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와 한용운이 살았던 성북구는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았던 곳이다

이육사, 한용운 살던 성북구 답사여행

시인 이육사와 한용운이 살았던 성북구는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았던 곳이다. Ⓒ박세호 성북구는 문화전통이 풍성한 지자체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의 삶의 자취가 서린 유적지가 많다. 이번 나홀로 답사여행은 보문1교(보문 동센터 마당 앞) 아래 만세운동 벽화를 감상하고, 종암동센터 맞은편 ‘문화공간 이육사’의 3개층 전시장을 취재한 후, 만해 한용운의 유택인 심우장에 들러 광복의 기쁨을 새겨 보았다. “보문동 성북천변 독립운동 벽화 산책로” 벽화와 더불어 오른쪽에 ‘광고’ 격문을 산책로에 내걸었다. Ⓒ박세호 지난 6월 23일 보문동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성북천변의 만세운동 벽화와 당시 배포되었던 격문이다. 1919년 3월 24일 성북동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이틀 뒤 3월 26일 오전 3시부터 6시 사이 신설리(현 보문동)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26일 밤 2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하며 전차에 투석을 했고, 3월 27일에는 500여 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대단한 용기와 투쟁의식의 발로였다. 벽화와 함께 게시된 광고 ‘격문’은 일제에 저항하는 의지를 담아 "근처 여러 동리 사람들은 진정 불쌍하고 가엾도다. 너희는 국가도 모르고 벙어리도 아닌 바에 어찌 대한제국 독립만세를 부를 줄 모르는가?"라고 묻는다. 주민들이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애향심을 고취하며 벽화와 광고 격문을 산책로에 그렸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삶의 터전 '문화공간 이육사'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이육사(1904년-1944년)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과 포항(1936년 잠시 머뭄)에 ‘이육사 문학관’과 시비와 공원이 있다. 그런데 성북구 종암동에도 새롭게 ‘문화공간 이육사’가 문을 열었다. 1939년부터 성북구 종암동 62번지에 거주하며 대표작인 ‘청포도’를 발표한 문학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곳에 살면서 딸 이옥비를 낳는 행복과 양친을 잃는 ...
75주년 광복절 기념 서울꿈새김판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8.15 광복절, 시민과 함께 기억하는 그 날의 문장들

75주년 광복절 기념 서울꿈새김판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올해로 광복절이 75주년을 맞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광복을 맞았던 그 날의 환희를 생각하면 뭉클해집니다. 서울시는 매년 시민과 함께 광복의 기쁨과 의미를 나누는 ‘서울꿈새김판’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역대 광복절 꿈새김판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자리에 모아봤습니다. 2020년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서울시는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광장 꿈새김판을 8월 13일 새롭게 단장했다. ‘빼앗긴 일상, 시민과 함께 되찾겠습니다.’ 라는 문구를 담은 이번 꿈새김판은, 코로나19가 시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현재의 상황을 ‘코로나 강점기’에 비유해 온 겨레가 힘을 합쳐 일제강점기를 이겨냈듯이 서울시도 현재의 어려움을 시민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서울시는 적극적인 대처와 시민들의 방역수칙 준수로 전 세계의 모델이 되고 있는 K-방역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광복의 의미를 함께 되새긴다면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2016년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9호) 시청외벽 래핑 이제 4년 전, 서울시청 앞으로 돌아가보자. ‘완전 독립을 위해 노력하자’, ‘조국을 위해 희생하자’, ‘굳세게 싸우자’, ‘우리의 독립은 단결이다’, ‘자주자립’… 일제강점기 조국을 위해 싸운 광복군 70여명의 독립에 대한 염원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담은 서명과 다짐이 빼곡하게 적힌 대형 태극기가 71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시청 외벽에 걸렸다. 이 태극기는 광복군 제3지대 제2지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본명 문수열) 대원이 1945년 2월 경 동료 이정수 대원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이듬해 문 대원이 다른 부대로 옮기게 되자 동료들이 태극기 여백에 가득 글귀와 서명을 적어준 것이다. 태극기는 1986년 독립기...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꽃시계, 현충문 모습(뒤편)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을 아시나요?

“묘소도 없고 자손도 없이 외로운 혼으로 도는 이들 돌보아 드린 이 하나 없고 기억마저 사라져 가므로 존함이나마 정성껏 새겨 따로 이곳에 모시옵나니 선열들이여 국민 모두가 후손이외다 우리들 제사 받으옵소서”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새겨진 헌시비의 일부 내용이다. 독립유공자묘역에 있는 무후선열제단 모습 ⓒ최용수 국립서울현충원 봉안식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서 대형 태극기 조형물을 만난다. 독립유공자묘역을 알려주는 무언의 태극기이다. 서울현충원에는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국군장병은 물론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투쟁한 순국선열들이 함께 계신다. 모두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들이다. 대형태극기 조형물이 있는 곳이 독립유공자 묘역이다. ⓒ최용수 서울현충원은 해발 174.8m 공작봉을 중심으로 활짝 날개를 펼친 공작새가 한강을 내려다보며 품고 있는 형상으로 풍수지리적 명당 중의 명당이다. 약 44만평(144만㎡)의 대지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18만 1,000여 분이 영면하고 계신다.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전경 ⓒ최용수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관리소가 창설된 후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된다. 이후 2006년 1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원수묘소, 임시정부요인묘역, 독립유공자묘역, 무후선열제단, 장군묘역, 장병묘역, 경찰관묘역, 외국인묘소 9개 묘역으로 나뉘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산책길에는 영령들을 추모하는 유가족들의 글이 찡하게 느껴온다. ⓒ최용수 호국보훈의 달이 되면 유가족, 시민, 학생 등 많은 사람들이 현충원의 호국영령들을 찾는다. 그러나 시민들이 거의 찾지 않은 외로운 순국선열들을 찾아가 보았다. 바로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다. 무후선열제단은 독립유공자묘역 충열대 뒤편에 자리했다. 의무후선열제단의 내부 모습, 가운데 제단이 있고 130명의 위패가 3계단에 모셔져 있다. ⓒ최용수 무후(無後)는 후손이 없다는 뜻이다. 구한말 때의 의병활동과 일...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의 생애를 기념하는 문화공간 이육사

‘청포도’ 쓴 시인 이육사를 만나다, 문화공간 264

윤동주, 한용운과 같이 독립운동을 한 저항시인으로 기억되는 시인이 있다. '광야', '청포도'를 쓴 시인 이육사다. 그는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 62번지에 거주하며 대표작인 청포도를 발표했다. 지난 12월 이육사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인 '문화공간 이육사'가 성북구 종암동에 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만나는 ‘문화공간 이육사’ ⓒ박은영 문화공간 '264'라는 이름은 투사와 시인, 의열단과 선비, 행동과 감성을 넘나든 시인의 삶을 그린 고은주 작가의 책 '그 남자 264'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아울러 숫자 '264’는 이육사 시인이 의열단 활동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됐을 당시 수인번호이기도 하다. 문화공간 이육사는 이름 그대로 방문객들이 이육사와 성북구를 보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1층에는 주민 소통공간 '청포도 라운지'를 조성해 주민들의 휴게공간을 마련하였고 더불어 성북구 역사문화 소개, 도서 열람도 제공한다. 성북구 종암동에 새롭게 개관한 문화공간 이육사 ⓒ박은영 상설전시장이 있는 2층엔 이육사의 활동 및 작품 실물자료 영상을 볼 수 있다. 벽면의 여러 단어 중 하나의 시어를 터치하면 등장하는 이육사를 시를 감상할 수도 있으며 이육사의 마지막 시 '광야'에 담긴 이야기를 지도로 활용한 전시가 눈길을 끈다.   지역주민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 ⓒ박은영 문화공간 이육사 2층은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요구가 만들어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이육사가 작품을 발표한 대표 잡지, 그의 동지와 친구들, 이육사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의 인터뷰 영상 등을 통해 이육사를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이육사의 시 '꽃', '절정', '교목'을 필사할 수 있도록 했다. 각층을 오르는 계단에는 시인의 연대기와 함께 올가미처럼 조여 오는 일제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이육사의 생애를 상징하듯 '튼튼한 밧줄'로 난간을 조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튼튼한 밧줄로 연결...
민주공화정 서랍전

서랍 안에 숨겨진 역사적 보물 ‘민주공화정 서랍전’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헌법 형식의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선포했다.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기관으로,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에서 국내외의 독립운동가 29명이 모여 3·1운동의 민주주의 이념과 민족자주정신을 이어받아 구성된 조직이다. 임시헌장 제1조에서는 민주공화제를 선언하고 제2조에서는 대의제를 천명했다. 제3조의 평등권, 제4조의 자유권, 제5조의 참정권 등은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며, 제6조에서는 교육·납세·병역 등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규정했다. 이러한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기초가 되며, 대한민국정부 수립에 근간이 되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사다. 새로운 약속, 지켜야 할 약속 '민주공화정 서랍전' 현수막 ©민정기 이를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의회와 사단법인 조소앙선생 기념사업회는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새로운 백년 지켜야 할 약속, 민주공화전 서랍展’을 개최한다. 전시기간은 21일에서 2월 8일까지로 연장되었다.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에, 2020년은 새로운 백년이 또 다시 시작되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기억되지 않고 잊혀진 100여 년의 세월이 기억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시간이 되도록 그 마음과 독립정신을 ‘서랍’에 담았다고 한다. 우리의 근간이 되는 역사적 흔적들을 직접 열어보고 확인하기 위해 전시장을 방문해 보았다.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청화백자들 ©민정기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적 자료와 조소앙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어록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선조들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공화국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또한, 광복 이후 헌정사 속에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걸어온 발자취를 대한민국 역대 헌법개정안과 김대중 대통령 사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윤봉길의 독립정신이 담겨있는 청화백자 ©민정기 독립운동가가 꿈꿨던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의회정치와 지방...
국회도서관 1층 중앙로비에 마련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시실' 입구 모습

국회도서관에서 만난 100년 전 ‘임시의정원’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전경, 세계 일류 의회도서관이다 ⓒ최용수 “세계의 지식정보를 수집하여 국회와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의회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인류의 지적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후세에 전승 한다” 이는 바로 민의의 전당 국회도서관의 미션이다. 한국전쟁 때인 1952년 2월 20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회도서실로 출발한 국회도서관은 현재 단행본·논문 등 일반도서 480만3,088권, 전자자료 및 오디오·비디오 등 비도서 55만154점 등 총 679만1,769점의 자료를 보유한 세계적인 의회도서관이다. 이곳 도서관 1층에는 아주 특별한 전시실이 하나 있다. 국회도서관 중앙홀에 있는 홍진 의장 흉상과 유묵 ⓒ최용수 중앙로비를 응시하는 흉상과 “與子同歸(여자동귀)”라는 유묵이 ‘홍진 임시의정원 의장 기념 전시실’임을 말해준다. ‘조국이 독립되면 우리 모두 함께 돌아가자’는 뜻의 유묵(遺墨,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글씨)으로 의장이 중경을 떠나 환국하기 전 조국독립의 감회를 필적으로 남긴 글이다. 국회도서관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념실은 2010년에 마련되었다. 3.1운동과 임시의정원 100주년이던 지난해 4월, 임시의정원 마지막 의장인 홍진 선생의 유족들이 임시의정원 관인(官印)과 인장, 주요문서 등 추가로 기증한 귀중한 유품들로 전시실을 재구성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사진 ⓒ최용수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뿌리가 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생소하다 생각한다. 의정원이란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며, 임시정부의 입법부 역할을 다하였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에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 모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한다. 임시정부의 기본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여 임시정부 탄생의 토대를 마련한다. 또한 초대 의장으로 이동녕, 국무총리로 이승만을 선출한다. 지금 쓰고 있는 우리의 국호 ‘대한민국’이 이때 만들어진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
3.1 독립선언광장의 우측 전경

잊어서는 안 될 33인의 별, 330개의 빛으로 기억하다

1919년 3월 1일,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태화관에서는 33인의 민족대표가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2019년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해로, 서울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태화관 터에 ‘3·1 독립선언광장’을 조성했으며, 지난 12월 23일 오후 6시부터 ‘3·1 독립선언광장 조명 점등식’을 개최했다.3.1 독립선언광장의 우측 전경 ©민정기3.1 독립선언광장의 좌측 전경 ©민정기‘3·1독립선언광장’에는 백두산과 한라산, 하얼빈과 카자흐스탄 등 주요 독립운동 7개 기념지에서 운반된 자연석이 사용되었으며, 100개의 마천석은 3·1운동 100주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바닥에 쓰인 330개의 조명은 소리와 음향에 반응하여 여러 가지 패턴을 연출하며, 이는 민족사의 별이 된 독립운동가를 상징한다.좌측부터 백두산 천지를 상징하는 우물과 한라산 백록담을 상징하는 수로의 끝 ©민정기광장 한복판에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상징하는 우물과 수로를 조성하고, 그 사이에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했다. 수로의 넓이는 450mm로 이는 광복을 이뤄낸 1945년을 상징하며, 수로 길이는 2만4,640mm로 이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2,464리의 거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광장 우측에 위치한 소나무 세 그루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좌측에 위치한 느티나무 한 그루는 민족 공동체를 상징하며, 조경에 쓰인 풀과 나무 등은 모두 우리나라의 고유 품종으로 심었다고 한다.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을 공연하고 있는 '퍼포먼스 그룹 오' ©민정기이 날 행사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었으며, 1부에서는 ‘퍼포먼스 그룹 오’의 공연이 펼쳐졌다. 쌀쌀한 날씨인 만큼 다양한 뮤지컬 공연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후, ‘광장에서 만나는 안중근’을 주제로 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을 통해 독립투사들의 투쟁이야기를 공연했다. 광장의 취지와 어울리는 훌륭한 공연에 관람중인 시민들은 큰 호응으로 응답했다.공연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김남중과 엔클래식 앙상블 단원들 ©민정기1부가 끝난...
문화공간 이육사

종암동 ‘문화공간 이육사’ 개관…시인의 40년 삶과 문학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 이육사’ ⓒ김미선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이육사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경북 안동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열일곱 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멀리 안동을 가지 않아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 이육사’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문화공간 이육사’ 입구의 모습 ⓒ김미선 안동과 대구,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이육사가 어떠한 이유에서 종암동에 머물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표적인 시이자 스스로 가장 사랑한 시 ‘청포도’를 발표한 곳이 성북구 종암동 62번지라고 한다. 1939년부터 성북구 종암동에 거주하며 대표작 ‘청포도’를 발표한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문화공간 이육사’가 문을 열게 되었다. 지역문화 커뮤니티 공간이고, 이육사의 작품과 식민지 시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던 그날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이육사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가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김미선 12월 17일(화) 오후 3시 개관식이 있었던 이 날은 이육사의 유고 시 ‘광야’가 처음으로 발표된 날짜에 진행해서 그 의미를 더했다. 많은 분들의 축하 인사와 함께 이육사 선생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의 감사인사도 이어졌다. 시낭송가의 낭송으로 ‘광야’가 울려 퍼지고, 축하공연으로 역사와 시 그리고, 마을을 노래하는 빈티지 프랭키의 음악으로 ‘꽃’과 ‘청포도’를 들을 수 있었다.  이육사의 활동 및 작품 실물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는 2층 광야 상설전시실 ⓒ김미선 ‘문화공간 이육사’는 지역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민들의 참여로 명칭을 정했고, 각 층의 이름은 공간의 기능에 따라 이육사의 대표적인 시에서 가져왔다. 1층 청포도 라운지는 이육사와 성북구 역사문화를...
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에 생긴 작은 집의 정체는?

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를 옥바라지했던 가족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를 기억하는 전시 공간이 생긴다. 서울시는 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에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을 조성하고 20일 개관한다고 밝혔다. 시는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조성 배경에 대해 독립투사들이 혹독한 수감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자 독립운동의 조력자인 가족들의 삶을 독립운동사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공간은 과거 옥바라지 골목으로 불렸던 무악2구역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조합과 주민 등 이해관계자 간 소통과 양보로 조성한 공간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2016년 당시 골목 보존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이후 서울시가 개입해 수개월 간 논의와 대화를 이어간 끝에 독립운동과 옥바라지와 관련한 역사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합의를 이뤘다. 재개발 사업에서 주민 간 소통과 합의를 통해 마을의 역사 이야기와 무형적 가치를 흔적으로 남긴 첫 번째 사례로, 서울시는 향후 이런 노력을 ‘서울 역사 흔적 지키기’라는 이름으로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내부 공간구성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은 소담한 한옥 건물로, 연면적 약 78㎡에 2개 전시공간(전시실 A동, 전시실 B동)으로 구성됐다. 50cm 크기 창으로 얼굴만 볼 수 있었던 형무소 면회실의 모습, 안창호가 아들 필립에게 보낸 편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옛 모습 등을 담은 영상 등 일제강점기 ‘옥바라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전시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내부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은 화요일~토요일(주5일) 10시~18시 운영되며, 관람료는 무료다(매주 월‧일요일, 법정공...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광복절에 기억해야 될 ‘파란 눈의 애국지사’ 4인방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8월이면 부르는 광복절 노랫말이다. 최근 일본을 보노라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광복은 어느 날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애국지사들의 피나는 투쟁 결과물이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애국지사들을 되새긴다. 그런데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 중에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파란 눈의 애국지사’들이 있다. 광복절만이라도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싶다. 기억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고 작은 보답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될 외국인 독립운동가 4인을 소개한다. 월암근린공원 ① 고종이 한국명을 하사한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 광화문에서 경교장을 지나 10여분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월암근린공원’이 나온다 . 이곳에 베델이 살던 집이 있었고, 지금은 공원 한켠에 ‘베델의 집터’라는 표석(標石)이 남아있다. 델집터 표석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 출신의 애국자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이미 국운이 기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한글판 와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일제는 언론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했으나 영국인이란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베델의 신문에는 손 댈 수가 없었다.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황무지 개간권 반대, 고종 밀서 등을 보도하며,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운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근신형과 금고형을 받는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 유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