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에서 고종의 발자취를 좇다

시민기자 김윤경

Visit1,117 Date2016.05.13 13:48

지난달 4월 29일부터 열흘간 제 2회 궁중 문화축전이 열렸다. 4대궁과 종묘에서 개최된 이 행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가득했다. 5월 첫 주 황금연휴를 맞은 시민들은 5일부터 8일까지 무료입장이 가능해 더욱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고궁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들이 여기저기 발길을 재촉했지만, 비운의 황제 ‘고종’에 초점을 맞추어 궁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그 당시 최초로 커피를 즐겨마셨다 전해지며 전기와 전차를 처음 들여오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고종. 하지만 근대사회로의 격변기에서 황후를 잃고 망국의 황제라는 나약한 이미지로 남겨져 버렸다. 끊임없는 시대의 변화 속에 결국 3·1운동의 자극제가 된 독살설까지 나돌던 고종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양탕국’이라고 불리던 ‘커피’를 즐기던 덕수궁

덕수궁에서 커피냄새가 향긋하게 풍겨왔다. 궁중 문화체험동안 덕수궁 정관헌에서는 고종이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는 ‘양탕국’의 시음 행사가 열렸다.

덕수궁에서 양탕국을 시음하기 몰려든 시민들

덕수궁에서 양탕국을 시음하기 몰려든 시민들

커피는 한국에 들어 올 때 빛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하며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하여 ‘양탕국’ 이라 불렸다고 한다. 정관헌은 1900년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연회와 음악감상 등의 목적으로 덕수궁 안에 지은 궁내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다.

날씨 때문인지 상대적 적은 시민들이 모였으나 양탕국에 대한 관심은 진지했다. 이런 멋진 건물이 있는 줄 몰랐다며 들린 시민들이 “양탕국이 뭐지? 고깃국인가” 하며 물었다. 왕이 마신 커피라고 하자 호기심을 나타내며 번호표를 받아 들었다. 양탕국의 시연과 설명이 계속되는 가운데 뜨거운 양탕국(침출차)과 차가운 양탕국(냉침차)을 선택할 수 있었다. 뜨거운 양탕국은 커피를 내리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차가운 양탕국은 미리 내려놓아 따라주기 때문에 금방 마실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와 함께 덕수궁에 들렸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참가했다는 한 시민은 “맛을 비교해보기 위해 친구는 따뜻한 양탕국을 자신은 차가운 양탕국을 선택했다”며 “고종황제와 양탕국에 대해 친구에게 잘 설명해주며 자랑하겠다”고 말했다.

고종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서재 ‘집옥재’가 있는 경복궁

고종의 서재로 사용된 집옥재

고종의 서재로 사용된 집옥재

마침 축전 전날인 지난달 28일 고종의 서재였던 집옥재가 120년 만에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집옥재는 고종이 서재로 사용하던 곳으로, 경복궁 건청궁 안에 있다. 고종의 창덕궁 이전과 함께 경복궁으로 옮겨진 집옥재는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장소로도 이용했으며 중국풍의 서양식으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집옥재는 조선시대 관련 1,000여 권, 왕실자료의 영인본 350여 권을 비롯하여 외국인을 위한 영어, 중국어, 일어로 번역된 우리 문학책 230여 권을 비치했다.

특별한 도서관에서 아이도, 어른도 독서삼매경

특별한 도서관에서 아이도, 어른도 독서삼매경

집옥재 앞에는 시민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었다. 카펫이 은은하게 깔려 있는 조용한 서재에 고풍스러운 자색빛 슬리퍼를 신고 입장을 하니 오른편에 고종의 초상화가 눈에 띄었다. 위를 쳐다보니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그려져 있었다. 조선시대의 관련서적을 보는 시민들과 아이들, 사진을 찍는 시민들은 각각 궁궐 도서관이 주는 색다른 멋을 즐기다가 곧 책에 심취되었다.

집옥재옆 북카페에서 밖이 보이는 운치가 좋다

집옥재옆 북카페에서 밖이 보이는 운치가 좋다

작은 복도로 연결된 북카페 ‘팔우정’에는 고종이 즐겨 마셨다는 방식에 가깝게 재현하였다고 하는 가배와 녹차, 생강차등을 팔고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에 따르면 시민과 관광객들이 문화재를 겉에서 구경하는 것뿐 아니라 안에서 느끼며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으며 유물전시와 관련 왕실 강좌를 열 계획이며 앞으로 훼손방지 등을 위해 인원예약과 시간 등을 점진적으로 보완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백년가약을 맺은 곳? ‘가례’가 있는 운현궁

‘가례’란 왕을 위시하여 왕세자 등의 혼례의식을 말한다. 원래 친정에서 치러야하지만 국가적인 큰 의식이라 어려움이 있어 고종의 가례는 운현궁에서 행해졌다. 운현궁은 고종이 즉위 전 12세까지 살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정치활동의 근거지가 됐던 곳이라 고종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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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중인 명성왕후

지난달 30일, 운현궁은 1866년 3월로 돌아갔다. 30여분 동안의 식전공연인 궁중무용이 펼쳐진 후 쇼트트랙 김채현 선수가 분장한 명성황후가 들어서자 시민들은 예쁘다고 감탄했다. 이어 왕비책봉을 마치기까지 여러 절차가 걸리자 구경을 하던 한 시민은 “뽑히는 것도 어려울 텐데 저 무거운 걸 쓰고 식을 마치려니 정말 왕비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시 왕비와 대원군을 비롯한 신하들이 퇴장을 하자 아이들은 지루한지 주저앉아 있었고 시민들은 왕비가 들어간 곳과 정문을 번갈아 쳐다보며 스텝에게 고종의 행차시간을 묻고 있었다.

어가행렬을 마친 고종이 운현궁밖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몇몇 시민들은 재빨리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곧이어 왕의 가마인 어연을 타고 호위관원과 군사들에 둘러싸인 고종이 입궁하고 흥선대원군이 국왕을 맞이하는 절을 하자 어린아이가 “왜 아빠가 아들한테 절해요?” 하고 아빠한테 묻고 있었다. 쇼트트랙 박세영선수가 분장한 고종이 지나가니 시민들이 훤칠하다며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고종이 서쪽을 향해 서고 왕비가 동쪽을 향해 서서 기러기를 올려놓고 덕담을 들으며 국왕이 왕비를 맞아들이는 의식을 마쳤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는 매년 봄, 가을 2차례 열린다. 올 가을은 9월 24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못 본 시민들은 꼭 보게 되면 좋겠다.

■ 고종, 명성황후 2차 가례
– 시간: 2016년 9월 24일 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 장소: 운현궁

고종 즉위 30주년을 축하한 궁중잔치가 있던 곳, 경복궁

1892년 경복궁 왕의 잔치

1892년 경복궁 왕의 잔치

고종 즉위 30주년을 기념하고 41세 생신을 축하하는 궁중잔치가 5일부터 7일까지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렸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한 이후 궁중잔치는 황제례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조선왕조 왕조례로 시행한 마지막 궁중잔치였다. 사실상 궁중문화 축전의 가장 정수라 볼 수 있는 행사로 200여명들의 출연진들이 축제를 재연한다고 하여 기대를 모았다.

초여름 날씨에도 넓은 광화문이 좁아 보일만큼 많은 이곳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악공들의 연주와 무희들의 화려한 의상과 춤에 반해 잠시 넋을 잃은 시민들은 문무백관이 돌바닥에 무릎을 조아리는 모습에 안쓰러워하다가도 외국여성들이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분장한 것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 첫날 대역을 할 외국인들 40명을 사전에 선발했기 때문이다.

고종과 순종의 재미있는 모습

고종과 순종의 재미있는 모습

잔치가 끝나고 고종과 순종이 근정전 밑으로 내려오자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셔터를 눌러댔다. 왕자가 무척 잘 생겼다며 한 시민들이 말을 건네자 고종으로 분한 배우는 재미있는 동작을 보이며 “제가 고종이고 잘생긴 이 얘가 순종이에요.”하며 친근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제 2회 궁중 문화축전이 열흘간의 축제를 마쳤다. 관광객에도 시민들에게도 의미 있는 축제였음에 틀림없다. 기자 역시 며칠 간 고종황제에 대한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사실과 역사를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두고 싶다. 궁중 문화축전은 끝이 났지만 계속되는 궁궐행사들이 있으니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궁궐행사 참여 안내
① 경복궁 집옥재 도서관
소주방 궁중음식 체험·시연
동궐도와 함께하는 창덕궁 나무 답사
어필 현판전,나무에 새긴 임금님의 큰 글씨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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