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서 만난 소녀상 "나를 잊으셨나요?"

시민기자 김경민

발행일 2016.02.26. 16:44

수정일 2016.02.26. 19:08

조회 4,139

나를 잊으셨나요

한성대입구에 위치한 `한중 평화의 소녀상`

한성대입구에 위치한 `한중 평화의 소녀상`

[3.1절 기획] (2) 서울 곳곳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삼일절은 어느덧 97주년을 맞이했지만, 일본은 강제노역이 행해진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등 여전히 일제 침략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말 위안부 협상 이후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에 일본대사관 앞엔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60일이 넘도록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기자 역시 ‘평화의 소녀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서울엔 여섯 개의 소녀상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일요일 다가오는 삼일절을 맞아 아이와 함께 다른 곳에 있는 소녀상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대현문화공원, 파란 날개  소녀상

지하철 2호선 이대역에서 이대정문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대현문화공원에 서 있는 소녀상(김서경, 김운성 作)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소녀상에 비해 다소 앳된 모습의 이 소녀는 파란 나비의 날개를 달고 발뒤꿈치를 든 채 날아오르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에 찾았을 때는 목도리만 걸치고 있었는데, 이날은 빨간 털모자와 노란 털장갑, 회색 목도리가 소녀의 발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마음이 훈훈해져 잠시 바라보고 있는데 함께 간 아이가 아빠에게도 주지 않던 핫팩을 소녀에게 건넨다.

아이는 자기가 쥐고 있던 핫팩을 소녀의 손에 건네주었다

아이가 자기가 쥐고 있던 핫팩을 소녀의 손에 건네주었다

이 소녀상은 지난 2014년 12월 24일, 평화나비 네트워크, 이화여대 총학생회 등 평화비 건립 추진위원회의 대학생 단체들이 모여 세운 것이다. 원래 이화여대 교정 내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학교 측의 반대로 이곳에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소녀 발밑에는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비”라는 작품명과 함께 “대학생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새 세대로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그 날까지 역사를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고 새겨져 있다.

길을 가던 두 학생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소녀상 앞에서 “이건 진짜 소녀상 아니야. 진짜는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거 아니야?”라며 잠시 말씨름을 한다. 이 앳된 소녀가 혹시라도 이 말을 들으면 서운할까 싶어 걱정이 됐다. 기자는 안쓰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 소녀상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한성대역 입구, 세계 최초의 ‘한중 평화의 소녀상’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 위치한 또 다른 평화의 소녀상(김서경, 김운성, 판이췬, 레오스융 作)을 찾으러 나섰다. 담벼락을 따라 이어진 노점을 지나 조그만 공원 한켠에 한복을 입은 한국 소녀와 치파오를 입은 중국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다. 노란 털모자와 털목도리를 한 두 소녀는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두 손을 불끈 쥔 채 앞을 주시하고 있다.

나란히 앉아 있는 한중 소녀상(좌), 굳게 쥐고 있는 주먹(우)

나란히 앉아 있는 한중 소녀상(좌), 굳게 쥐고 있는 주먹(우)

‘한중평화의 소녀상’은 작가 김서경, 김운성과 중국의 청화대 판이췬 교수, 영화제작자 레오스융이 의기투합하여 만들게 되었다. 이 소녀상 역시 열 달 넘게 설치 장소를 찾지 못하다 성북구와 성북평화위원회의 노력으로 지난해 10월 28일,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소녀상 어깨 위에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의 상처럼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살아있는 할머니들을 연결해주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아이가 마음이 쓰였는지 억울하게 떠난 피해자의 빈자리를 상징하는 빈 의자에 앉아 소녀의 손을 잡아 준다.

마들근린공원, 그림자를 가진 소녀상

세 번째로 찾은 평화의 소녀상(김서경, 김운성 作)은 지하철 4호선 창동역에 내려 1120번 버스를 타고 마들근린공원에 내려 역사의 길을 따라가면 노들마들스타디움 옆 언덕에서 만날 수 있다. 털모자, 목도리, 털조끼, 치마에 발을 감싼 파란색 머플러까지... 지금까지 만나본 소녀상 중 가장 따뜻해 보이는 소녀상이었다.

마들근린 공원 평화의 소녀상(좌), 비문을 읽고 있는 아이(우)

마들근린 공원 평화의 소녀상(좌), 비문을 읽고 있는 아이(우)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이 소녀상은 지난해 8월 25일에 세워졌다. 소녀상 뒤쪽 바닥에는 소녀가 할머니로 변할 때까지 풀리지 않은 한을 상징하는 그림자와 부디 나비로 환생해 그 한을 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하얀 나비가 조각되어 있다.

소녀상 뒤편으로 그림자와 하얀 나비가 보인다

소녀상 뒤편으로 그림자와 하얀 나비가 보인다

정동길, 고등학생들이 만든 소녀상

마들근린공원에서 102번과 160번 버스를 갈아타고 찾은 마지막 평화의 소녀상(김서경, 김운성 作)은 정동길 경향신문 옆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 홀로 서 있다. 다른 소녀상과 달리 삼면이 철창으로 둘러쳐져 있어서인지, 더욱더 쓸쓸해 보였다. 지난달에 봤을 때 쓰고 있던 귀마개와 장갑은 안 보이고, 노란 목도리만 두르고 있었다.

정동길 소녀상 전신(좌), 나비를 얹은 손(우)

정동길 소녀상 전신(좌), 나비를 얹은 손(우)

이 소녀상은 왼손에 평화와 희망을 상징하는 나비를 얹고, 오른손은 호소라도 하듯 우리에게 내밀며 굳세게 서있다.  정동길 소녀상은 지난 해 11월 3일, 광복 70주년이자 86번째 학생의 날을 맞아 이화여고 학생들을 비롯한 서울 53개 고등학교 1만 6,000명 학생들이 뜻을 모아 건립했다. 소녀상 앞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동상이 서있다. 돌아서는 길에 소녀가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프란치스코 성인 동상과 한 컷에 나올 수 있는 사진을 찍었다.

평화의 소녀상(좌)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 동상(우)

평화의 소녀상(좌)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 동상(우)

이밖에도 서울시엔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과 서초고등학교 교정에 소녀상이 있다. 여섯 명의 소녀를 모두 만나보고 싶었으나, 소녀상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발을 떼기가 어려워 시간이 지체되었다. 모든 소녀상을 들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삼일절엔 꼭 시간을 내 다른 두 명의 소녀도 만나러 갈 생각이다.

지난 22일 김경순 할머니가 아픔을 품은 채 저 세상으로 가셨다. 이로써 공식 확인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분 중 44분만이 남았다.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그 분들의 한이 풀어질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녀들이 잊혀지지 않기를...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