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없는 ‘안심골목’ 만들어 갑니다

시민기자 이현정

발행일 2016.04.19. 15:34

수정일 2016.10.11. 15:06

조회 1,705

맘상모 행진모습 ⓒ김남균

맘상모 행진모습

함께 서울 착한 경제 (45) 임차인을 보호하지 않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우리 사회에서 주택이나 상가는 삶의 터전일까? 좋은 투자처일까? 치솟은 집값만큼이나 무섭게 오르는 전·월세 때문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장사도 안 되는데, 가겟세는 해마다 오르고, 자리 잡을 만하면 어김없이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나가란다. 시설비며 초기투자금 등을 따져보면, 남는 건 늘 빚뿐이다. 그저 ‘원래 가게 주인들은 다 그래’라며 넘길 문제인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상가 임대차 문제에 대해 ‘골목사장 생존법’ 저자 김남균 씨를 찾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골목사장 생존법 공동저자 김남균(좌), 김남주(우) ⓒ김남균

골목사장 생존법 공동저자 김남균(좌), 김남주(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건물주가 챙긴다?

서촌, 연남동, 망원동 등 요즘 그야말로 ‘핫’하다는 동네는 몇 해 전만 해도 작은 골목 상권에 불과했다. 인적 없는 골목에 소박한 가게를 차리다보니 아기자기한 매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골목이 뜨니 가겟세를 올려달라, 이젠 그만 나가달란 얘기부터 들린단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가게주인이 챙긴다’라든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비유가 달리 나온 얘긴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엔 한 자리에서 5년을 버티는 가게가 잘 없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백 년 이백 년 가업으로 이어가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일본은 망해도 손실이 없을 정도로 자영업 정책이 잘 돼 있거든요. 예전에 일본의 차지차가법과 한국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비교하는 강좌를 진행했는데, 일본법을 보니 부럽더군요.”

김남균 씨의 설명처럼, 일본의 차지차가법은 임대인을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보고 약자인 임차인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임대료를 올리거나 쫓아낼 수 없으,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는 계약은 당사자 간 합의로 체결했더라도 그 효력을 무효화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임대차 보호 기간이 최장 30년인 독일과 퇴거 보상 고액화로 사실상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임차인을 쫓아낼 수 없도록 하는 프랑스의 예와 같이 대부분 유럽 국가들도 임차인이 편히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1733년에 개점한 피렌체의 한 카페. 유럽에서는 한 자리에서 100년이 넘도록 운영하는 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1733년에 개점한 피렌체의 한 카페. 유럽에서는 한 자리에서 100년이 넘도록 운영하는 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김남균 씨는 당시 강좌에 참가했던 이웃 상인들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법’)에 대한 생각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들의 모임 (이하 ‘맘상모’)’을 꾸리게 되었다고 한다. 임대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가법의 문제를 알리고, 대안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의 개정을 끌어낼 수 있었다. 6명으로 시작된 모임은 현재 2,000명으로 크게 늘었고, 이 중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정회원만 600명 규모이다.

상가법국회토론회 2016.03.31 ⓒ김남균

상가법국회토론회 2016.03.31

“사실 법 개정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죠. 김남주 변호사가 한번 개정 법안을 써서 국회에 들어가 보자 해서, 시작하긴 했는데, 사실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헌법소원을 내고, 기자회견도 하고,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매일매일 이메일 보내고, 내용을 잘 모르는 의원들을 위해 만화로 그려 보내고, 설득만으론 안 되겠다 해서 상복 입고 상가법(喪家法) 일인 시위도 했지만, 실제 법이 개정될 것이란 생각은 못 했거든요.”

2차례의 개정을 통해 권리금이 법제화하고 건물주가 바뀌어도 계약은 보호되는 등 임차인의 권리를 상당 부분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허점이 남아있어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15년 5월 상가법개정운동 ⓒ김남균

2015년 5월 상가법개정운동

투기 NO! 갑질없는 ‘안심골목’, 대안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 이유 중에는 투자자가 과하게 투자를 한 탓도 있습니다. 20억 하던 건물을 50억에 사고는, 대출 이자 등 본인들의 비용과 손실을 장사를 하고 있는 임차인에게 떠넘기는 것이죠.”

홍대 앞, 삼청동, 가로수길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정점에 달한 곳에선 투기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부동산 컨설팅업자, 기획 부동산을 꼽는다. 암암리에 투자자들에게 권리금을 없애 이를 임대료 상승분으로 만들기 위한 반칙을 유도하며, 과도한 투자를 부추긴다는 얘기다.

2015년 5월 맘상모사무실개소식 ⓒ맘상모

2015년 5월 맘상모사무실개소식

“최근 강남과 홍대에선 임대차계약 시 ‘제소 전 화해조서’를 많이들 쓰고 있는데요. 제소하기 전에 합의를 봤다는 것이니, 일종의 신체 포기각서와 같은 겁니다. 제소 전 화해조서를 요청한다면 아예 계약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계약서에 특이사항이 많은 경우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거든요.”

김남균 씨는 계약 시 이왕이면 임대차 표준계약서 대로 쓰고, 변호사나 전문가에게 꼭 물어보고 계약할 것을 당부했다. 서울 임대차상담실 (전화 2133-1211~2, 온라인게시판)이나 마을변호사 등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한, 맘상모(cafe.daum.net/mamsangmo, www.facebook.com/mamsangmo)에 물어봐도 된다고 하니, 계약서를 잘못 써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지난해 11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민관협의체가 주축이 되어 실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각 지역별로 임대인, 임차인, 지역주민, 전문가와 공무원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꾸린다는데, 지역의 문제를 지역 주민이 함께 해결한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이다. 내가 사는 지역 내에서 ‘적정 임대료는 어느 정도인지’, ‘거대 자본 프랜차이즈로부터 골목 상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역주민과 영세상인들이 함께 골목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은 시작된다.

김남균 씨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전시 마을축제 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남균 씨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전시 마을축제 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여전히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쓰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협동조합에서 '생활'을 배워봤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을 소개하고 이들에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생활정보를 통해 일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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