이 다 길렀어. 이쁜 것도 모르고 길렀지.” “(왼쪽) 근데 손주는 발가락 다 빨아도 안 더럽고 이뻐. 손주를 16년을 키웠어. 그 놈은 집에만 돌아가면 보고 싶다고 먼저 나한테 전화하고, 학교에서 편지 쓰라고 하면 엄마 말고 꼭 나한테 써. 오죽하면 저 엄마가 샘을 낸다니까.” “(오른쪽) 우리 아들은 나이 50인데 손주만 챙긴다고 지금도 질투해.”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인터뷰어

[서울사람] “어머니가 목숨 걸고 낳은 동생”

“(왼쪽) 저는 삼남매 중에 첫째고, 얘는 막내예요. 9살 차이죠. 엄마가 막내를 목숨 걸고 낳았어요. 당시 엄마 몸이 안 좋아서 자칫하면 출산하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왼쪽) 결국 막내를 낳자마자 중환자실로 들어가셨어요.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아빠는 멸균복 입고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다니고, 엄마는 중환자실에 있으니까 볼 수도 없었고… 그래서 인큐베이터에 있는 막내가 되게 미웠던 기억이 나요. 막 몰래 꼬집기도 했어요.” “(왼쪽) 그런데 막내를 미워하는 제 모습을 본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막내를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파. 엄마랑 가장 짧게 살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막내를 사랑해줘야 해’라고요. 그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저만 엄마를 9년이나 더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막내의 그 빈 부분을 제가 채워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그때부터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인터뷰어

[서울사람] “한 색소폰 연주자의 회고”

“제가 만18세 때 색소폰 연주자로 처음 무대에 올랐어요. ‘낭랑쇼’라고, 그 후로 뭐 ‘하춘화쇼’, ‘이미자쇼’ 이런 지방 순회를 많이 했죠. 그 당시엔 색소폰 연주자가 귀할 때였거든요. 그 이후로 그렇게 연주를 한 사십여 년 했어요.” “그러다 이렇게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한지는 이제 한 9년 됐어요. 바에서 손님 기분 맞추려고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었더니 심근경색이 왔거든요. 한 3,000만 원짜리 집 얻어 살고 있었는데, 다 팔아서 2,000만 원 수술비 대고, 600만 원짜리 악기도 팔고. 갑자기 심장병만 안 걸렸어도 한 70살까지는 일할 수 있었는데…”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뭔가요?” “내가 다른 거 후회하는 건 없는데, 우리 딸래미를 입양 보낸 게 제일 후회되지.” “왜 보내게 되셨어요?” “그게… 애기 엄마가 스물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 때 나는 서른 살이었고,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했거든요. 애기 엄마 죽고 한 일 년을 혼자 아이를 키웠는데, 내가 카바레에서 음악하고 지방을 돌아다니고 그러니, 이거 내가 혼자 도저히 키울 수 없겠다 싶어 보냈죠.” “그 후로 연락을 한 적이 있나요?” “이십여 년 전에 우리 이모를 통해 연락이 닿아서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애가 고등학생 때였죠. 그런데 뭐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두 살 때니까 기억이나 나겠어요. 서먹서먹하지. 잘 지내냐, 건강하냐,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헤어질 때는 연락처도 안 물어봤어요.” “왜요?” “내가 물어볼 위치가 안 돼가지고. 수급자 생활을 하다보니까 자신도 없더라고요. 아버지로서 내가 도움이 좀 될 수 있다면 몰라도. 하다못해 내가 비행기 삯이라도 내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모르겠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이제 소식도 들을 수 없어요. 미국 시카고에서 미니슈퍼를 하나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애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서른여섯쯤 되었을 거예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
인터뷰어

[서울사람]“오래 된, 지금은 유명해진 친구가 있어”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지금 중년 배우로 유명해진 친구를 처음 만났어. 그 시절부터 한 20년 정도 권투를 계속 했거든. 나하고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 중에 올림픽 메달 딴 사람도 많을 정도로 열심히 했어.” “당시에 내가 일주일에 5번 이상 스파링을 했는데 스파링 한 번 하면 못해도 30대, 40대는 맞을 것 아냐. 그걸 내가 20년을 했다고. 결국 후유증이 와서 반신불수가 됐었어. 근데 내가 병원비가 없었어. 며칠 뒤에 걔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내 병원비를 내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때 걔가 병원비로 당시 집 두 채 값을 대줬어. 병원비가 없다는 말 한마디에 집 두 채 값을 한 번에 내주는 건 형제도 못할 일이야.” “나는 그 친구가 오래 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때 1년 2개월 동안 같이 곁을 지키면서 운동시키고, 재활을 도왔었지. 친구로 지내면서 우리는 일생 동안 서로 딱 3번을 봐주기로 어릴 적에 결심했는데, 지금까지 서로 딱 한 번씩 쓴 셈이야.” “TV에 나와서 날 찾고 있는 것도 봤어. 지금이라도 전화하면 촬영도 그만두고 당장 달려올 거야. 그런데 내가 일부러 안 만나고 있어. 그래서 얼굴이 나오면 안 돼. 비록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그저 내가 평생 잊지 않고 고마워 할 거라는 것... 그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인터뷰어

[서울사람] “1년 반 만에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오른쪽) 작년에 제일 친했던 친구와 싸웠어요. 매일같이 만나던 친구였는데 서로 바빠지다 보니 약속을 잡아도 깨지는 경우가 허다해졌거든요. 하루는 제가 화가 나서 ‘야 이제 쉽게 약속 잡지 말자’라고 했는데 그 친구도 기분이 상했는지 정말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는 거예요. 마치 실연당한 것처럼 맨날 울고 10년 된 번호까지 바꿨어요. 저도 오기가 생겨서 ‘네가 뭐라고’라는 생각으로 연락하지 않았죠. 서운함도 컸어요. 저는 1년 반이 지날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친구가 생각이 났거든요. 결국 저번 주에 제가 못 참고 전화를 했어요.” “전화해서 뭐라고 하셨나요?” “그냥 ‘안녕’ 이런 말이 나오지 않고 ‘너 미워. 나 평생 너 미워하면서 살 거야’ 하는 말이 먼저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너도 나 미워하면서 살아. 재밌게 잘 지내고’라고 하더라고요. 화가 너무 나서 ‘그래서 잘 지내니?’ 하고 물으니까 ‘아니, 난 그럭저럭... 넌 잘 지내는 것 같더라’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무척 힘들었는데 제가 괜찮아 보여서 더 화가 났나 봐요. 그래서 ‘그럼 너 왜 연락 안 했어?’ 하고 물으니 울더라고요… 그렇게 말 한마디에 1년 넘게 좋지 않았던 관계가 다시 풀렸어요. 지나고나니 참 웃겨요. 가족 같이 친한 친구였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싸웠다는 사실이요. 이렇게 쉽게 풀릴 수 있었다는 것도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