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등이 이국적인 거리 풍광을 자아낸다

반나절 만에 세계여행, 이태원 한 바퀴

돔 형태의 유리지붕이 인상적인 6호선 녹사평역 ⓒ박분 서울에서 이국적인 명소를 꼽는다면 단연 이태원이 아닐까? 이태원 거리는 돔 형태의 유리지붕이 인상적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시작된다. 녹사평역은 지상 4층 꼭대기에 있는 유리 돔을 통해 햇빛이 지하 깊숙히 내려와 매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층마다 예술작품과 녹색정원을 구성해 놓은 녹사평역 ⓒ박분 그 뿐만이 아니다. 녹사평역 승강장이 있는 지하 5층까지 내려가다 보면 층층 마다 설치된 예술작품과 녹색정원을 만날 수 있다. 푸르름이 가득한 녹색정원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지하공간에서 식물이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을까!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는 녹사평(綠莎坪)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지난 10월 8일부터 13일까지 지루한 역사 내 동선을 '예술이 있는 풍경'으로 바꿔주었던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또한 녹사평역만의 자랑이다. 녹사평역 3번 출구로 나오면 ‘Welcome to Korea’라고 쓴 아치형의 파란 조형물이 보인다. 이태원이 관광특구임을 알리는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 가까이에는 ‘용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소녀상 옆, 빈 의자에 앉아 잠시 친구가 되어본다.    '서울 속 외국'이란 말을 실감나게 하는 이태원 거리 풍경 ⓒ박분 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이태원 거리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곳이 ‘서울 속의 외국’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과 큰 옷 가게 등 이태원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가게들이 즐비해 한산한 아침에 둘러봐도 지루하지 않다. 베트남 퀴논길 이정표 ⓒ박분 이태원 로데오거리로 알려진 이태원 보광로59길에는 베트남 퀴논길이 펼쳐진다. 건물 외벽 높은 곳에 붙여놓은 ‘베트남 퀴논길’이라고 쓴 안내간판도 보인다. 300여 미터에 이르는 이 거리는 용산구와 베트남 퀴논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퀴논시의 이름을 따 2016년에 조성한 테마거리이다. 베트남등이 이국적인 거리 풍광을 자아낸다 ⓒ박분...
지난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 ⓒ뉴시스

유관순 열사의 체포부터 장례까지…

지난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 유관순 열사의 묘가 이태원 공동묘지에 있었다는 기사(☞그냥 지나쳤다면, 이번 삼일절에는 꼭!)를 읽고, 찾아가 보았다. 1920년 10월 14일 이화학당의 교장과 학생들이 장례를 치러줬으며, 이후 일제가 이태원 공동묘지를 군용기지로 개발하면서,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되는 과정에 실전(失傳) 되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도 이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들른 부동산에서 만난 팔십대 중반 어르신이 공동묘지 쪽에 산다며 길을 알려주었다.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그녀가 묻혔던 곳의 위치나 수감 당시의 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는 유관순 열사의 묘를 찾은 이 기회에 그녀가 체포당하고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용산구에 있는 유관순길 97년 전 4월1일(음력 3월 1일)에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병천 시장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이날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시위 현장에서 순국하였으며, 30여 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유관순은 주도자로 체포되어 공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같은 해 5월 9일, 유관순은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언도받아 중형을 받은 사람들과 경성복심법원으로 넘겨져 6월 30일 심법원에서 다시 3년형을 언도받았다. 함께 재판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은 유관순은 상고하지 않았다. 그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이신애, 어윤희, 박인덕 등과 함께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를 기해 3·1 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갖고,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3,000여 명의 수감자들이 크게 호응하여 만세 소리가 밖으로까지 퍼져나갔고, 만세를 외치는 함성에 형무소 주위로 인파가 몰려들어 전차 통행이 마비되고, 경찰 기마대가 출동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유관순은 물론, 많은 애국지사가 심한 고문을 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