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청년들, ‘돈'보다 중한 것은 뭔디?
발행일 2016.06.21. 10:33
함께 서울 착한 경제 (50) 마을에서 길을 찾은 아시아 청년 혁신가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낯선 공간에서 문득 우리와 닮은 구석을 발견할 때가 있다. 특히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의 도시재생공간, 문화예술공간이나 청년공간들에선 우리네 청년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젊은 상상력으로 침체된 거리 풍경을 바꾸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젊은이 들. 나아가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이들의 모습들에선 묘한 동질감까지 느껴진다. 이처럼 마을에서, 지역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길을 찾는 아시아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5, 16일 진행된 제3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 포럼 '청년, 마을에서 길을 찾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도시 청년 공간, 지역에 뿌리내리다
“대만도 청년 실업률은 높고, 낮은 임금에 비해 부동산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데요. 그래서 저흰 ‘사회를 위해 젊은 세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사회혁신가·창업자들을 위한 공유 공간,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포럼 참여 연사 중 한명인 추자위안 씨는 대만대학교 재학 중 만난 동료와 함께 지역 기반 코워킹 공간인 ‘해픈코워킹스페이스’를 만들었다. 이왕이면 자신들의 고향에서 사업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에서 타이중 구도심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추자위안 대표는 단지 공유 공간, 협업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지역 주민을 위한 워크숍’, ‘로컬 마켓’이나 ‘로컬 관광’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개발, 진행한다. 서울의 사회혁신파크, 청년공간, 사회적경제 허브 공간이나 여러 코워킹 공간과 비슷한데, 보다 지역 밀착형 모델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새로운 공동생활 주거 모델을 만들어가는 ‘9플로어아파트먼트’, 일본 요코하마에서 지역 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문화와 공간을 공유하는 ‘가사코’, 서울 창신동에서 디자인으로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기획사 ‘000간’의 사례도 들을 수 있었다.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2년 정도 걸렸는데, 아직도 부족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주민들이 점차 핵심 서포터, 이해관계자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저희도 주변분들 대부분이 부모님 세대라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다르고, 대화하기도 쉽지 않았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하고,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어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토 고스케 (가사코 대표) 씨와 추자위안 씨는 지역에서 함께 하는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밖에 제대로 된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금 의존에서 벗어나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포럼에 참가한 청년 연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비록 국가는 달라도 언어는 달라도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청년들의 사례와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농촌에 둥지를 튼 청년, 변화를 모색하다
“저는 10살 무렵부터 거리에서 물건을 팔았어요.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사파까지 2시간 넘게 등짐을 지고 산길을 걸어 다녔는데, 그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베트남 소수민족인 몽족 출신 슈탄 씨는 공정여행 기업 ‘사파오짜우’의 설립자다. 베트남의 고산도시인 사파 주변 소수민족의 전통가옥에서 홈스테이하며, 로컬 음식을 먹고 트레킹을 즐기는 여행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1년 동안 평균 5천 명이 넘는 여행객이 다녀간다는데, 소수민족의 소득 증대는 물론, 문맹퇴치, 일자리 창출 등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저는 교육받은 적도, 학교에 다닌 적도 없었어요.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 생각했지만, 방법을 몰랐죠. 그래서 교육사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소수민족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도 운영하는데, 매출의 10분의 1을 운영자금으로 쓴다. 하루 3끼 식사 외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슈탄 씨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 얘기한다.
“꿈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녀가 처음 마을에서의 사업을 계획했을 때, 모두들 ‘너, 정신 나갔니?’라며 말렸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계속 꿈을 꾸었고, 그동안 만난 푸른 눈의 친구들이 힘이 돼주었다. SNS 홍보방법도 알려주고,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영어 수업을 해준 것도 그들이었다.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조금씩 늘어나며 몽족 친구들도 함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날 포럼에서는 ‘아카아마 커피’의 공동 창업자 ‘아유 리’ 씨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저희 마을은 인터넷은 물론, 전기 공급도 안 되고 도로도 없습니다. 저는 그 마을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대학에 진학한 사람입니다. ‘내가 얻은 지식을 마을에 환원하자’, ‘마을을 위해 선한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님과 친구들 모두 ‘수많은 기회가 도시에 있는데 왜 시골에서 일을 하냐’며 반대했었죠.”
아유 리 씨의 고향은 타이 치앙라이 주에 있는 ‘매찬따이’다. 그는 고향마을의 주 작물인 커피콩의 품질을 높여 경쟁력 있는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마을 언어인 아카어로 커피 설명서 만들고, 소비자들이 직접 마을에서 커피 생산 여정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해 소비자의 이해와 신뢰도 넓혔다. 치앙마이에 있는 공정무역 카페 ‘아카아마’는 늘 세계여행자들로 붐빌 정도로 인기가 있다.
“마을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의사소통이 문제죠. 특히 커피 퀄리티 높이는 것이 가장 힘들었는데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커피 마시는 것부터 시작해, 테스팅을 하며 어떤 커피가 좋은지 알게 되었고, 로스팅하는 방법, 평가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이런 경험 통해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죠.”
아유 리 씨는 사업의 가능성을 실제 성과로 증명해 신뢰를 키워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처음 창업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사회적기업가로 역량을 키우고 기업을 유지시켜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현실적 얘기도 들려주었다.
그밖에 수공예품 생산·판매를 통해 인도네시아 가난한 농촌 지역의 임산부들에게 대안적인 직업을 제공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사회적기업 ‘두안얌’, 캄보디아 바탐방 지역에서 킨예 카페를 운영하며 직접 교육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지역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속사바이크 투어를 진행하는 ‘킨예 인터내셔널’의 사례도 소개되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많이 타협하면 안 됩니다. 행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성공에 대한 독특한 정의를 만드세요. 그리고 사업을 하며 얻은 교훈 있다면 지역 사회에 빠르게 자주 공유해야 합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 여정 자체가 더 재미있어질 수 있거든요. 목표를 기억하며 재미있게 밟아가는 ‘목적지와 여정’이 중요합니다.”
킨예 인터내셔널 공동 설립자이자 현재 호주 멜버른의 코워킹스페이스 ‘인스파이어9’의 총괄 운영자인 멜리아 찬 씨는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혁신가를 위한 조언도 들려주었다. 도시에서건 농촌에서건, 지역을 넘어 국가를 넘어 사회혁신가들이 지켜야 할 자세는 매한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날 포럼에서는 매드 인스티튜트 설립자이자 굿랩 디렉터로 홍콩 사회혁신 운동을 주도해온 에이다 윙 씨도 함께해 청년 사회혁신가들에게 아시아의 미래와 비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구세대는 모든 일에 있어서 돈이 첫 번째 기준이자 목적이죠. 반면 이곳에 모인 청년 여러분들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세대입니다. 특히 아시아는 젊은 사회혁신가들의 활동이 절실한 곳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고, 중국, 인도와 같이 왕성하게 경제가 성장하는 국가들이 있는 지역이기에, 발전과정에서 부의 집중이 일어나지 않고, 사회적 환경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겉으로 보기엔 저마다 처지와 조건이 달라 보일지 몰라도, 그 문제의 근본은 맞닿아 있다. 아시아 청년들이 서로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경험을 나누며 함께하는 자리가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이다.
이번 포럼에서는 한국, 태국, 홍콩,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총 8개국 청년 사회혁신가와 사회적 기업을 중간에서 지원하는 조직 대표 등 18명 연사로 나서 각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밖에 사회혁신을 꿈꾸는 많은 청년들이 함께해 토론하고, 서울의 사회혁신 공간을 찾아다니며 생각을 나누고 우정을 나눴다.
문득 포럼에서 만난 청년 사회혁신가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여행길엔 공정여행사 ‘사파오짜우’ 트래킹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타이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아카아마 커피’에 들르고 싶다. 캄보디아에선 킨예 카페에 들르고 속사바이크 투어에도 참여하고 싶다. 일본 여행길엔 요코하마의 가사코에 머물며,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세계의 아침을 함께 준비해도 좋겠다.
그렇다고 굳이 멀리 해외로 눈 돌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동대문 창신동에 있는 000간이나 은평구 사회혁신 파크에 들러봐도 좋겠다. 아니면 완주의 삼삼오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전주와 완주 일대에 둥지를 튼 청년 사회혁신가들을 찾아봐도 좋겠다. 비록 변화를 바라지 않는 기성세대일지 몰라도 진정 청년들을 돕고 싶다는 말 한마디라도 꼭 전하고 싶다.
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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