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 독립운동가 ‘베델과 테일러'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6.02.29. 16:00

수정일 2016.02.29. 18:53

조회 3,158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앨버트 테일러 묘지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앨버트 테일러 묘지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 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아흔이 넘은 동네 토박이 할머니는 “원래 베델의 집터는 저기였다”며 기자에게 공원 끝의 아파트를 가리켰다. 실제 집터는 아파트가 되었고, 지금은 공원 안의 표석만이 ‘베델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베델의 집이 있었던 월암근린공원 입구(좌), 어거스트 베델 집터(우)

베델의 집이 있었던 월암근린공원 입구(좌), 어거스트 베델 집터(우)

어니스트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인 독립운동가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조선의 독립을 돕기 위해 곧바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순 한글판, 영어판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그는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영어 발행, 황무지 개간권 반대 보도 등을 통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6개월 근신형과 상하이로 끌려가서 3주간의 금고형을 살았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안장됐다. 고종은 베델의 독립운동을 평가하여 ‘배설(裵說)’이라는 한국명을 하사했고,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베델의 묘지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베델의 묘지

이어서 베델 집터 인근의 미국인 독립운동가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를 찾아 행촌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은행나무가 심겨진 권율 장군의 집터에서 내려다보면,  ‘딜쿠샤(DILKUSHA)’란 현수막이 나붙은 2층의 서양식 주택이 보인다. 테일러가 19년 동안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바로 그 집이다. 딜쿠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아버지와 서울에서 살았던 집을 찾아 나선 2006년 이후이다.

행복한 마음의 궁전, 딜쿠샤

행복한 마음의 궁전, 딜쿠샤

외벽에는 ‘DILKUSHA 1923’라는 글씨가 또렷이 남아 있다. 딜쿠샤는 ‘이상향’을 의미하는 ‘힌두어’이다. 앨버트 테일러는 대한제국 및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하던 기업인 겸 언론인이다. 1896년 금광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고, 경술국치 이후에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다.

3·1운동 당시에는 UPI통신 서울특파원으로서 몰래 독립선언문을 빼돌려 전 세계로 타전하여 조선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린다. 또 ‘제암리 학살사건’을 보도하여 일제의 잔학상을 서방 세계에 고발했고, 스코필드, 언더우드 등과 총독을 방문해 일제의 만행에 대해 항의했다. 이에 화가 난 조선총독부는 테일러를 가택연금하고, 급기야 1942년에 미국으로 추방한다.

베델 집터 아래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

베델 집터 아래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

그는 “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48년 6월, 73세로 사망했고, 유해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는 지난해 “I want to go home(한국)”이란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매년 3월이 오면 3·1 독립운동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 올해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베델과 테일러’도 기억할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행촌성곽마을 나들이를 권해보고 싶다. 부모로부터 듣는 독립운동 이야기는 색다르지 않을까. 권율 장군 집터와 홍난파 가옥도 함께 있으니 하루나들이 장소로 충분하다. 죽어서도 한국을 잊지 않으려고 양화진에 잠들어 있는 '베델과 테일러'.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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