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정 서랍전

서랍 안에 숨겨진 역사적 보물 ‘민주공화정 서랍전’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헌법 형식의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선포했다.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기관으로,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에서 국내외의 독립운동가 29명이 모여 3·1운동의 민주주의 이념과 민족자주정신을 이어받아 구성된 조직이다. 임시헌장 제1조에서는 민주공화제를 선언하고 제2조에서는 대의제를 천명했다. 제3조의 평등권, 제4조의 자유권, 제5조의 참정권 등은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며, 제6조에서는 교육·납세·병역 등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규정했다. 이러한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기초가 되며, 대한민국정부 수립에 근간이 되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사다. 새로운 약속, 지켜야 할 약속 '민주공화정 서랍전' 현수막 ©민정기 이를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의회와 사단법인 조소앙선생 기념사업회는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새로운 백년 지켜야 할 약속, 민주공화전 서랍展’을 개최한다. 전시기간은 21일에서 2월 8일까지로 연장되었다.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에, 2020년은 새로운 백년이 또 다시 시작되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기억되지 않고 잊혀진 100여 년의 세월이 기억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시간이 되도록 그 마음과 독립정신을 ‘서랍’에 담았다고 한다. 우리의 근간이 되는 역사적 흔적들을 직접 열어보고 확인하기 위해 전시장을 방문해 보았다.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청화백자들 ©민정기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적 자료와 조소앙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어록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선조들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공화국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또한, 광복 이후 헌정사 속에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걸어온 발자취를 대한민국 역대 헌법개정안과 김대중 대통령 사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윤봉길의 독립정신이 담겨있는 청화백자 ©민정기 독립운동가가 꿈꿨던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의회정치와 지방...
국회도서관 1층 중앙로비에 마련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시실' 입구 모습

국회도서관에서 만난 100년 전 ‘임시의정원’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전경, 세계 일류 의회도서관이다 ⓒ최용수 “세계의 지식정보를 수집하여 국회와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의회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인류의 지적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후세에 전승 한다” 이는 바로 민의의 전당 국회도서관의 미션이다. 한국전쟁 때인 1952년 2월 20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회도서실로 출발한 국회도서관은 현재 단행본·논문 등 일반도서 480만3,088권, 전자자료 및 오디오·비디오 등 비도서 55만154점 등 총 679만1,769점의 자료를 보유한 세계적인 의회도서관이다. 이곳 도서관 1층에는 아주 특별한 전시실이 하나 있다. 국회도서관 중앙홀에 있는 홍진 의장 흉상과 유묵 ⓒ최용수 중앙로비를 응시하는 흉상과 “與子同歸(여자동귀)”라는 유묵이 ‘홍진 임시의정원 의장 기념 전시실’임을 말해준다. ‘조국이 독립되면 우리 모두 함께 돌아가자’는 뜻의 유묵(遺墨,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글씨)으로 의장이 중경을 떠나 환국하기 전 조국독립의 감회를 필적으로 남긴 글이다. 국회도서관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념실은 2010년에 마련되었다. 3.1운동과 임시의정원 100주년이던 지난해 4월, 임시의정원 마지막 의장인 홍진 선생의 유족들이 임시의정원 관인(官印)과 인장, 주요문서 등 추가로 기증한 귀중한 유품들로 전시실을 재구성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사진 ⓒ최용수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뿌리가 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생소하다 생각한다. 의정원이란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며, 임시정부의 입법부 역할을 다하였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에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 모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한다. 임시정부의 기본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여 임시정부 탄생의 토대를 마련한다. 또한 초대 의장으로 이동녕, 국무총리로 이승만을 선출한다. 지금 쓰고 있는 우리의 국호 ‘대한민국’이 이때 만들어진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
3.1 독립선언광장의 우측 전경

잊어서는 안 될 33인의 별, 330개의 빛으로 기억하다

1919년 3월 1일,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태화관에서는 33인의 민족대표가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2019년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해로, 서울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태화관 터에 ‘3·1 독립선언광장’을 조성했으며, 지난 12월 23일 오후 6시부터 ‘3·1 독립선언광장 조명 점등식’을 개최했다.3.1 독립선언광장의 우측 전경 ©민정기3.1 독립선언광장의 좌측 전경 ©민정기‘3·1독립선언광장’에는 백두산과 한라산, 하얼빈과 카자흐스탄 등 주요 독립운동 7개 기념지에서 운반된 자연석이 사용되었으며, 100개의 마천석은 3·1운동 100주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바닥에 쓰인 330개의 조명은 소리와 음향에 반응하여 여러 가지 패턴을 연출하며, 이는 민족사의 별이 된 독립운동가를 상징한다.좌측부터 백두산 천지를 상징하는 우물과 한라산 백록담을 상징하는 수로의 끝 ©민정기광장 한복판에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상징하는 우물과 수로를 조성하고, 그 사이에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했다. 수로의 넓이는 450mm로 이는 광복을 이뤄낸 1945년을 상징하며, 수로 길이는 2만4,640mm로 이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2,464리의 거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광장 우측에 위치한 소나무 세 그루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좌측에 위치한 느티나무 한 그루는 민족 공동체를 상징하며, 조경에 쓰인 풀과 나무 등은 모두 우리나라의 고유 품종으로 심었다고 한다.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을 공연하고 있는 '퍼포먼스 그룹 오' ©민정기이 날 행사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었으며, 1부에서는 ‘퍼포먼스 그룹 오’의 공연이 펼쳐졌다. 쌀쌀한 날씨인 만큼 다양한 뮤지컬 공연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후, ‘광장에서 만나는 안중근’을 주제로 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을 통해 독립투사들의 투쟁이야기를 공연했다. 광장의 취지와 어울리는 훌륭한 공연에 관람중인 시민들은 큰 호응으로 응답했다.공연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김남중과 엔클래식 앙상블 단원들 ©민정기1부가 끝난...
문화공간 이육사

종암동 ‘문화공간 이육사’ 개관…시인의 40년 삶과 문학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 이육사’ ⓒ김미선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이육사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경북 안동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열일곱 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멀리 안동을 가지 않아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 이육사’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문화공간 이육사’ 입구의 모습 ⓒ김미선 안동과 대구,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이육사가 어떠한 이유에서 종암동에 머물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표적인 시이자 스스로 가장 사랑한 시 ‘청포도’를 발표한 곳이 성북구 종암동 62번지라고 한다. 1939년부터 성북구 종암동에 거주하며 대표작 ‘청포도’를 발표한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문화공간 이육사’가 문을 열게 되었다. 지역문화 커뮤니티 공간이고, 이육사의 작품과 식민지 시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던 그날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이육사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가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김미선 12월 17일(화) 오후 3시 개관식이 있었던 이 날은 이육사의 유고 시 ‘광야’가 처음으로 발표된 날짜에 진행해서 그 의미를 더했다. 많은 분들의 축하 인사와 함께 이육사 선생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의 감사인사도 이어졌다. 시낭송가의 낭송으로 ‘광야’가 울려 퍼지고, 축하공연으로 역사와 시 그리고, 마을을 노래하는 빈티지 프랭키의 음악으로 ‘꽃’과 ‘청포도’를 들을 수 있었다.  이육사의 활동 및 작품 실물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는 2층 광야 상설전시실 ⓒ김미선 ‘문화공간 이육사’는 지역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민들의 참여로 명칭을 정했고, 각 층의 이름은 공간의 기능에 따라 이육사의 대표적인 시에서 가져왔다. 1층 청포도 라운지는 이육사와 성북구 역사문화를...
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에 생긴 작은 집의 정체는?

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를 옥바라지했던 가족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를 기억하는 전시 공간이 생긴다. 서울시는 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에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을 조성하고 20일 개관한다고 밝혔다. 시는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조성 배경에 대해 독립투사들이 혹독한 수감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자 독립운동의 조력자인 가족들의 삶을 독립운동사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공간은 과거 옥바라지 골목으로 불렸던 무악2구역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조합과 주민 등 이해관계자 간 소통과 양보로 조성한 공간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2016년 당시 골목 보존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이후 서울시가 개입해 수개월 간 논의와 대화를 이어간 끝에 독립운동과 옥바라지와 관련한 역사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합의를 이뤘다. 재개발 사업에서 주민 간 소통과 합의를 통해 마을의 역사 이야기와 무형적 가치를 흔적으로 남긴 첫 번째 사례로, 서울시는 향후 이런 노력을 ‘서울 역사 흔적 지키기’라는 이름으로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내부 공간구성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은 소담한 한옥 건물로, 연면적 약 78㎡에 2개 전시공간(전시실 A동, 전시실 B동)으로 구성됐다. 50cm 크기 창으로 얼굴만 볼 수 있었던 형무소 면회실의 모습, 안창호가 아들 필립에게 보낸 편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옛 모습 등을 담은 영상 등 일제강점기 ‘옥바라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전시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내부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은 화요일~토요일(주5일) 10시~18시 운영되며, 관람료는 무료다(매주 월‧일요일, 법정공...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광복절에 기억해야 될 ‘파란 눈의 애국지사’ 4인방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8월이면 부르는 광복절 노랫말이다. 최근 일본을 보노라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광복은 어느 날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애국지사들의 피나는 투쟁 결과물이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애국지사들을 되새긴다. 그런데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 중에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파란 눈의 애국지사’들이 있다. 광복절만이라도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싶다. 기억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고 작은 보답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될 외국인 독립운동가 4인을 소개한다. 월암근린공원 ① 고종이 한국명을 하사한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 광화문에서 경교장을 지나 10여분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월암근린공원’이 나온다 . 이곳에 베델이 살던 집이 있었고, 지금은 공원 한켠에 ‘베델의 집터’라는 표석(標石)이 남아있다. 델집터 표석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 출신의 애국자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이미 국운이 기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한글판 와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일제는 언론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했으나 영국인이란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베델의 신문에는 손 댈 수가 없었다.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황무지 개간권 반대, 고종 밀서 등을 보도하며,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운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근신형과 금고형을 받는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 유언에 ...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

우리가 몰랐던 ‘34번째 민족대표’ 이야기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 “석호필을 아시나요?” 이 물음에 당신은 대답을 어떻게 하겠는가. 실제로 여러 시민들에게 물어본 결과, 인기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석호필’이 있다.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활약한 인물,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뿐만 아니라 ‘석호필’과 같은 푸른 눈을 가진 4명의 청년들의 존재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5명의 캐나다인들이 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서울시 시민청에서 펼쳐지고 있다.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3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 중이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함께 지키고 의료봉사와 학교 설립 등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힘을 더한 캐나다인들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3·1운동과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 프랭크 스코필드의 손자, 딘 스코필드 전시는 5명의 캐나다인들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들과 관련된 글, 영상, 사진 50여 점 등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속 이들의 활약을 조명하고 있다. 조선 말기인 1888년부터 1945년까지 200여 명에 이르는 캐나다인이 선교사, 학자, 의사, 기자로 한국을 찾아왔으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고, 일제의 학살을 국제사회에 폭로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다섯 명의 캐나다인은 로버트 그리어슨, 아치발드 바커, 스탠리 마틴, 프레드릭 맥켄지, 프랭크 스코필드이다. ‘로버트 그리어슨’이 바라...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 ‘여운형 활동터’라는 이름이 병기되었다.

버스 타고 떠나는 ‘서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 ‘여운형 활동터’라는 이름이 병기되었다. 1923년 1월 22일 새벽, 일본 군경 천여 명이 지붕 위의 한 남자를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남자는 세 시간 동안 총탄 세례를 피하며 총격전을 벌이다가 최후의 한 발로 자결했다. 그의 시신에서는 11발의 총상이 발견되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날의 주인공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잘 알려진 김상옥 의사였다. 종로구 효제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생의 마지막을 맞은 곳도 이곳이었다. 그의 장렬한 순국을 기리며 ‘효제동 버스정류장’에 ‘김상옥 의거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서 있는 김상옥 의사 동상 2월 22일부터 서울 시내 마을버스 정류장 두 곳을 포함한 14곳의 버스정류장 이름에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서울역사박물관’ 역에는 ‘김구 집무실(경교장)’ 표기가 더해지고, 인사동 입구는 ‘인사동 들머리, 3.1운동 선언 터’가 되었다. 반가운 소식에 길을 나서 몇 군데 정류장을 찾아보았다. 21일, 버스정류장에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독립운동가 김상옥의 활동터임을 기려 효제동 버스정류장에 ‘김상옥 의거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대학로로 이어지는 ‘효제초교, 연동교회’ 버스정류장에는 ‘김마리아 활동터’가 병기되었다.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한 김마리아는 요즘 말로 걸크러시 그대로였다. 일본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2.8독립선언서를 숨긴 기모노를 입고 들어와 부산과 대구, 광주, 서울을 돌며 3·1운동을 사전 준비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겪은 고문으로 한쪽 가슴을 절개해 평생 좌우 높이가 다른 저고리를 입고 살았으나 “조선의 독립과 결혼했다”던 그의 양심은 계속되던 신사참배 요구에도 흔들림 없이 반듯하고 정의로웠다. ‘효제초교, 연동교회’ 버스정류장에는 ‘김마리아 활동터’를 병기하며 김마리아에 대한 소개도 함께 안내하고 있다. 19...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 서대문형무소 야간역사체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완연한 가을이다. 지난 10월 6일 저녁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아주 특별한 가을날의 노래가 전해졌다. “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라는 야간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선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감옥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과 ‘창작집단 탈무드’가 함께 하는 참여형 연극으로 2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다. 박경목 관장의 해설 모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이 직접 사회를 보며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첫 무대의 노래인 ‘조선의 마음’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홀로 메마른 들판 위에 기댈 곳 하나 없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조선의 마음’ 노래는 일제에게 억압을 받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민중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실제 일제강점기 때는 금지곡으로 지정이 될 만큼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 있는 노래이다. 다음 곡으로는 영화 에 나오는 OST 주제곡이며 가수 이효리가 재능 기부를 한 ‘나를 잊지 말아요’를 열창하였다. 영화 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다. 꽃 다운 나이에 일제 총, 칼 앞에 강제로 이름 모를 전장으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당한 우리 민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위안부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1990년 초반이었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중 현재 생존해 계시는 피해 할머님들은 이제 불과 27명 정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나라와 국민이 힘을 더하고, 노력해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분들이 소외되고,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생각해 봐야겠다. 약 30분간 의미 있는 노래 공연이 진행되었고, 다음으로 서대문형무소 투어와 함께 연극체험이 시작되었다. 모든 참가자가 달빛이 짙은 밤 하늘 아래 보안과청사 앞에 모였다. 학예연구사님의 보안과청사에 대...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고 이은숙 선생의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고 이은숙 선생의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 오는 8월 15일 열리는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행사’에서 의 저자이자 여성 독립운동가 고 이은숙 여사(1889∼1979)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된다. 고 이은숙 여사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아내로 만주를 거점으로 한 독립운동을 지원했지만, 그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남편 이회영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니 이보다 56년 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는 셈이다. “‘하루 잘 해야 일중식(日中食 : 아침, 저녁은 굶고 점심만 먹음)이나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화(밥을 짓지 못함)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으니 생불여사(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어려운 삶)로다’라고 적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수시로 집에 방문하는 독립운동가들을 대접하며 지원했다.” 고 이은숙 여사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의 부인 정락경 여사가 그 시절을 회상하듯 낭랑하게 를 읽어내려갔다. 매 글귀마다 당시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당시 극한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글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목메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고 이은숙 여사의 친손자인 이종찬·이종걸 의원이 낭독자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 명동 YWCA에선 뜻깊은 모임이 있었다. 이름하여 ‘서간도 시종기(西間島 始終記) 낭독회’이다. ‘서간도 시종기’는 우당 이회영의 아내였던 영구(榮求) 이은숙(李恩淑) 선생의 회고록이다. 이 ‘서간도 시종기’를 왜 서울시에서 3·1운동 100주년 맞이 기념사업의 하나로 선정하였고, 이곳 명동 한복판에서 낭독하였을까?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사료적 가치가 높았고 이곳이 바로 우당 이회영의 집터였기 때문이다.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와 활동한 독립운동가였다. 이회영과 여섯 형제들은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자손으로 집안대대로 정승과 판서가 끊이지 않은 집안이다. 재산도 많아 무병장수하던 집안 내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