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밌는 '트릭스터' 캐릭터

최순욱

발행일 2016.02.24. 13:51

수정일 2016.02.24. 17:52

조회 1,545

신화 속 트릭스터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낸 영화 `데드풀`(출처 :www.foxmovies.com/movies/deadpool)

신화 속 트릭스터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낸 영화 `데드풀`
(출처:www.foxmovies.com/movies/deadpool)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19) : 현대에 되살아난 트릭스터

최근 전 세계 영화가를 달구고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데드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헐리우드 영화 치고는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투입했음에도 단 2주 만에 그 10배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우리나라에서도 2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며 2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내용 누설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간략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잘나가던 날건달 주인공은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살던 차에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2. 암을 치료하기 위해 이상한 시험에 자원한 결과 이런저런 놀라운 힘을 갖게 된다. 3. 여자친구가 위험에 빠지자 그녀를 구하러 나선다. 이 세 줄짜리 과정에 온갖 너저분하고 난잡할뿐더러 야하기 그지없는 화장실 유머가 사정없이 피가 튀기는 정신 나간 수준의 액션과 함께 비벼져있다.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의 99%는 데드풀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에서 나온다. 날건달 출신이니만큼 정의감도, 책임감도, 품위도 없는 대신에 거침없는 입담과 상식을 파괴하는 엉뚱한 행동으로 중무장했다.

신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캐릭터를 ‘트릭스터(Trickster)’라고 부른다. 트릭스터는 기존에 주어진 신의 명령이나 자연계의 질서를 어김으로써 이야기에 파란을 일으키고 추진력을 불어넣는 ‘질서의 파괴자’다. 트릭스터는 도둑질이나 짓궂은 장난을 벌이곤 하는데, 이런 행위들은 악의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결국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장난이나 속임수로 상대방을 욕보이지만, 이 때문에 자신도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흔하다. 영웅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사악한 파괴자로 행동하기도 한다. <신화적 트릭스터의 표상>이라는 책을 쓴 윌리엄 하인즈와 윌리엄 도티는 고전적인 트릭스터 캐릭터의 요건을 1. 기본적으로 모호하고 변칙적이거나, 2. 사기꾼이거나 장난꾸러기이거나, 3. 변장의 명수이거나, 4. 상황을 역전시키는 존재이거나, 5. 신을 흉내내며 섭리를 전하거나, 6. 성스러움과 음탕함이 뒤섞여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 세계의 여러 신화들이 트릭스터를 묘사하고 있는데, 북유럽 신화의 로키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코요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신화적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후일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데드풀이 트릭스터 캐릭터라는 걸 잘 보여주는 행동 하나가 영화 속에서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이다. 심지어 데드풀이 아닌 주연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이걸 ‘제4의 벽’을 깬다고 말하는데, 이런 행동은 보통의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어날 수도 없는 금기에 가까운 행동이다.

사실 트릭스터란 캐릭터가 데드풀에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배트맨의 최대 적수인 ‘조커(Jocker)’도 대표적인 트릭스터다. 조커는 돈이나 권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혼란만을 일으키려 한다. 어떠한 규칙에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조커의 행동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조커는 고담 질서의 수호자인 배트맨의 최대, 최강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데드풀은 기괴한 개그와 유머, 액션을 원하는 성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다. 그리고 고대 신화의 트릭스터 캐릭터가 현대에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살펴보기에도 나쁘지 않게 보인다. 아마 영화를 보기 전, 또는 후에 트릭스터 캐릭터들에 대해 좀 더 찾아본다면 영화 감상의 재미가 배가되지 않을까.

#최순욱 #신화여행 #데드풀 #트릭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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