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주택 '후암동' 인쇄 메카 '인현동' 옛 모습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6.06.17. 15:46

수정일 2016.06.17. 17:49

조회 4,031

서울 근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네, ‘후암동’과 ‘인현동’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두 동네가 간직한 서울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기록한 보고서를 통해 도시사회적 변화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15년 용산구 후암동과 중구 인현동 2개 지역에 대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완료하고 <두텁바위가 품은 역사, 문화주택에 담긴 삶, 후암동>, <세상을 찍어내는 인쇄골목, 인현동>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사업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00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역점 사업으로서,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장소별로 기록해 나가는 사업이다.

후암동, 조선시대 한적한 농촌마을에서 일제강점기 일인들의 고급주택으로

남산의 남서측 산록에 위치한 후암동은 조선시대에는 도성 밖의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 들어 일본인들의 신시가지로 개발되어 대규모 고급 문화주택지가 조성된 지역이다.

옛날 후암동 문화주택지 전경

옛날 후암동 문화주택지 전경

현존하는 문화주택

현존하는 문화주택

당시에 지은 문화주택이 아직까지도 302채가 남아 있어 후암동은 현존하는 문화주택의 최대 집결지이며, 이번 조사에서 이러한 문화주택에 대한 실측조사를 비롯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후암동 지월장

후암동 지월장

가장 대표적인 문화주택으로는 서선식산철도주식회사(西鮮殖産鐵道株式會社) 상무이사인 니시지마 신조우(西島新藏)의 별장인 ‘지월장’(指月藏, 후암동 250번지)으로, 이 주택은 그 규모가 매우 커서 오랫동안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소유로 잘못 알려져 오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후암동의 도시사회적 변화과정을 각종 자료와 후암동 주민들의 구술사를 통해 면밀하게 기록했다.

인현동, 3,651개의 인쇄업체가 몰려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인쇄골목

1960년대 인현동 모습

1960년대 인현동 모습

조선시대 주자소가 설치되면서부터 현재까지 인쇄출판 문화의 대표지역인 인현동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의 도로망과 골목길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다.

인현동 인쇄골목 전경

인현동 인쇄골목 전경

최근 들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인해 덕수중학교(중구 마른내로9길 10) 북쪽에 몰려있던 인쇄업체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인현동 일대 인쇄 관련 모든 업종 전수조사와 가로경관 실측조사를 실시했다.

이와 더불어 소규모 인쇄업체들의 분업체계,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망까지 조사함으로써 인쇄골목의 역사와 변화를 기록하고자 했다.

후암동, 인현동 보고서 표지

후암동, 인현동 보고서 표지

관련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 혹은 서울역사자료실에서 17일부터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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