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같은 독성물질 피하려면?

시민기자 이현정

발행일 2016.05.10. 11:38

수정일 2016.10.11. 15:04

조회 1,900

함께 서울 착한 경제 (47) 화장품에서 세제까지 성분 확인하고 구매하려면?

수백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습기 살균제’는 또 다시 우리 사회의 생명 안전과 도덕성, 신뢰망에 관해 묻는다. 눈앞의 이익만 좇는 기업, 세균 공포를 조장하며 세계 최초 안전한 살균제품이라 치켜세우던 언론, 연구 결과를 조작하며 빠져나갈 구실을 마련해준 학자, 가해 기업을 옹호하는 법조인, 그리고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함에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 수년간 묻혀있던 진실이 속속 파헤쳐 지며 시민들은 회의에 빠졌다. ‘과연 우리 사회는 합성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제 유해 화학 물질로부터 우리 가족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20여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밝혀지나?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에서 개발된 제품이다. 당시 유공과 언론은 ‘100% 살균 효과가 15일가량 지속되고,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선전한다. 1996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원인 물질 중 하나인 PHMG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을 유공이 세계 최초로 제조했을 때도 비슷했다. 이어 1997년 환경부는 관보를 통해 항균 카펫 첨가제로 신고한 ‘PHMG이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하였고, 2001년 옥시레킷벤키저에서 이를 넣은 제품 ‘옥시싹싹뉴가습기당번’을 출시한다. 카펫 세정제를 흡입 유해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사용한 것이다. 

‘세균배출기’라는 가습기 문제를 언론 보도로 접해온 소비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는 무엇보다 반가운 제품이었다. 이내 시장규모 10억 원 대의 인기 제품이 되었고, 애경, 롯데쇼핑, 홈플러스, 세퓨, 이마트 등 제조 판매사들이 앞 다투어 이 시장에 뛰어든다. 보다 독성이 높은 PGH(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를 넣어 만든 제품도 등장했다.

하지만 2011년 11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와 동물실험 결과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MG와 PGH가 폐 섬유화를 일으킨 원인으로 확인되었다’며 6개 제품을 수거하고, 판매 금지한다. 이는 2006년부터 원인 미상 폐 질환 환자가 느는 것을 이상히 여긴 의사들의 신고로 밝혀지게 된 것으로, 2002년 첫 사망자 발생 후 십여 년 만의 일이다. 이때까지 가습기 살균제는 약 20여 종의 관련 제품이 매년 평균 60만 개 이상 팔렸고, 사용자만 최소 800만 명에서 천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렇듯 어렵게 원인이 밝혀진 후에도 제대로 된 검찰 조사가 진행된 것은 올 1월, 피해자의 30~40%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다. 피해 발생 후 7년, 인지 후 3년이 제조물제조법의 공소시효로 작용해 현재 문제를 제기할 수조차 없는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유일 가습기 살균제 판매국, 대한민국은 유해물질의 천국?

9일 세종문화회관 앞 56개 시민사회단체의 옥시제품 불매 집중행동기간 선언 기자회견 중 ⓒ환경운동연합

9일 세종문화회관 앞 56개 시민사회단체의 옥시제품 불매 집중행동기간 선언 기자회견 중

사망자 146명, 피해자 530명, 이는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 손상 의심 사례 1, 2차 조사 결과로 드러난 피해 규모다. 하지만, 지난 4월까지 피해 신고자만 1,528명(이중, 사망자는 239명)으로, 최근 하루 100건이 넘는 피해 신고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와 ‘2015년 12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0년, 2011년 피해자만 최소 29만 명에서 최대 227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난 것일까? 가습기 살균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판매 허가된 제품이다. 유럽 연합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살균·항균 기능의 살생물제(biocide) 성분의 소비자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안전성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제조회사가 지고, 회원국 정부는 안전성을 확인한 때에만 시장 출시를 허가하도록 하는 살생물관리지침(Biocidal Products Regulation·BPR) 제도를 1998년부터 시행해왔다. 또한, 유럽 연합에선 살생물제 화학물질 중 사용 금지 대상으로 500여 종을 정해놓고 있는 데 반해 우린 26종만 금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의 68%가 유럽 기업의 제품임에도 유럽에서는 판매되지 않았던 것이다. 드라마화된 웹툰 ‘송곳’의 한 장면처럼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라는 장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폐 섬유화 증상을 일으킨 PHMG · PGH 함유 제품에 한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와 피해자를 발생시킨 CMIT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 제품은 폐 손상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다우케미칼의 상품안전 평가서, EPA 보고서 등을 보면 그 독성을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2012년 9월 환경부가 CMIT·MIT를 유독물로 지정하면서 “흡입하면 매우 유독하다”고 밝힌 바 있어 추가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와 같은 유해성분이 여전히 각종 생활용품에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살생물제 안정성 평가기법 도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71개 업체를 대상으로 활성 성분 설문조사 결과 세정제 31개 제품, 탈취제 24개 제품, 방향제 41개 제품에 MIT와 같은 유해 화학물질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 제대로 알고 꼼꼼하게 고르려면?

9일 시민사회단체의 옥시불매 집중해동기간 선언 기자회견 ⓒ환경운동연합

9일 시민사회단체의 옥시불매 집중해동기간 선언 기자회견

전 세계에 유통되는 화학 물질은 14만 여종, 매년 수백 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개발되고 있다. 컴퓨터와 전자제품 부품, 각종 플라스틱 제품, 인공 가죽, 인공 섬유는 물론, 농약이나 비료, 도료, 비누나 각종 세제와 같은 세정제, 살균 · 항균제, 치약, 구강청결제, 기초 및 색조 · 향수· 염색 · 자외선차단제와 같은 화장품, 방향제와 섬유탈취제, 물티슈, 일회용 기저귀 등에도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심지어 음료수나 과자 등 아이들 간식에 든 색소 등 인공첨가물도 모두 화학물질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대량 소비되고 있는 이들 화학물질은 시장에 나오는 즉시 파악하기도 힘들다.

과거 DDT나 PCB 대사물,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수년이 흐른 후에야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 유해 화학 물질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각종 화학물질은 이렇듯 해로운 유산으로 미래세대에 피해를 주게 된다. 설사 유해물질로 의심이 가더라도 이를 밝혀내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의 연구가 급성 독성 여부나 발암성을 측정하는 연구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량의 물질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때의 영향은 쉽게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다. 특히 선진국보다 화학물질에 대한 총체적인 파악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성분 표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화학 물질 관련 지식을 얻기도 쉽지 않아 대부분 소비자는 미처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사용하며 배출한다. 생활 속에서 온갖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어린이날 시청광장 옥시 불매 인증샷 찍는 시민

어린이날 시청광장에서 옥시 불매 인증샷을 찍는 시민

각계각층에서는 이번 사태를 보며,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해법들을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처럼 시장에 유통되는 물질의 위험성 평가와 정보 공개를 업체에 의무화하고 정부는 그것을 확인하고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될 때 사용과 생산을 규제하는 등 예방원칙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과 문제 등을 명명백백 밝혀내고 해결하고 사회적 해법을 찾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합당한 조치만 기다리며 유해물질이 들어있을지 모를 생활용품들을 계속해서 소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모든 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직접 성분을 분석하고 깐깐하게 고른 물품을 판매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해보자.

한살림 화장품은 성분을 모두 공개하고 조합원들이 제품을 선정한다

한살림 화장품은 성분을 모두 공개하고 조합원들이 제품을 선정한다

한살림이나 두레 생협과 같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는 화장품에서 세제까지 전 제품의 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아울러 환경부의 `생활환경안전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제품의 모든 성분 공개도 하지 않고, 유럽이나 선진국보다 사용 금지된 유해물질의 종류도 턱없이 적지만 그래도 화학물질에 대해 소비자가 찾아볼 수 있는 창구로는 유일하다시피 하니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이처럼 늘 제품 성분을 확인하고, 성분을 공개한 제품을 구매하는 등 소비자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질 때, 관련 법규나 제도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현명한 소비가 제품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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