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잡은 용감한 시민 “소원이 있어요”

최경

발행일 2016.03.31. 15:35

수정일 2016.03.31. 16:17

조회 1,292

경찰서ⓒ시민작가 한동헌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9)

자정이 넘은 시각, 귀가를 서두르는 한 여자를 몰래 뒤따르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가 주택가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서자 남자는 본색을 드러내며 강도로 돌변했다. 여자가 격렬하게 저항을 했지만, 남자를 물리치기는 역부족이었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바로 그 때, 강도를 향해 간이용 의자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이가 있었다. CCTV에 찍힌 용감한 사내는 도주하는 강도를 끝까지 쫓아가 격투 끝에 제압했다. 사내는 경찰에서 용감한 시민으로 표창을 받게 됐다. 그런데 용감한 시민 Y씨는 경찰에게 뜻밖의 부탁을 했다고 한다.

“보통 용감한 시민상 받으면 경찰청 홈페이지에 상 받는 사진을 올리게 되는데, 이 분은 5살 때 사진을 올려달라고 하셨습니다.”

40대 초반의 노총각 Y씨는 왜 사람들에게 5살 때 얼굴로 알려지길 원했던 걸까?

사실 그는 37년 전인 5살 때, 길을 잃고 가족과 헤어졌다고 한다. 그 후 집 대신 보육원에서 자라야 했다. 너무 어릴 때라 가족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5살 보육원 입소 당시 찍은 사진이 유일한 과거모습이라고 했다. 그 사진 한 장이 유일한 희망이고 부모님을 찾고 싶은 그의 평생소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저는 기억을 못하지만, 5살 때 사진을 보면 부모님은 반드시 알아보실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모습을 찍은 것보다 옛날 사진을 올려달라고 경찰에 부탁드린 거예요. 이것마저 없었으면 진짜 찾기 힘들겠죠. 이름도 생년월일도 불확실하니까요.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살아 계시면 어릴 때 저를 기억하지 않을까요?”

Y씨가 자랐던 보육원에서 찾을 수 있는 기록은 입소날짜와 생일 정도였다. 그런데 생일마저도 그가 미아로 발견된 날짜인 것으로 추정됐다. 5살 어린 Y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미아가 된 것인지 과거 기록들이 있으면 짐작이라도 해볼 테지만, 보관기간 30년이 지나 입소 서류 등이 전량 폐기된 상태였다.

70년대 후반, 가난했던 시절 보육원은 부모 없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거친 형들이나 선생님에게 얻어맞거나 굶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Y씨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어 12살에 보육원을 뛰쳐나와 거리를 떠돌았다고 한다. 비뚤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불우한 환경이었지만 Y씨는 성실하게 기술을 배워 지금은 전기기사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됐다. 그에게 가족이라고는 함께 사는 길고양이 세 마리 뿐이다. 홀로 밥을 먹고 홀로 잠을 자고, 집에 들어와도 혼자인 생활이 그에겐 평생을 따라다닌 익숙한 일상이다. 그는 제작진에게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뜻밖에도 유언장이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건데요. 이게 한 3년 전 쯤 쓴 건데 만약을 대비해서 늘 갖고 다녀야겠다 싶더라고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죽음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유언장까지 몸에 지니고 다니는 Y씨, 혈혈단신인 그가 죽는다 해도 연락할 가족이 없다. 한줄 한줄 유언장을 써내려가며 그가 느꼈을 외로움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제가 아무리 보고 싶다고 해도 찾아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늘이 도와줘야 하는 건데, 여태 못 찾는 걸 보면, 이렇게 사는 게 내 운명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조금씩 포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기도는 해요. 어딘가에 살고 있을 가족들이 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다 가시라고요.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면 헤어지지 말자고요.”

Y씨는 경찰청에 자신의 DNA를 등록했다. 언젠가 꼭 한번은 살아서 피붙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아직 그가 가족을 만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절대 버릴 수 없는 희망이 있으므로 그는 성실하고 선하게 또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용감한 시민 Y씨가 가족과 상봉해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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