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돈만큼은 내가 꼭 갚을게"

최경

발행일 2016.03.03. 16:03

수정일 2016.03.03. 17:06

조회 775

현금ⓒ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5) 사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다. 우리 주변엔 사기꾼이 넘쳐나고 까딱 잘못하다간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아무리 똑똑하다 자부해도, 나는 감언이설에 쉽게 속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신해도 작정하고 덤벼드는 데 당해낼 사람은 별로 없지 싶다. 사건사고를 많이 다루는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온갖 종류의 사기사건을 접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기를 당했다는 제보도 끊이지 않는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야채팔고, 과일 팔며 평생 어렵게 돈을 모은 상인들이 자식들 결혼자금으로, 노후자금으로 목돈마련을 위해 조금이라도 이자가 높은 계를 들었다가 계주가 종적을 감추는 일은 다반사, 그런가하면 자신이 유명 아이돌그룹의 코디네이터라고 하면서 연예인 협찬으로 각종 해외 고가품, 심지어 아파트까지도 절반 값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경우도 있다. 기가 막한 것은 대형마트 소시지 1+1 행사처럼 최고급 외제승용차를 싼 값에 사면서 국내 중형 SUV차량을 한 대 더 준다고까지 했단다. 그리고 가뜩이나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는 대학생들에게 대출을 받아오면, 원금은 물론이고 수고비까지 듬뿍 챙겨주겠다는 말에 속아 제2 금융권에서 수천만 원의 대출을 받아 넘긴 후, 빚 독촉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생각하는 20대 청년들도 있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사기꾼의 눈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호구로 보일 것이고, 돈줄로 보일 것이니, 큰 노력 없이 돈 생기는 일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쑤는 말도 안 되는 것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것처럼 사기를 친다. 어이없어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속아 넘어간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깜빡 속아 넘어가는 사기의 수법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우선, 사기꾼은 굉장히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자상하거나 혹은 엄청난 재력을 뽐낸다. 그 지역에서 누구나 아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거나(물론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방송에 출연한 이력을 자랑하기도 하고, 고급 외제승용차와 고가의 옷과 신발을 선보이는 건 기본이다. 쉽게 돈을 버는 것이 곧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똑같이 부자 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쯤 되면 사기꾼은 속삭인다. “나만 알고 있기 참 아까워서 당신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이러면서 은근슬쩍 원금을 몇 배로 불릴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는 척하며 돈을 맡기라고 말한다.

그 다음 단계는 맛 뵈기와 문어발 작전이다. 처음에 사기에 걸려드는 대상은 친한 동창이나 지인이 대부분이다. 그가 절대 사기 칠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하는 바로 그 당사자가 첫 번째 사기의 대상이자 교두보가 된다. 사기꾼은 말한 대로 엄청난 이자를 꼬박꼬박 서너 번 쯤 주면서 신뢰를 쌓는다. 세상에 이렇게 쉽게 돈 버는 방법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 자신이 사기꾼의 꼭두각시가 된 줄도 모른 채 주변에 입소문을 내기 시작한다. “내가 돈을 맡겼더니 한 달에 이자를 이만큼씩이나 주더라고, 처음엔 설마 했거든, 그런데 진짜더라니까...” 이러면 주변 사람들이 귀를 팔랑거리며 하나 둘씩 돈을 맡기겠다고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기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에서 사고가 터지기 시작한다. 꼬박꼬박 들어올 줄 알았던 이자가 끊기고, 원금도 곧 준다 해놓고 차일피일 미룬다. 그러면서 사기꾼은 더 높은 이자를 줄 테니, 더 큰 돈을 맡기라고 부추기고 본전 생각이 간절한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추가로 건네기도 한다. 그런데 사기꾼은 이자를 내놓거나 투자원금을 돌려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돈을 내어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사기 쳐서 받아낸 돈을 입막음을 위해 쓰는 것이다.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거액의 사기사건으로 펑 터지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기 피해자들 중, 실제 경찰에 피해를 신고하는 이들은 일부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마지막까지 사기꾼은 본능을 숨기지 않으며 악마처럼 속삭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몰아서 지금 억울하게 됐는데, 당신 돈만큼은 내가 꼭 갚아.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안 그래? 그러니까 고소 같은 거 하지마. 고소한 사람들은 국물도 없어.”

그동안 쏟아 부은 원금까지 잃게 될까봐 두려운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사기꾼이 언젠가는 돈을 돌려줄 것이라 생각하고 신고를 꺼린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이미 사기꾼에게 들어간 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없다. 100이면 100, 다 그러했다. 그러니 착각은 금물이다. 주변에서 엄청난 이익, 엄청난 이자율, 반값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 특혜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인생엔 절대로 일확천금은 없다. 누구나 예외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저 또각또각 하루를 제대로 성실히 사는 게 답이다.

#사기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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