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

가을에 푹~ 빠져볼래? 정독도서관과 서울교육박물관

‘정독도서관’은 벚꽃이 활짝 핀 봄에도 유명하지만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으로 가득한 가을날의 풍경도 멋지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덕성여중‧고 방향 율곡로3길은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의 친정 감고당이 있던 자리로 감고당길이라 한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도로 건너편에 정독도서관과 서울교육박물관 안내판이 눈에 띈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중년이 된 친구들이 도서관을 향해 걸어간다. ⓒ김미선 이 자리는 1938년 한국의 첫 근대 중등교육기관으로 출범한 경기고의 본관으로 1976년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후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발상지이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다. 도서관으로 향해 걸어가는 중년들이 옛 학창시절 이야기 꽃을 피운다.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 가을풍경 속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간다. 도서관 여기저기에 책 모형이 눈길을 끈다. ⓒ김미선 '정독 Therapy'는 그물 위에서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김미선 도서관 앞마당 여기저기에 책 모형이 눈길을 이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야외벤치에 앉아서 책을 펼치고 싶은 풍경이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과 가을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소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정겨움을 느껴본다. 도서관 이용자에게 편안한 독서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독 Therapy’ 위에 올라가본다. 그물 위에서 앉거나 누워 책을 읽으며 휴식을 갖는 공간이다. 안전하고 쾌적한 이용을 위해 신발은 벗고, 뛰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은 위험할 수 있어 사용을 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사를 그대로 담아낸 ‘서울교육박물관’ ⓒ김미선 광복 75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위인덕분에’ 전시가 열리고 있다. ⓒ김미선 정독도서관 입구에는 우리나라의 교육 발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서울교육박물관’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학생들은 과거의 학창시절을 재발견하게 ...
이봉창 울림 역사관 전경

첫 문을 연 ‘이봉창 역사울림관’에서 느낀 뜨거운 울림

효창동에 새로 개관한 '이봉창 역사울림관' ⓒ김윤경 "영원한 쾌락을 얻고자 우리 독립운동에 헌신하고자 합니다."31세의 나이에 목숨을 바친 이봉창 의사, 그를 기리는 '이봉창 역사울림관'이 개관했다. 지난 21일 용산구 효창동에 문을 연 이봉창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역사울림관과 앞 마당에 준비된 '이봉창 역사공원' ⓒ김윤경 이봉창 의사는 용산구에서 태어나 용산 역부로 일해 왔기에 생가터 표석도 용산구 내에 있다. 24살 되던 해, 일본으로 건너가 차별을 느끼고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 김구 선생과 만나 거사를 할 결심을 한다. 이 의사는 김구 선생이 주관한 ‘한인애국단’ 첫 번째 단원이 된다. 1932년 1월 도쿄 경시청 앞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오는 일왕에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스스로 체포돼 31세의 나이로 사형을 당했다. 이후 독립 1년 후인 1946년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국내로 돌아와 용산구 효창공원에 잠들어 있다. 효창공원 역 1번에 나오면 백범로 등이 눈에 띈다. ⓒ김윤경 효창공원역 1번 출구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이봉창 역사울림관'을 만나게 된다. 위치도 백범로에 위치해 더욱 독립의 기운이 풍긴다. 기념관은 전통 목조에 기와 지붕을 사용했고 전시실과 툇마루를 두고 한옥식 담장으로 꾸몄다. 앞 마당은 ‘이봉창 역사공원’으로 사과나무, 매화나무, 소나무 등이 심어졌다. 특히 역사공원 푯말 옆에 세워진 올곧은 소나무는 그의 기개를 나타내주는 듯싶다. 벤치가 있어 가볍게 쉬어가기에 좋다. 이봉창 역사울림관 전시관 내부 모습 ⓒ김윤경 툇마루 앞에 가까운 벤치에는 이봉창 의사와 김구 선생이 만난 듯한 모습이 보인다. 특히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구해 달라고 부탁한 폭탄을 유모차에 넣어 운반했다는 설명과 도시락 모형이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용산의 역사와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김윤경 실내에 마련된 전시실은 3곳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존에서는 ‘용산구 효창동에서 이봉창과 마주하다’라...
독립문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서 ‘만세’를 외치다!

독립문이 우뚝 세워져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은 필자가 1년에 한 번 이상 방문하는 곳이다. 서대문형무소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매번 독립문을 지나쳐 서대문형무소만 보고 돌아왔는데, 공원 안에도 서대문형무소 못지않게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조형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대문구에서 운영하는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다. 지난 주말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 참여했다. ⓒ김수정 사전예약을 한 후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독립공원 방문자센터를 향했다.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을 시작하기 전 독립문이 생기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강사가 설명해주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왕이 된 태종은 자신을 왕으로 적합한지 보러 온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서대문 밖에 '모화루'를 세웠다. 이후 세종은 모화루의 규모를 확장해 '모화관'으로 개칭하고, 그 앞에 환영한다는 의미로 화강암 위에 홍살문을 세웠다. 이 문이 독립문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탐방에 앞서 독립문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수정 설명이 끝나고 독립문으로 향했다. 이복형인 연산군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자신의 정통성을 명나라에 설득하기 위해 문을 개축해 청기와를 입히고 '영조문'이라는 액자를 내걸었다. 그러나 명나라 사신은 ‘조’라는 글자는 황제가 있는 나라에서 써야 한다며 '영은문'으로 고치게 했다. 이렇듯 영은문은 조선이 중국에 휘둘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이 개국하고 500년이 흐른 후 고종 때 우리도 청나라와 대등한 나라로 자주독립을 해야 한다고 외친 이들이 생겨난다. 그 중 한 명이 독립운동가 서재필이다. 그는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백성들이 깨우쳐야 한다며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한다. 또한, 치욕의 문이라 생각된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만들도록 한다. 청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당당함을 드러내고자 한 상징물이 된 것이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기 위해 영은문의 화강암 기둥은 남겨두었다. ...
사대문 안 학교들 온라인 전시회 영상에 나오는 졸업생들의 이야기

100년 전, 사대문안에는 어떤 학교들이 있었을까?

서울 사대문안 학교들은 한양도성 사대문 안이라는 지리적,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 등을 자랑하는 사대문안 학교들을 한 눈에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온라인 전시가 있어 소개한다. 우리나라 교육사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유서 깊은 사대문 안 학교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이 전시는 서울특별시중부교육지원청에서 개청 4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고 있다. '사대문안의 학교들 그 100년을 돌아보다' 전시는 지난 4월 21일부터 6월 28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 현장 전시를 진행했으며, 이후 코로나19 여파로 현재는 온라인을 통해 역사 자료집과 전시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서 사대문 안의 학교들 역사자료집과 온라인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다.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 특히 '사대문 안의 학교들' 전시는 각 학교의 다양한 역사 이야기가 담긴 자료집을 참고하면서 영상을 감상한다면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근현대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해 볼 수 있다. 역사자료집에 나와 있는 사대문안 학교들의 목록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 온라인 전시회 및 자료집은 서울특별시중부교육청 홈페이지(http://jbedu.sen.go.kr/CMS/index.html) 메인화면에서 바로 만나 볼 수 있다. 먼저 메인화면 좌측 상단에 있는 역사 자료집을 읽어 본 후 오른쪽 위에 있는 온라인영상을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사대문 안에 있는 다양한 학교에 대한 역사 이야기와 사진 등을 먼저 확인하고 온라인 영상에 담겨진 또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면 졸업생들의 학교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 등을 함께 접목 시키면 보다 흥미로운 전시 체험을 할 수 있다. 온라인 전시회의 핵심 자료라 할 수 있는 역사 자료집에는 중부 관내 총 103개의 초, 종, 고에 대한 역사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 교동초에 대한 역사자료집 내용  ⓒ서울중부교육지원청 홈...
이육사와 한용운이 살았던 성북구는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았던 곳이다

이육사, 한용운 살던 성북구 답사여행

시인 이육사와 한용운이 살았던 성북구는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았던 곳이다. Ⓒ박세호 ※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라 8월 16일부터 문화공간 이육사는 휴관합니다. 서울문학기행 프로그램은 계속 운영 중이나 일부 공간은 실외 탐방만 가능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추후 운영 지침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성북구는 문화전통이 풍성한 지자체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의 삶의 자취가 서린 유적지가 많다. 이번 나홀로 답사여행은 보문1교(보문 동센터 마당 앞) 아래 만세운동 벽화를 감상하고, 종암동센터 맞은편 ‘문화공간 이육사’의 3개층 전시장을 취재한 후, 만해 한용운의 유택인 심우장에 들러 광복의 기쁨을 새겨 보았다. “보문동 성북천변 독립운동 벽화 산책로” 벽화와 더불어 오른쪽에 ‘광고’ 격문을 산책로에 내걸었다. Ⓒ박세호 지난 6월 23일 보문동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성북천변의 만세운동 벽화와 당시 배포되었던 격문이다. 1919년 3월 24일 성북동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이틀 뒤 3월 26일 오전 3시부터 6시 사이 신설리(현 보문동)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26일 밤 2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하며 전차에 투석을 했고, 3월 27일에는 500여 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대단한 용기와 투쟁의식의 발로였다. 벽화와 함께 게시된 광고 ‘격문’은 일제에 저항하는 의지를 담아 "근처 여러 동리 사람들은 진정 불쌍하고 가엾도다. 너희는 국가도 모르고 벙어리도 아닌 바에 어찌 대한제국 독립만세를 부를 줄 모르는가?"라고 묻는다. 주민들이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애향심을 고취하며 벽화와 광고 격문을 산책로에 그렸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삶의 터전 '문화공간 이육사'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이육사(1904년-1944년)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과 포항(1936년 잠시 머뭄)에 ‘이육사 문학관’과 시비와 공원이 있다. 그런데 ...
75주년 광복절 기념 서울꿈새김판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8.15 광복절, 시민과 함께 기억하는 그 날의 문장들

75주년 광복절 기념 서울꿈새김판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올해로 광복절이 75주년을 맞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광복을 맞았던 그 날의 환희를 생각하면 뭉클해집니다. 서울시는 매년 시민과 함께 광복의 기쁨과 의미를 나누는 ‘서울꿈새김판’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역대 광복절 꿈새김판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자리에 모아봤습니다. 2020년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서울시는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광장 꿈새김판을 8월 13일 새롭게 단장했다.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라는 문구를 담은 이번 꿈새김판은, 코로나19가 시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현재의 상황을 ‘코로나 강점기’에 비유해 온 겨레가 힘을 합쳐 일제강점기를 이겨냈듯이 서울시도 현재의 어려움을 시민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서울시는 적극적인 대처와 시민들의 방역수칙 준수로 전 세계의 모델이 되고 있는 K-방역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광복의 의미를 함께 되새긴다면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2016년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9호) 시청외벽 래핑 이제 4년 전, 서울시청 앞으로 돌아가보자. ‘완전 독립을 위해 노력하자’, ‘조국을 위해 희생하자’, ‘굳세게 싸우자’, ‘우리의 독립은 단결이다’, ‘자주자립’… 일제강점기 조국을 위해 싸운 광복군 70여명의 독립에 대한 염원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담은 서명과 다짐이 빼곡하게 적힌 대형 태극기가 71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시청 외벽에 걸렸다. 이 태극기는 광복군 제3지대 제2지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본명 문수열) 대원이 1945년 2월 경 동료 이정수 대원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이듬해 문 대원이 다른 부대로 옮기게 되자 동료들이 태극기 여백에 가득 글귀와 서명을 적어준 것이다. 태극기는 1986년 독립기...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꽃시계, 현충문 모습(뒤편)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을 아시나요?

“묘소도 없고 자손도 없이 외로운 혼으로 도는 이들 돌보아 드린 이 하나 없고 기억마저 사라져 가므로 존함이나마 정성껏 새겨 따로 이곳에 모시옵나니 선열들이여 국민 모두가 후손이외다 우리들 제사 받으옵소서”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새겨진 헌시비의 일부 내용이다. 독립유공자묘역에 있는 무후선열제단 모습 ⓒ최용수 국립서울현충원 봉안식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서 대형 태극기 조형물을 만난다. 독립유공자묘역을 알려주는 무언의 태극기이다. 서울현충원에는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국군장병은 물론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투쟁한 순국선열들이 함께 계신다. 모두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들이다. 대형태극기 조형물이 있는 곳이 독립유공자 묘역이다. ⓒ최용수 서울현충원은 해발 174.8m 공작봉을 중심으로 활짝 날개를 펼친 공작새가 한강을 내려다보며 품고 있는 형상으로 풍수지리적 명당 중의 명당이다. 약 44만평(144만㎡)의 대지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18만 1,000여 분이 영면하고 계신다.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전경 ⓒ최용수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관리소가 창설된 후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된다. 이후 2006년 1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원수묘소, 임시정부요인묘역, 독립유공자묘역, 무후선열제단, 장군묘역, 장병묘역, 경찰관묘역, 외국인묘소 9개 묘역으로 나뉘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산책길에는 영령들을 추모하는 유가족들의 글이 찡하게 느껴온다. ⓒ최용수 호국보훈의 달이 되면 유가족, 시민, 학생 등 많은 사람들이 현충원의 호국영령들을 찾는다. 그러나 시민들이 거의 찾지 않은 외로운 순국선열들을 찾아가 보았다. 바로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다. 무후선열제단은 독립유공자묘역 충열대 뒤편에 자리했다. 의무후선열제단의 내부 모습, 가운데 제단이 있고 130명의 위패가 3계단에 모셔져 있다. ⓒ최용수 무후(無後)는 후손이 없다는 뜻이다. 구한말 때의 의병활동과 일...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의 생애를 기념하는 문화공간 이육사

‘청포도’ 쓴 시인 이육사를 만나다, 문화공간 264

윤동주, 한용운과 같이 독립운동을 한 저항시인으로 기억되는 시인이 있다. '광야', '청포도'를 쓴 시인 이육사다. 그는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 62번지에 거주하며 대표작인 청포도를 발표했다. 지난 12월 이육사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인 '문화공간 이육사'가 성북구 종암동에 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만나는 ‘문화공간 이육사’ ⓒ박은영 문화공간 '264'라는 이름은 투사와 시인, 의열단과 선비, 행동과 감성을 넘나든 시인의 삶을 그린 고은주 작가의 책 '그 남자 264'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아울러 숫자 '264’는 이육사 시인이 의열단 활동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됐을 당시 수인번호이기도 하다. 문화공간 이육사는 이름 그대로 방문객들이 이육사와 성북구를 보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1층에는 주민 소통공간 '청포도 라운지'를 조성해 주민들의 휴게공간을 마련하였고 더불어 성북구 역사문화 소개, 도서 열람도 제공한다. 성북구 종암동에 새롭게 개관한 문화공간 이육사 ⓒ박은영 상설전시장이 있는 2층엔 이육사의 활동 및 작품 실물자료 영상을 볼 수 있다. 벽면의 여러 단어 중 하나의 시어를 터치하면 등장하는 이육사를 시를 감상할 수도 있으며 이육사의 마지막 시 '광야'에 담긴 이야기를 지도로 활용한 전시가 눈길을 끈다.   지역주민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 ⓒ박은영 문화공간 이육사 2층은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요구가 만들어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이육사가 작품을 발표한 대표 잡지, 그의 동지와 친구들, 이육사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의 인터뷰 영상 등을 통해 이육사를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이육사의 시 '꽃', '절정', '교목'을 필사할 수 있도록 했다. 각층을 오르는 계단에는 시인의 연대기와 함께 올가미처럼 조여 오는 일제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이육사의 생애를 상징하듯 '튼튼한 밧줄'로 난간을 조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튼튼한 밧줄로 연결...
민주공화정 서랍전

서랍 안에 숨겨진 역사적 보물 ‘민주공화정 서랍전’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헌법 형식의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선포했다.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기관으로,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에서 국내외의 독립운동가 29명이 모여 3·1운동의 민주주의 이념과 민족자주정신을 이어받아 구성된 조직이다. 임시헌장 제1조에서는 민주공화제를 선언하고 제2조에서는 대의제를 천명했다. 제3조의 평등권, 제4조의 자유권, 제5조의 참정권 등은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며, 제6조에서는 교육·납세·병역 등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규정했다. 이러한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기초가 되며, 대한민국정부 수립에 근간이 되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사다. 새로운 약속, 지켜야 할 약속 '민주공화정 서랍전' 현수막 ©민정기 이를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의회와 사단법인 조소앙선생 기념사업회는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새로운 백년 지켜야 할 약속, 민주공화전 서랍展’을 개최한다. 전시기간은 21일에서 2월 8일까지로 연장되었다.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에, 2020년은 새로운 백년이 또 다시 시작되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기억되지 않고 잊혀진 100여 년의 세월이 기억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시간이 되도록 그 마음과 독립정신을 ‘서랍’에 담았다고 한다. 우리의 근간이 되는 역사적 흔적들을 직접 열어보고 확인하기 위해 전시장을 방문해 보았다.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청화백자들 ©민정기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적 자료와 조소앙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어록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선조들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공화국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또한, 광복 이후 헌정사 속에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걸어온 발자취를 대한민국 역대 헌법개정안과 김대중 대통령 사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윤봉길의 독립정신이 담겨있는 청화백자 ©민정기 독립운동가가 꿈꿨던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의회정치와 지방...
국회도서관 1층 중앙로비에 마련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시실' 입구 모습

국회도서관에서 만난 100년 전 ‘임시의정원’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전경, 세계 일류 의회도서관이다 ⓒ최용수 “세계의 지식정보를 수집하여 국회와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의회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인류의 지적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후세에 전승 한다” 이는 바로 민의의 전당 국회도서관의 미션이다. 한국전쟁 때인 1952년 2월 20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회도서실로 출발한 국회도서관은 현재 단행본·논문 등 일반도서 480만3,088권, 전자자료 및 오디오·비디오 등 비도서 55만154점 등 총 679만1,769점의 자료를 보유한 세계적인 의회도서관이다. 이곳 도서관 1층에는 아주 특별한 전시실이 하나 있다. 국회도서관 중앙홀에 있는 홍진 의장 흉상과 유묵 ⓒ최용수 중앙로비를 응시하는 흉상과 “與子同歸(여자동귀)”라는 유묵이 ‘홍진 임시의정원 의장 기념 전시실’임을 말해준다. ‘조국이 독립되면 우리 모두 함께 돌아가자’는 뜻의 유묵(遺墨,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글씨)으로 의장이 중경을 떠나 환국하기 전 조국독립의 감회를 필적으로 남긴 글이다. 국회도서관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념실은 2010년에 마련되었다. 3.1운동과 임시의정원 100주년이던 지난해 4월, 임시의정원 마지막 의장인 홍진 선생의 유족들이 임시의정원 관인(官印)과 인장, 주요문서 등 추가로 기증한 귀중한 유품들로 전시실을 재구성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사진 ⓒ최용수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뿌리가 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생소하다 생각한다. 의정원이란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며, 임시정부의 입법부 역할을 다하였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에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 모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한다. 임시정부의 기본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여 임시정부 탄생의 토대를 마련한다. 또한 초대 의장으로 이동녕, 국무총리로 이승만을 선출한다. 지금 쓰고 있는 우리의 국호 ‘대한민국’이 이때 만들어진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