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기질, 100점 만점에 몇 점?

정석

발행일 2016.05.17. 16:10

수정일 2016.05.17. 17:48

조회 1,751

남산ⓒ뉴시스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15) 서울의 공기, 안녕한가요?

"지난 주말 우리 딸이 학교 축구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한 골을 넣었고,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여러 번 했다. 자랑스러웠다. 그날 밤 나는 딸의 기침소리에 여러 번 깼다.”

경희대 국제대학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최근 한 일간지에 쓴 칼럼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경기에 출전해 도움도 주고 골도 넣은 딸은 그날 밤 왜 여러 번 기침을 했을까? 칼럼은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한다.

“지난해 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서울역을 나오자마자 한 말은 공기에서 유황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공기에서 유황냄새가 난다는 페스트라이쉬 교수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2002년 처음 북경에 갔을 때 내가 맡았던 독특한 냄새가 떠올랐다. 딱히 뭐라 얘기할 순 없어도 서울에서 맡지 못했던 색다른 냄새가 북경시내 여기저기에서 맡아졌다. 페인트 냄새 같기도 하고 화학약품 냄새 같기도 했던 그 냄새는 반년 간의 북경 체재 중에 내내 내 곁을 맴돌았고, 귀국한 뒤 몇 번 다시 북경을 방문했을 때에도 남아있었다.

<한국의 공기정책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의 대기오염 수준의 심각함을 지적하며 전시경제를 방불케 하는 근본적인 정책변화를 촉구하였다. 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한국에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의 충정어린 쓴소리를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일본 유학 시절 아이를 낳아 키우고 학위를 마친 뒤 귀국했던 후배 교수도 서울의 공기 질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서울에 와서 며칠을 보낸 뒤 다섯 살배기 아이가 기침을 몹시 해서 병원에 갔는데 폐렴 진단을 받아 입원을 했단다. 귀국한 뒤 석 달 안에 두 번이나 병원신세를 졌단다. 와이셔츠 얘기도 여러 사람들에게 들었다. 일본에서는 일주일을 입어도 와이셔츠 깃이 깨끗했는데, 서울에서는 하루만 입어도 까맣게 때가 꼈다는 경험담을.

좋은 도시의 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꼽아야 할 게 공기의 질이다. 건물과 도시경관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뭐하랴. 공기가 나쁘다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시민과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숨 쉬고 맑은 공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깨끗한 공기를 보유해야 진정 좋은 도시일 것이다.

2년에 한 번씩 세계 도시들의 환경성능을 평가하여 <환경성과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를 발표하는 미국 예일대와 콜롬비아대학 연구진들이 최근 2016년도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20개 부문의 종합평가 점수에서 우리나라는 중위권이었지만, <공기 질> 부문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45.51점을 얻어 180개 나라 가운데 173위, 최하위권에 위치했다.

이산화질소(NO2) 노출정도는 개선노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0점을 받아 꼴찌였고, 초미세먼지(PM2.5) 노출정도 평가에서도 33.46점으로 174위를 기록했다. 4년 전과 2년 전의 공기질 평가에서는 43위였는데 금년도 평가 결과 173위는 매우 충격적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서울시도 이제 공기정책을 새롭게 다잡아야 할 때다. 자동차의 제작과 운행에 대해서도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도록 관련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대체 에너지와 대안적 교통수단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연구와 정책담당자들의 노력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시민의 몫이다.

서울의 공기 질이 현재 어떤 수준이고, 어떤 오염물질이 얼마나 공기를 더럽히고 있는지를 시민들이 알아야 한다. 이산화탄소(CO2),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오존(O3), 미세먼지(PM10), 초미세먼지(PM2.5) 같은 오염물질들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배출되고 있는지, 그로 인한 공기 질의 수준은 시시각각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런 오염물질들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할 일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면 좋겠다.

한 달 전쯤 10년 넘게 탔던 경유 자동차를 폐차했다. 10년 이상 여섯 식구 대가족을 실어 나른 자동차가 꼭 가족처럼 느껴져 가급적 오래오래 타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고장으로 목돈이 쑥쑥 들어가는 게 경제적 부담도 되고 비효율적이란 생각에서 폐차를 결심했다. 폐차 과정에서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금 제도가 있고, 지원금이 중고차 매매 값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경유차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했다. 10년 넘게 탄 내 차가 애틋하고, 자동차든 뭐든 가급적 오래오래 아껴 타는 것이 미덕인줄만 알았다. 그것만 생각했지 정작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기오염물질 가운데 인체에 가장 치명적 오염물질인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가 오래된 경유차에서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서울의 공기를 맑고 깨끗하게 지키는 일은 우리 시민들에게 달렸다. 고성능 황사마스크를 구입하고, 집과 자동차에 공기청정기와 필터를 설치하는 데 머물지 말고, 서울의 공기를 지키는 일에 나서야 한다. 경유차든 휘발유차든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자. 우리 모두가 숨 쉬는 공기를 지키는 일을 최우선에 두자. 그래야 살 테니까. 숨 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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