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광복절에 기억해야 될 ‘파란 눈의 애국지사’ 4인방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8월이면 부르는 광복절 노랫말이다. 최근 일본을 보노라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광복은 어느 날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애국지사들의 피나는 투쟁 결과물이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애국지사들을 되새긴다. 그런데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 중에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파란 눈의 애국지사’들이 있다. 광복절만이라도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싶다. 기억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고 작은 보답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될 외국인 독립운동가 4인을 소개한다. 월암근린공원 ① 고종이 한국명을 하사한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 광화문에서 경교장을 지나 10여분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월암근린공원’이 나온다 . 이곳에 베델이 살던 집이 있었고, 지금은 공원 한켠에 ‘베델의 집터’라는 표석(標石)이 남아있다. 델집터 표석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 출신의 애국자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이미 국운이 기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한글판 와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일제는 언론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했으나 영국인이란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베델의 신문에는 손 댈 수가 없었다.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황무지 개간권 반대, 고종 밀서 등을 보도하며,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운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근신형과 금고형을 받는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 유언에 ...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

우리가 몰랐던 ‘34번째 민족대표’ 이야기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 “석호필을 아시나요?” 이 물음에 당신은 대답을 어떻게 하겠는가. 실제로 여러 시민들에게 물어본 결과, 인기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석호필’이 있다.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활약한 인물,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뿐만 아니라 ‘석호필’과 같은 푸른 눈을 가진 4명의 청년들의 존재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5명의 캐나다인들이 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서울시 시민청에서 펼쳐지고 있다.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3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 중이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함께 지키고 의료봉사와 학교 설립 등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힘을 더한 캐나다인들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3·1운동과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 프랭크 스코필드의 손자, 딘 스코필드 전시는 5명의 캐나다인들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들과 관련된 글, 영상, 사진 50여 점 등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속 이들의 활약을 조명하고 있다. 조선 말기인 1888년부터 1945년까지 200여 명에 이르는 캐나다인이 선교사, 학자, 의사, 기자로 한국을 찾아왔으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고, 일제의 학살을 국제사회에 폭로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다섯 명의 캐나다인은 로버트 그리어슨, 아치발드 바커, 스탠리 마틴, 프레드릭 맥켄지, 프랭크 스코필드이다. ‘로버트 그리어슨’이 바라...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 ‘여운형 활동터’라는 이름이 병기되었다.

버스 타고 떠나는 ‘서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 ‘여운형 활동터’라는 이름이 병기되었다. 1923년 1월 22일 새벽, 일본 군경 천여 명이 지붕 위의 한 남자를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남자는 세 시간 동안 총탄 세례를 피하며 총격전을 벌이다가 최후의 한 발로 자결했다. 그의 시신에서는 11발의 총상이 발견되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날의 주인공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잘 알려진 김상옥 의사였다. 종로구 효제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생의 마지막을 맞은 곳도 이곳이었다. 그의 장렬한 순국을 기리며 ‘효제동 버스정류장’에 ‘김상옥 의거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서 있는 김상옥 의사 동상 2월 22일부터 서울 시내 마을버스 정류장 두 곳을 포함한 14곳의 버스정류장 이름에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서울역사박물관’ 역에는 ‘김구 집무실(경교장)’ 표기가 더해지고, 인사동 입구는 ‘인사동 들머리, 3.1운동 선언 터’가 되었다. 반가운 소식에 길을 나서 몇 군데 정류장을 찾아보았다. 21일, 버스정류장에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독립운동가 김상옥의 활동터임을 기려 효제동 버스정류장에 ‘김상옥 의거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대학로로 이어지는 ‘효제초교, 연동교회’ 버스정류장에는 ‘김마리아 활동터’가 병기되었다.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한 김마리아는 요즘 말로 걸크러시 그대로였다. 일본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2.8독립선언서를 숨긴 기모노를 입고 들어와 부산과 대구, 광주, 서울을 돌며 3·1운동을 사전 준비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겪은 고문으로 한쪽 가슴을 절개해 평생 좌우 높이가 다른 저고리를 입고 살았으나 “조선의 독립과 결혼했다”던 그의 양심은 계속되던 신사참배 요구에도 흔들림 없이 반듯하고 정의로웠다. ‘효제초교, 연동교회’ 버스정류장에는 ‘김마리아 활동터’를 병기하며 김마리아에 대한 소개도 함께 안내하고 있다. 19...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 서대문형무소 야간역사체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완연한 가을이다. 지난 10월 6일 저녁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아주 특별한 가을날의 노래가 전해졌다. “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라는 야간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선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감옥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과 ‘창작집단 탈무드’가 함께 하는 참여형 연극으로 2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다. 박경목 관장의 해설 모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이 직접 사회를 보며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첫 무대의 노래인 ‘조선의 마음’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홀로 메마른 들판 위에 기댈 곳 하나 없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조선의 마음’ 노래는 일제에게 억압을 받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민중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실제 일제강점기 때는 금지곡으로 지정이 될 만큼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 있는 노래이다. 다음 곡으로는 영화 에 나오는 OST 주제곡이며 가수 이효리가 재능 기부를 한 ‘나를 잊지 말아요’를 열창하였다. 영화 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다. 꽃 다운 나이에 일제 총, 칼 앞에 강제로 이름 모를 전장으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당한 우리 민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위안부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1990년 초반이었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중 현재 생존해 계시는 피해 할머님들은 이제 불과 27명 정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나라와 국민이 힘을 더하고, 노력해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분들이 소외되고,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생각해 봐야겠다. 약 30분간 의미 있는 노래 공연이 진행되었고, 다음으로 서대문형무소 투어와 함께 연극체험이 시작되었다. 모든 참가자가 달빛이 짙은 밤 하늘 아래 보안과청사 앞에 모였다. 학예연구사님의 보안과청사에 대...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고 이은숙 선생의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고 이은숙 선생의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 오는 8월 15일 열리는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행사’에서 의 저자이자 여성 독립운동가 고 이은숙 여사(1889∼1979)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된다. 고 이은숙 여사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아내로 만주를 거점으로 한 독립운동을 지원했지만, 그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남편 이회영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니 이보다 56년 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는 셈이다. “‘하루 잘 해야 일중식(日中食 : 아침, 저녁은 굶고 점심만 먹음)이나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화(밥을 짓지 못함)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으니 생불여사(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어려운 삶)로다’라고 적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수시로 집에 방문하는 독립운동가들을 대접하며 지원했다.” 고 이은숙 여사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의 부인 정락경 여사가 그 시절을 회상하듯 낭랑하게 를 읽어내려갔다. 매 글귀마다 당시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당시 극한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글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목메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고 이은숙 여사의 친손자인 이종찬·이종걸 의원이 낭독자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 명동 YWCA에선 뜻깊은 모임이 있었다. 이름하여 ‘서간도 시종기(西間島 始終記) 낭독회’이다. ‘서간도 시종기’는 우당 이회영의 아내였던 영구(榮求) 이은숙(李恩淑) 선생의 회고록이다. 이 ‘서간도 시종기’를 왜 서울시에서 3·1운동 100주년 맞이 기념사업의 하나로 선정하였고, 이곳 명동 한복판에서 낭독하였을까?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사료적 가치가 높았고 이곳이 바로 우당 이회영의 집터였기 때문이다.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와 활동한 독립운동가였다. 이회영과 여섯 형제들은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자손으로 집안대대로 정승과 판서가 끊이지 않은 집안이다. 재산도 많아 무병장수하던 집안 내력으로...
C-47 비행기 전시관을 찾은 많은 시민들

다시 비상하는 여의도 C-47 비행기 전시관

C-47 비행기 전시관을 찾은 많은 시민들 1945년 8월 18일, 한 비행기가 여의도에 착륙했다. 73년이 지난 2018년 4월 13일, 여의도 공원에 홀로 정차한 비행기는 다시 이륙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티켓을 들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만원사례를 이룬 꽉 찬 비행기 안, 많은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11일, 서울시는 여의도 공원 태극기 게양대 옆에서 C-47 비행기 전시관을 새로 꾸몄다. 개관 날짜를 이날로 잡은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된 날이 4월 11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3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13일에 열린 제99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이낙연 총리가 “최근 역사학계는 임시정부 수립일이 4월 13일이 아닌 국호와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내각을 구성한 4월 11일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라고 배경을 설명하면서 “법령 개정을 거쳐 내년부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1일로 수정해 기념하겠다”라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100주년을 1년 앞두고 임시정부 기념 공간인 여의도 ‘C-47 비행기 전시관’을 특별전과 함께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함이다. C-47 비행기 전시관은 국내 유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이기도 하다. C-47 비행기 전시관 내부 미군 수송기인 C-47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비행기다. 1945년 8월 18일 한국광복군 정진대(이범석, 장준하, 노능서, 김준엽)를 태우고 미국 OSS부대와 함께 여의도에 착륙했다. 광복 이후 3일 만에 한국광복군이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C-47 비행기 전시관이 있는 위치가 당시 C-47이 착륙했던 위치다. 이어 C-47 비행기는 같은 해 11월 23일에는 김구 선생을 포함하여 임시정부요원 15명을 태우고 김포 비행장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비행기다. C-47 비행기는 대한민국 공...
삼일절,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지정된 안국역에서 독립운동가 가면을 쓴 시민들의 만세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안국역, 3·1운동테마역으로 재탄생!

삼일절,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지정된 안국역에서 독립운동가 가면을 쓴 시민들이 만세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우리는 한국 광복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가수 안치환의 노랫소리가 안국역에 우렁차게 퍼졌다. 깃발을 들고 독립운동가 가면을 쓴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힘차게 따라 불렀다. 지난 3월 1일, 3호선 안국역 지하4층 승강장에서는 3⋅1 운동 99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3·1운동 100주년 D-365일을 기념하고 ‘독립운동테마역-안국역’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이다.서울시는 일 년 앞으로 다가온 3·1운동 100주년을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는 안국역을 비롯해 종로구 삼일대로를 시민공간으로 조성하며,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를 복원하는 등 여러 계획을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올해 중 안국역 지하 2~3층 공간도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등을 주제로 한 전시공간과 휴게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정확히 99년 전에 일어났던 3·1운동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이었다. 또한 왕조의 마지막에 대한 거대한 추모이자 만인의 함성을 통해 대한독립의지를 온 세계에 알린 날이다. 나아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연결되었다. 3·1운동 과정을 통해 우리 민족사 100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이러한 3·1운동의 참된 가치를 일상의 공간에서 생동감 있게 호흡하고자 서울시는 안국역 곳곳에 3·1운동을 담아내어 전국 950개 지하철역 가운데 유일한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재탄생시켰다. 안국역 지하4층 승강장 8개 백색기둥에는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무명의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새겼다.안국역을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선정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3·1운동의 중심지였던 북촌과 인사동 등을 잇는 연결 거점으로서 손병희, 여운형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집터가 인근에 있고, 각종 교육기관과 인사동 등 관광명소도 밀집돼 있다.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의 업적과 어록을 지하 4층 승강장 구간 스크린도...
`시민토론캠프 310`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모습 ⓒ최용수

시민 310명, 3·1운동 100년을 이야기하다

`시민토론캠프 310`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모습 지난 8월 14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이란 주제로 첫 번째 ‘시민토론캠프 310’이 개최되었다. 약 2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토론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이 진행하였다. 오프닝 문화공연부터 8개 주제에 대한 소그룹 심층 토론 발표가 있고, ‘시민위원 310’으로 선정된 시민들에게 서울시장이 직접 위촉장을 수여하는 순서까지 4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오프닝 문화공연은 손병희 가수가 이끌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여든을 넘긴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모두 목청을 다듬어 힘껏 노래 불렀다. 특히 일제 치하 독립군이 불렀다는 ‘신독립군가’ 배움의 시간은 피가 용트림하면서 진군의 기상을 느껴보기에 충분했다. 독립운동의 기운이 시청사에서 울려 퍼졌다. 그룹별로 나누어 심층토론을 펼친 시민들 이어서 심층 토론은 8개 조로 나누어 소주제별로 2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펼쳐졌다. 3·1운동 대표로 선정된 ‘33인’의 리드로 소그룹 토론이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과 한국 공화정의 역사, 독립운동과 여성, 3·1운동과 종교인의 역할, 독립운동 후손에 대한 사회적 대우 등에 대하여 시민위원들의 참신하고 솔직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룹별 토론에 대한 정리된 의견은 전체회의에서 요약 발표하였다. 토론결과를 발표하는 시민들(좌), 박원순 시장에게서 위촉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시민위원들(우) 토론 및 발표가 끝나고 박원순 시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건국과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과 서울시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이어서 ‘시민위원 310’으로 선정된 시민들에게 위촉장 수여식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인하여 서울시청 대회의실로 옮겨 진행되었다. 서울광장이야말로 1919년 3월 1일 7천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대한독립을 힘차게 외쳤던 바로 ...
우표로 만나본 위대한 독립운동가 이야기

우표로 만나본 위대한 독립운동가 이야기

우표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위대한 독립운동가 이야기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지 72주년이 되는 광복절이다. 최근 북한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망언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7월 6일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는 73년 만에 최초로 미국에서 발견한 위안부 할머니 영상을 공개하였다. 올 9월에는 동영상을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 중구 소공로70 서울중앙우체국 지하 2층에 위치한 ‘우표박물관’에서는 광복절 특별기획전인 ‘위대한 독립운동가 이야기전’이 열리고 있다. 우표를 통한 색다른 광복절 이야기를 전하는 이번 전시는 8월 31일까지 한 달간 진행한다. 애국선열들의 기념 우표 이 전시회는 100여 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지키려했던 조국의 자주독립에 대한 숭고한 뜻을 기리고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1907년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이준, 이상설, 이위종)부터 1945년 8.15 광복 그 감격의 순간까지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사건들과 이야기를 기념우표들과 함께 연표로 설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시회를 감상 중인 관람객 전시관에는 방학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찾은 초등학생들이 많았다. 독립운동가 사진과 관련 우표들을 중심으로 낱말퀴즈를 풀면 추첨을 통해 관람권(1인 2매)을 제공하는 참여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안내문처럼, 이번 전시회는 아이들이 광복절 의미를 이해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우표박물관 안내◯ 위치 : 서울시 중구 소공로70 서울중앙우체국 지하 2층 ◯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 관람일 : 화~일요일 (월요일이 공휴일 또는 기념우표 발행일인 경우 운영/설날·추석·국경일도 휴무) ◯ 입장료 : 무료◯ 문...
다수의 외국인 독립유공자가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최용수

‘호머 헐버트’ 우리가 광복절에 기억해야 할 이름

다수의 외국인 독립유공자가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중앙 로비로 들어가면 우뚝 솟은 10층 석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907년, 다나카 미쓰아키가 황태자 순종 결혼식 축하사절로 왔다가 개성에 있던 경천사십층석탑을 무단으로 가져간다. 이를 알게 된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즉시 현장을 확인하고 관련 사실을 언론에 기고한다. 이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가서 이 사실을 폭로한다. 호머 헐버트의 이러한 노력으로 1918년 경천사십층석탑(국보 86호)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사랑한 이방인, 호머 헐버트 1863년 미국 버몬트에서 출생한 그는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인 육영공원에 파견되었다. 이후 YMCA를 창설하는 과정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청년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5년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한일협상 조약)을 체결하자, 호머 헐버트는 고종 밀서를 가지고 워싱턴으로 날아가 일제 만행을 알리며 대한제국을 도울 것을 호소한다. 또한,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세계인에게 알리고자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등 밀사 3인 파견을 후원하고, 창간에도 기여한다. 그는 독립을 위한 노력을 평가받아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상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경천사십층석탑, 호머 헐버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 노력으로 일본에 무단반출됐던 탑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는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 살면서 대한제국과 관련한 다양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장에서 지켜본 대한제국 멸망과정을 서술한 책에는 당시 시대 상황이 잘 기술되어 있다. 서양인이 기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특유의 정(情) 문화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밥과 잠자리를 청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으니, 어떻게 숙박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