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민은 평생학습이 만듭니다"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6.01.13. 15:10

수정일 2016.01.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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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평생교육 전문웹진 <다들>을 발간합니다. 남거나 빠진 것 없는 모두를 뜻하는 '다'와 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을 의미하는 '들'의 합성어로, 서울시민에게 유익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뜻입니다. '깨움', '배움', '채움', '다움' 등 4가지 메뉴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배움 : MENTOR'는 우리 사회의 스승이자 시대의 사표와 함께 배움과 학습의 참된 뜻을 헤아려 보는 자리입니다. 더불어, 평생교육을 위해 땀 흘리는 현장 활동가와 평생교육사, 정책 관계자, 학자와 연구자 분들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며, <다들>의 발행인인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이 직접 인터뷰 진행자(인터뷰어)로 나섭니다. 2016년 새해 <다들>이 만난 첫 멘토는 박원순 서울시장입니다.

“뭐든지 말해보세요.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제가 바로, 딱, 찾아올게요, 하하하.”

인터뷰 진행 중, “지난해 일본 교수와 만나 학교 시설을 활용한 지역 주민들의 평생학습 활성화 문제를 의논한 거 기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박원순 시장이 “아, 그거요?”라고 되묻더니 잽싸게 움직였다. 시장실 벽면을 병풍처럼 두른 책장 뒤편으로 잠시 사라진 그가 두툼한 자료철 한 권을 뽑아들고 나타났다. 자료철을 슥 훑어보더니 대답을 술술 풀어낸다.

박원순 시장

“다카하시 미츠루 일본 동북대 교수입니다. 민주주의와 정의, 참여 등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60년 넘게 유지되어 온 센다이시의 ‘사회학급’을 연구한 분이지요. 일본에서는 평생교육을 사회교육이라고 하는데, 사회학급은 말하자면 평생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급입니다. 센다이시의 경우, 2차 대전 종전 뒤 사회교육시설이 부족할 때 학교 시설을 개방하고 여기서 평생교육을 실시했지요.

우리나라는 안전사고 등 여러 문제 때문에 학교장이 학교 시설 개방을 주저합니다. 센다이시에서는 교장이 평생학습자로 위촉돼 사회학급의 책임자가 되니까 시설 개방이 한결 쉬워지는 것이지요. 센다이시에서는 64개의 사회학급을 운영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책장들에 빼곡히 꽂혀 있는 각종 자료철들은 한 눈에 봐도 1천여 개는 넘을 것 같다. 그 엄청난 자료 더미 속에서 <일본의 평생교육-센다이시의 사례>라는 특정 파일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박 시장의 이런 능력은 ‘비범’이라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가 다시 자리를 뜨더니 잠시 뒤 또 한 권의 자료철을 들고 왔다.

“이건 이라고, 제가 따로 정리한 자료들입니다. 말 그대로 ‘잘 죽는 것’이지요. 사람은, 죽는 법을, 그것도 아름답게 죽는 법을 알아야, 아름답게 살 수 있거든요. 평생학습의 천국이라고 할 만한 뮌헨의 파 슐레(Fach-schule), 국민고등대학, 말하자면 평생학습 전문대학인데요, 거기에는 죽음에 대한 강의만 수십 개가 됩니다. 가령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선인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었는가? 등등. 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알면, 지금처럼 탐욕적으로 살지 않게 됩니다. 집 한 채 더 가지려고, 좋은 물건 하나 더 지니려고, 살아 있는 소중한 기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걸 자연히 알게 되지요. 죽는다는데, 삶이 종말을 맞는다는데, 돈이며 집, 자동차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탐욕에 휘둘려 욕되게 사느니, 보람을 위해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죽음학 강의입니다. 그런데 이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잖아요? 바로 이게 평생학습이 중요한 이유이고, 인문학 강의가 각광을 받는 까닭이지요.”

‘일 중독자’로 알려진 박원순 시장과의 인터뷰는 ‘자료 중독자’라는 그의 또 다른 별명에 걸맞게 엄청난 분량의 자료철들이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는 시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다들> 인터뷰 팀은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늦은 시간, 시장실 중앙의 넓직한 목재 접견 테이블에서 박 시장과 마주 앉았다. 시에서는 평생교육과의 권명희 팀장과 박용성 주무관, 비서실의 김계환 연설 비서관이 배석했다. 진흥원에서는 인터뷰어인 김영철 원장과 정책·홍보팀 김혜영 팀장, 황미연 과장, 전아림 주임이 함께 했다.

테이블 저편 박 시장의 손에 인터뷰팀이 사전에 비서실로 보내준 질문지에 대한 모범답안이 들려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해 내는 그의 범상치 않은 능력을 아는지라, 인터뷰에 앞서 답변지를 보지 말고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어~, 그럴까요? 좋습니다.” 자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답변지를 내려놓자, 곧바로 첫 질문을 던졌다.

“배움이 희망이고, 학습이 미래다”

Q. 인터뷰를 앞두고 시장님이 쓴 책들을 챙겨봤습니다. 교육, 학습, 깨달음, 이런 것들과 관련된 언급을 살펴보려는 건데, 새로운 걸 알게 됐습니다. ‘박원순’ 하면 떠오르는 열쇳말이 소통, 공감, 연대, 뭐 이런 거라고 알았는데, 저서들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가 의외로 ‘희망’, ‘미래’더군요. ‘희망제작소’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일 터이구요.

박원순시장

A. 인권 변호사 때나 시민운동을 할 때, 제 모토가 “발은 현실에, 눈은 미래로, 고개는 희망을 향해”였습니다. 서울시장을 하는 현재도 마찬가지구요. 지금은 비록 고달프고 힘들지만, 미래에는 이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버티는 것이지요. 제가 쓴 책 중에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이란 책이 있습니다. 지금은 없는 직업인데 미래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직업을 정리해 본 겁니다.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들여다보면 미래가 보인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머리말 마지막 문장에 제가 이렇게 썼어요. “발칙한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미래 직업을 개척해 가는 젊은 청춘을 희망한다.” 그러고 보니 이 문장에도 ‘희망’이 들어가 있네요. 하하.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할 점은 ‘희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고된 노력과 헌신으로 만들어내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희망을 노력과 실천의 열매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Q. 평생학습이 서울시의 희망이자 미래다”는 말도 하셨더군요.

A. “위대한 도시는 위대한 시민이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배우고 학습해서 서울 시민의 수준이 올라가면 서울시의 위상은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요. 평생학습이 서울시민의 희망이자 서울시의 미래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Q. 지난 2004년 5월부터 세 달 동안, 한 달치 살림을 싼 배낭을 메고 독일을 종횡무진으로 누빈 적이 있습니다. 시민운동, 시민사회가 잘 뿌리내린 독일 사회를 밑바닥부터 배우기 위해서였다지요. 당시 시장님이 쓴 기행기 <독일 사회를 인터뷰하다>를 보면 독일의 시민교육, 평생교육의 현장을 보면서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독일의 평생학습, 어떤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나요?

A. ‘시민대학’(Volkshochschule)입니다. 독일 평생교육의 중심이지요. 특히 뮌헨의 시민대학을 둘러보면서 “독일이야말로 평생교육의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뮌헨 시민대학(Münchner Volkshochschule)은 일단 그 규모부터 대단해요. 본부 캠퍼스가 따로 있고, 뮌헨 시내 5개 권역에 100여 개의 강의실이 있어요. 연간 1만4천여 개의 강좌가 열리고, 수강생만 연 20여 만 명이라는 겁니다. 강좌도 아주 다양하지요.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인간·사회·정치 강좌가 한 영역으로 묶여 있고, 문화·문명·창조 강좌, 자연과학·환경과 생태학 강좌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영양·요리 강좌와 직업과 경력 강좌, 컴퓨터와 인터넷 강좌, 언어 강좌 등 실로 없는 게 없습니다. 제가 그 때 뮌헨 시민대학의 현황과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전화번호부만한 책을 일부러 한국에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 두꺼운 책을 번역까지 했는데, 이 때 받은 영감을 우리 사회에서 되살리고 싶어서였습니다.

Q. 그 정도면 규모나 내용 면에서 웬만한 종합대학을 능가하겠군요?

A. 그럼요. 프로그램의 방대함이나 다양성은 물론이고 특히 감명을 받은 건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라는 프로그램 구성 방법이었어요. 강좌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재구성하는 것이지요. 따분할 수도 있는 정치교육을 재미로 잘 포장해 놓으니 어떤 시민은 정치교육 강좌인지 모르고 왔다가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껴 적극적으로 정치교육에 참여하기도 한답니다.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단체가 직접 인포테인먼트를 하기도 하지만 수강생들이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모아 새롭게 재미있는 요소를 추가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각 지역에 있는 성인교육 주관 단체들의 책임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서 프로그램 가운데 중복되는 것들은 추려내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논의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당연히 각 지역별로 특별한 영역이 생기고, 그러니까 고유한 고객, 수강생이 참여하게 된다고 해요.

박원순시장 책

‘정치교육’ ‘민주시민교육’이 독일 민주주의의 뿌리를 만들어

Q. 시민 대상의 정치교육, 민주시민교육도 독일이 독보적이지요?

A. 그렇습니다. 독일 방문 당시 저를 초청해 준 곳이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입니다. 독일 시민을 위한 정치교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독일 사회민주당이 만든 재단이지요. 독일의 모든 정당은 죄다 그런 정치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재단들을 갖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같은 곳도 있구요. 잘 알다시피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나게 참혹한 재난을 당했잖아요? 유태인 600여 만 명이 학살되고, 자국 국민들도 큰 희생을 치렀구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한 국가와 사회가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되고 유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였지요. 독일이 전후에 ‘denazification’, 그러니까 ‘비나치화’를 화두로 시민 대상의 정치교육, 민주시민교육에 집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독일이 가장 극악한 나치 시대를 경험했지만 지금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고 그 뿌리에 건강한 시민의식이 자리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정치교육 덕분입니다.

Q. 과거 우리나라에도 독일식 시민정치교육을 도입하려고 했을 때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반대한 적이 있었지요?

A. 그렇습니다. 국가 이데올로기의 주입 통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지요. 그런데 그 때 독일의 정치교육 제도를 보고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습니다. 시장 취임 뒤 서울형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시민정치교육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Q. 독일은 시민교육과 평생교육이 나라의 근간을 바꾸는 엄청난 역할을 했군요?

A. 맞습니다. 뮌헨시가 들어선 지역이 바이에른 주인데, ‘바바리아’라고 하지요. ‘바바리아’는 라틴어로 ‘야만’이라는 뜻이거든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열다섯 권을 다 읽어보면 로마 군대가 북부 독일 지역인 게르만 지역으로 진군하는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이 지역이 아주 어둡고 침침하고 야만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지역이 바바리아입니다. 그런데 20세기가 지나면서 이 바바리아 지역이 독일 전역에서 가장 국민 소득이 높고, 가장 시민의 수준이 높은 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원인이 뭐냐? 바로 평생학습입니다. ‘뮌헨 시민대학’(Münchner Volkshochschule)이 바로 그 베이스 캠프구요.

“쉿! 뮌헨은 공부 중”

Q. 뮌헨 시민이 130만 명인데 연간 20만 명이 시민대학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이런 시민대학 강좌 말고도 시민단체와 가톨릭교회 등 각종 종교 시설들도 다양한 평생교육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뮌헨 시민 가운데 성인들의 상당수가 평생학습의 혜택을 누린다는 계산인데요?

A. 그렇습니다. 제 책에서 뮌헨의 평생학습을 설명하는 장의 소제목을 “쉿, 뮌헨은 공부 중”이라고 붙였습니다. 퇴근 후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뮌헨 도처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엄청난 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열공을 하는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어서지요. 남이 공부하는데 떠들면 안 되잖아요?(웃음) 지금도 뮌헨에 가면 조용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쉿! 뮌헨은 공부 중”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지요. 평생학습과 관련해서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어요. 서울시장으로서 외국 귀빈을 영접할 때, 그 사람을 만나자마자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쉿! 서울은 공부 중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서울 평생학습이 잘 돼서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게 제 소망입니다.(웃음)

Q. 독일 발전의 힘은 결국 평생학습이라는 말씀이군요?

A.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로마 시절, 게르마니아로 불렸던 야만의 땅이 지금은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문명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때 나치의 악정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겪었지만 지금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영국보다 빠른 시간 안에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을 경험한 나라여서 상대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어요. 독일 사람들의 시민적 수준, 지성의 힘, 생활에서의 근면성과 실용성, 이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오늘의 ‘불패의 독일’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산업의 생산성, 수출의 우위, 노동의 효율성, 최고의 기술력, 이 모든 게 압도적 세계 1위 아닙니까? 제가 평생학습이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희망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

Q. 평생학습으로 시민의 힘을 키워야 미래가 있다는 말씀이신데요. 시민의 힘, 줄여 말하면 ‘시민력’인데, 좀 다른 얘기지만 시장님 부임하신 뒤 서울시 평생학습 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이 ‘시민력’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용어입니까?

A. 일본에는 엄청나게 많은 싱크탱크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본 시민이 가진 지식의 힘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자”고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시민력’이라는 용어가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시민들의 지성의 힘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 동경과 보스턴, 런던, 북경, 서울 시민 한 명씩 딱 모여 대화와 토론을 해보자 이겁니다. 주제는 북핵 문제나 지구 온난화, 이산화탄소 줄이기도 좋구요. 요즘은 영어를 못 해서 토론이 안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런 자리를 만들어 놓고 대화를 붙여보면 각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지식과 지성, 지혜가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드러나는 게 바로 ‘시민력’입니다. 바로 그 힘을 키우자는 겁니다. 그것이 인문적 상상력과 시대적 통찰력, 혹은 과학 기술의 영역, 예컨대 나노 산업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기본으로 어느 정도는 얘기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가령 로봇 산업의 미래, 드론의 미래, 이런 것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토론을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기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바로 평생학습에서 나온다는 것이지요. 평생학습을 통해 서울 시민이 시민력에서 압도적 1위를 할 수 있도록 수준을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 가면 늘 <뉴욕 타임즈>를 먼저 봐요. 그 신문 한 며칠만 보면, 그 사회에 완전히 젖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미국 사람 누구하고도 꿀리지 않고 얘기할 수 있게 되지요. 말하자면 이런 힘들을 기르자는 겁니다. 물론 경쟁적 관점에서 어느 나라를 누르고 1등을 한다는 그런 취지는 아니니 오해할 필요는 없구요.(웃음)

Q. 실제 일본의 시민력은 어느 수준인가요?

A. 언젠가 일본 고베를 방문했을 때, 고베청년학생센터라는 곳을 가봤습니다. 소장이 히다라는 분인데, 이 센터 연구원들 가운데 십여 명이 한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더군요. 한국의 음식이며 전통 문화, 도시와 예술은 물론 시민운동까지, 아주 세세하게 공부하고 있었어요. 아니 한국의 시민운동가들도 아직 자기 나라 시민운동에 대해 본격적인 책 한 권을 쓴 게 없는데, 이 사람들이 한국 시민운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걸 책으로 내놓았더라구요. 그러니 일본을 어떻게 당합니까? 못 당하지요. 이게 바로 일본의 시민력입니다.

“교육이 서야 시민이 서고, 시민이 서야 도시가 우뚝 서”

Q. 시장님은 2014년에 ‘교육도시 서울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에는 조희연 교육감과 함께 ‘글로벌 교육혁신 도시 서울’을 발표했습니다. 조만간 평생학습 종합계획도 발표할 계획이구요. 재임 중에 이렇게 여러 번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발표하는 건 다소 이례적인데요?

A. 거듭 말씀 드리지만, 교육이 서야 시민이 서고, 시민이 서야 도시가 우뚝 섭니다. ‘교육도시 서울 기본 계획’의 핵심은 시민 누구나 생애 전체에 걸쳐 수준 높은 교육의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겁니다. 첫째는, 시민 누구나 쉽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시 곳곳을 학교로 만들자는 거구요. 그리고 아동과 청소년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이 세대가 안전하고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자, 마지막으로 평생학습을 활성화해 제가 앞서 강조한 ‘시민력’을 획기적으로 키우자는 게 목표입니다. 평생교육과 관련해서는 올해 초 서울시평생교육원이 독립법인으로 출범해 이미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구요. 올해부터는 서울시민의 평생학습 종합센터가 될 ‘모두의 학교’, 그리고 개방형 서울자유시민대학 설립도 본격화됩니다. 독일 사례에서 봤던 민주시민교육도 올해부터는 본 궤도에 오르구요. 바야흐로 ‘글로벌 평생학습 도시 서울’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지요.

박원순 시장

Q. 제가 진흥원 원장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경상북도 칠곡의 평생학습대학을 주목해 살펴보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칠곡 평생학습대학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학점은행제 평생학습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올해부터 준비가 본격화될 개방형 서울자유시민대학에 학점은행제를 도입하는 것 역시 칠곡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지요?

A. 맞습니다. ‘칠곡평생학습대학’은 제가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해 연구, 검토한 소중한 사례입니다. 취미·교양 교실이 아닌 학점은행제 정규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평생학습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는 곳입니다. 지방 대학은 학생 모집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고, 자치단체는 평생학습 시설과 강사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자치단체는 지역 주민을 학생으로 모집하고, 그 지역의 대학은 시설과 교수 등 인프라를 제공하는데, 기왕 할 거면 학점까지 주는 정규 대학을 운영하자고 합의한 것입니다. 대단한 것이지요. 지역 주민교육의 중요한 제도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그 방대한 서울 시정을 꼼꼼히 챙기면서 어떻게 이런 내용까지 죄다 기억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박 시장에게는 별명이 많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울트라 슈퍼 워커 홀릭’과 ‘두 개의 뇌와 두 개의 심장, 두 개의 폐를 가진 슈퍼맨’이라는 긴 별명도 눈에 띈다. ‘디테일 박’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 놀라운 신체적, 정신적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물었다. 즉각 답변이 터져나왔다.

“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습니다.(웃음) 무엇보다 열정이 중요하지요. 열정은 건강을 담보하니까요. 자기가 정말 좋아서 일을 하면, 잠이 올 수가 없습니다. 궁금한 게 계속 생기고, 호기심이 발동하고, 의욕이 솟구쳐 오릅니다. 그런데 잠이 어떻게 오며, 무슨 딴 생각이 나겠습니까? 호기심과 의욕이 집중력을 만들어 주고, 거기에 기대서 일을 하다 보면 성과가 쏟아지지요. 재미가 나고 성취감이 생기니까 지칠 틈이 없는 겁니다.”

“배움? 평생 이길 수 없지만, 그래도 싸울 만한, 싸우고 싶은 전투”

Q. 이 인터뷰가 실릴 코너가 웹진 <다들>의 ‘배움’이라는 코너입니다. 시장님은 누굴 만나든지, 묻고 되묻고 토론하고 메모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오래전에 시장님이 시민운동할 때 해외 출장을 함께 갔다 온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저녁 무렵 숙소에 돌아오면 일행들하고 어울리지도 않은 채 방에 혼자 앉아서 노트북 켜놓고 메모한 것 옮기고 자료 정리하고 얌체처럼(웃음) 자기 일만 챙기는 걸 보고 놀랐다구요. 언제나, 누구로부터도 배워야 한다는 굳센 의지를 과시하고 계신데(웃음), 그런 시장님에게 ‘배움’은 무엇인가요?

A. 제가 2011년인가 펴낸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가치를 정의, 상상, 함께, 겸허, 놓음이라는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눈 뒤 다시 이 가치들에 이름을 하나씩 붙였습니다. 예컨대, 정의는 ‘희망의 시작’, 상상은 ‘창조의 시작’, 함께는 ‘풍요의 시작’, 겸허는 ‘만족의 시작’, 놓음은 ‘채움의 시작’, 이런 식으로요. 그러고는 각 범주마다 다시 5개의 작은 가치를 나열했는데, 가령, 상상의 경우, 꿈꾸기와 창의, 호기심, 모험심, 열정, 뭐 이렇습니다. 그런데 겸허라는 큰 범주의 가장 우선적인 하위 가치로 배움을 내세우고는 이렇게 풀었습니다. “평생 이길 수 없지만 그래도 싸울 만한, 싸우고 싶은 전투”라구요. 배움이라는 놈하고는 평생을 싸워도 이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놈하고 싸울 가치가 충분한, 그런 전투라는 뜻인데, 어떻습니까? 멋지지요? 저 역시 지금도 이기진 못하지만 멋진 전투를 하는 자세와 생각으로 늘 공부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구요.

Q. 이번 인터뷰를 위해 시장님이 쓴 책들을 살펴봤는데, 저서가 엄청 많던데요, 모두 몇 권이나 됩니까?

A. 늘 헤아리고 있는 건 아니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그러면서 배석한 김계환 연설 비서관에게 “한 40권 되나요?”라고 묻자 “그보다는 더 많습니다”는 대답이 나온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오백여 권을 썼다는데, 저는 아직 시작이지요. 시장하는 바람에 완전 망했어요, 시장을 안 했으면 매년 서너 권을 계속 써냈을 겁니다. 하하. 그런데 책 쓰는 걸 계속하면요, 할수록 속도가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자료가 계속 축적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자료가 쌓이는데도 제 인생에서 했던 많은 활동, 예컨대 참여연대 때의 활동조차 아직 정리를 다 못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활동 당시, 부패 방지나 시민 참여라든지, 참여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몇 권을 썼지만 활동 전체에 대해서는 정리를 거의 못 했거든요. 아름다운 재단 때 활동은 아직 시작도 못했구요. 나눔에 관한 책 한 두 권 썼을 뿐인데, 그래도 한 여남은 권은 써야 정리가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료철들이 꽂혀 있는 책장을 가리키며) 여기 시장실에 있는 이 수많은 자료들이 사실 누가 정리해 준 게 아닙니다. 죄다 제가 직접 정리하고 체계화한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제목과 내용의 어느 자료가 어디에 꽂혀 있는지 꿰뚫고 있는 거지요. 가령 저기 꽂혀 있는 <아시아 패션 수도>라는 두 권의 파일은 서울을 아시아 패션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면서 모아놓은 자료들입니다.

Q. 거대한 병풍 같은 책장 말고도 시장실 곳곳에 무언지도 모를 자료더미가 저렇게 쌓여 있네요. 저게 다 무슨 자료며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A. 이 자료들, 사실 끝도 없이 쏟아져서 쌓이고 있는데···. (구석에 놓인 큰 박스를 가리키며) 계속 주간지, 월간지가 배달되어 와서 이렇게 쌓이지요. 비서실에 “내가 보기 전에는 절대 버리지 마라”고 단단히 일러놓았으니 자꾸 저렇게 쌓이는 거죠. 꼭 읽고 싶은 욕심은 앞서고 시간은 없고. 도저히 이 잡지나 자료를 이길 재간이 없는 겁니다. 계속 오니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모으고 있지요. 그러니 자료철이나 파일이 하루에도 몇 개씩 늘어나게 됩니다. 새로운 주제가 생기고 거기에 호기심이 당기니까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요.

Q. 올 3월, 서울시가 전액 출연하는 독립법인으로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서울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 활동을 지켜보고 있는데, 진흥원에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A.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로마 시대 때 바바리아 지역이 세계 문명의 선두가 될 수 있었던 건 교육과 학습, 배움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미래의 희망은 배우는 시민, 학습하는 사회에서 나온다는 게 제 확신입니다. 게다가 서울에는 다른 시·도와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한 평생학습 자원이 있지 않습니까? 민간과 공공 영역에 엄청 많은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있구요. 초·중·고가 1400여개, 대학이 40여개, 100개가 넘는 각종 도서관, 430여 곳에 이르는 주민자치센터, 그것뿐인가요? 민간 쪽에도 다양한 시설들이 있습니다. 다른 시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학습 인프라이지요. 진흥원도 생겼으니 이런 것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제가 최근 라는 영어 원서를 읽었어요. 우리말로 옮기면 고상함? 품위?, 뭐 그쯤 될 것 같은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내가 이 책을 번역한 뒤 대한민국 수준에 맞는 를 한 권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종의 뭐랄까, 품격 있는 교양인, 혹은 문명인, 지성인을 일컫는 것일 터인데요. 이 ‘gentility’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이 굉장히 멀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gentility’가 오늘 우리 사회 정치의 수준과 경제의 미래, 문화적 역량, 이런 걸 죄다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서울 시민은 정말 어느 시대, 어느 도시 사람에 못지않은, 그런 문명인, 교양인, 자유인, 지성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꿈을 어떻게 이룰까요. 평생교육진흥원이 제 꿈을 좀 이루어 주세요. 위대한 서울은 위대한 시민이 만들고, 위대한 시민은 평생학습이 만드는 거니까요. 하하하.

(왼쪽부터)김혜영 정책·홍보팀장, 김영철 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정책·홍보팀 황미연 과장, 전아림 주임

김혜영 정책·홍보팀장, 김영철 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정책·홍보팀 황미연 과장, 전아림 주임(왼쪽부터)

정리_김영철 원장, 전아림 주임

출처_서울특별시 평생교육진흥원 평생교육 전문웹진 Vol3.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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