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마다 꽃을 놓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내 손안에 서울

Visit4,231 Date2016.05.31 16:15

이효열 작가의 연탄꽃 ⓒ이효열

설치미술가 이효열씨의 연탄꽃 작품

작년 겨울 SNS를 뜨겁게 달군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타고 남은 희뿌연한 연탄재에 꽃이 꽂혀 있고, 연탄 옆엔 되는대로 네모지게 찢은 상자종이에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일명 ‘연탄꽃’(실제 이 작품의 부제)이란 이 사진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며 화제가 됐는데요, 서울시내 곳곳에 연탄꽃을 놓아둔 주인공, 바로 설치미술가 이효열(30)씨입니다.
서울시는 이 작품에서 착안해 올해 ‘일자리대장정’ 일환으로 이효열 작가와 함께 ‘일자리=꽃자리’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왜 다 태워진 연탄재에 꽃을 꽂고, 의자에 꽃을 놓는 ‘꽃자리’란 작품을 만들어 SNS에 올리는 걸까? 내 손안에 서울이 그를 직접 만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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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이효열씨

설치미술가 이효열씨

지난 5월 27일 늦은 오후, 서울시청 지하에 있는 시민청에서 이효열 작가를 만났다. 그는 시민청까지 발걸음을 옮기면서 길가에 핀 꽃, 청사 내부에 장식된 꽃에도 하나하나 관심을 두고, 시민청 내 카페에 깔린 의자에도 연신 관심을 내비쳤다.

“이제 온갖 것이 다 ‘꽃자리’로 보이네요.(웃음)”

서울시는 ‘연탄꽃’ 작품으로 SNS에서 화제가 된 이효열 작가와 함께 2016 서울일자리대장정 일환으로 특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자리대장정 정책로고인 ‘의자’와 정성으로 가꿔야 피어나는 ‘꽃’을 결합해 ‘일자리=꽃자리, 당신의 일자리에 꽃이 피는 그 날까지’란 메시지를 담았다. 이를 통해 서울시 일자리 창출에 온 행정력을 집중하고 현장에서 직접 시민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다.

서울일자리대장정 `일자리=꽃자리` 캠페인

서울일자리대장정 `일자리=꽃자리` 캠페인

‘꽃자리’를 있게 한 작품이 ‘연탄꽃’이니 연탄꽃에 대한 얘기부터 나눴다.

그는 어느 날 집 앞에 놓인 연탄재를 보다가 문득 “연탄은 저렇게 뜨겁게 태워서 남을 데워주는데, 난 지금까지 뭘 했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연탄처럼 뜨거울 때 꽃이 피겠지”하는 생각에 연탄재에 꽃을 꽂았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자 강남 한복판 버스정류장에 연탄꽃을 설치했다. 얼마 후 연탄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낀 이 작가는 다른 곳에도 연탄꽃을 심기 시작했다.

한번은 서울시립미술관 야외에 연탄꽃을 슬쩍 두고 왔단다. 금방 없어질 줄 알았는데 뜻밖의 반응이 왔다. 미술관 공식 SNS에 소개된 것이다. 좋아요와 댓글이 이어지고 일부 관람객은 마치 미술관에서 전시한 야외 작품인 양 반응했다. 그렇게 이 작가의 연탄꽃은 마치 ‘연탄’처럼 세상을 훈훈하게 달구며 알려졌다.

그런데 좀처럼 찾아보기도 힘든 연탄을, 그것도 하얗게 몸을 불사른 연탄을 어떻게 구해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15살 때부터 지금까지 판자촌에 살고 있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선 아직도 연탄을 쓰거든요. 작품의 소재가 되는 연탄들은 모두 제가 집에서 사용한 연탄들이에요.”

어릴 적 꿈은 축구선수. 대학에서 사회체육학(축구)을 전공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해 다리 수술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었다. 현실에서 도피하다시피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서점에서 우연히 잡은 광고 책 한 권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책을 보고 ‘바로 이거다’ 생각한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자신과 같은 나이 때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 결국 성공한 저자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메일도 보내봤지만 답장이 올릴 난무했다. 때 마침 경험은 없으나 배우고 싶은 청년들을 위해 저자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열심히 공부했고 저자가 운영하는 광고 회사에 입사했다. 2년 뒤 “내 이름을 걸고 자유롭게 활동을 해보고 싶다”며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만든 첫 작품이 바로 연탄꽃이다. 연탄꽃을 우연히 만들긴 했지만 광고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설치)미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판자촌, 가난, 갑작스런 부상, 광고 회사, 아르바이트 등 모든 경험이 그의 작품 활동에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

대중들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연탄꽃 작품 이외에도 이 작가는 사람들에게 ‘울컥’하게 하는 감동과 울림을 주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위로가 됐던 [쿠션](좌), 오늘날 대학의 현실과 역할을 꼬집은 [학사모](우)ⓒ이효열

추운 겨울 따뜻한 위로가 됐던 [쿠션](좌), 오늘날 대학의 현실과 역할을 꼬집은 [학사모](우)

여러 작품 중 연탄꽃 다음으로 반응이 좋았던 [쿠션], 그의 SNS엔 “다시 겨울이 오네요, 잠시라도 따스히 있다 가세요”라고 적혀있다. 특히 노란 쿠션은 그가 손수 한땀한땀 만들었다.

“추운 겨울날 그 방석에 앉아봤다는 임산부 남편 분한테 고맙다는 연락을 받은 적 있어요. 시간이 지나 그 분 SNS에서 태어난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봤는데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외 이 작가의 다양한 작품은 그의 SNS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시간, 공간에 구애받지 않을 뿐더러 이른바 정석(?) 코스를 밟은 이름난 작가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그곳은 그만의 갤러리였다. 액정이 다 깨진 이 작가의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며 작품에 관한 꽤나 긴 얘기를 나눴다.

설치미술가 이효열씨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설치미술가’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낯설다고 했다. “설치미술가 이효열입니다”라고 먼저 소개해본 적은 없다고.

인터뷰 내내 이 작가는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하는 식의 ‘공감’이란 표현을 즐겨 썼다. 그래서 대중들은 그의 작품을 보며 그렇게 ‘울컥’ 했나보다. 공감할 수 있었으니까. 대중과 소통할 수 있으면 ‘작품’이 되는 거고 ‘설치미술가’라 부를 수 있는 건 아닐까? 실제 이 작가는 작품의 영감을 주변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들여다보고 생활 속 작은 뉴스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앞으로의 꿈은 세계 속에서 연탄꽃을 피우는 것이다. 만리장성에서 피운 연탄꽃, 에펠탑에서 피운 연탄꽃… 세계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픈, 더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픈 이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꿈이다.

한편, 서울시와 이효열 작가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일자리=꽃자리’ 캠페인은 이 작가의 작품 의미와 캠페인 취지에 공감한 우리은행이 제작 지원에 나서면서 현재 총 12개의 작품이 서울 곳곳에 피어났다.

작품 위치 자세히 보기

교보문고(좌)와 서울시립대학교(우)에 놓인 `일자리=꽃자리`

교보문고(좌)와 서울시립대학교(우)에 놓인 `일자리=꽃자리`

이번 꽃자리 작품은 지원을 받아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지만 다른 작품들은 모두 이 작가가 일해서 번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예전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지금은 카페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정작 이효열 작가, 본인을 위한 ‘꽃자리’는 있는 것일까?

“제가 만든 작품 하나, 제 작품을 봐주시고 위로받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제 꽃자리를 위한 밑거름인 거죠.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작품을 만드는 것이 맞지만 결국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청년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항상 거의 다 와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그와 기분 좋은 만남을 갖고 퇴근하는 길, 나는 그의 SNS를 팔로워하고 그의 작품을 계속 감상했다. 꽃자리 작품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 – 구상 <꽃자리>

그의 작품을 보다가 <꽃자리>란 시가 떠올랐다. 작품을 보며 읊조리니 위로와 격려가 된다. 설령 지금 꽃은커녕 가시방석이면 어떤가? 마음먹기에 따라 꽃자리가 될 수 있다는 구절은 삶의 설움과 불만을 내려놓게 한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이 작가의 말처럼 거의 다 온 것이겠지…

이효열 작가 인스타그램 @ye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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