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지 10년, 백남준을 추억하다

시민기자 김수정

발행일 2016.01.08. 13:29

수정일 2016.01.08. 17:31

조회 1,236

백남준 작품세계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샤프하고 날렵하게 생긴 청년의 사진을 보고 백남준과 그 뒤를 잇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회라고 생각했다. 백남준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멜빵바지에 뚱뚱한 모습에 괴상하기 짝이 없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올해는 백남준 작가의 10주기가 되는 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그의 샤프했던 청년의 모습과 더불어 그의 작품들의 토대가 되었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청년 백남준 사진으로 제작한 전시회 포스터

청년 백남준 사진으로 제작한 전시회 포스터

관람에 앞서 전시장 로비에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감상법이 소개되어 있다. 백남준 작가 자신이 전제한 세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셀프 없이 너 스스로 해라 Do it your…, 둘째, 예술을 고상하게 만드는 좌대를 치워 버리자, 셋째, 나의 비디오아트를 보기 위해서는 의자가 필요하다.

세종미술관 1관으로 들어서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TV를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설치미술작품 ‘피버 옵티크(Phiber Optik)’가 서 있다. 작품의 제목은 유명한 해커의 아이디로 ‘예술은 사기다’라는 백남준의 유명한 말과 연결되어 있다. 그 뒤로는 한쪽 벽에 빼곡히 백남준 작가의 연보가 적혀있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사상가였고 대학에서는 음악이론을 전공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백남준의 설치미술작품 `피버옵티크`

백남준의 설치미술작품 `피버옵티크`

조금 안쪽으로 들어서면 3개의 위성시리즈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는 각각 유럽과 아메리카,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연결이라는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동원하여 동시에 방송된 위성아트이다. 하얀 방, 여러 사진과 영상, 드로잉 등이 한 사람을 기리며 나열되어 있다. ‘보이스 복스’라는 작품으로 무명시절부터 세계적인 유명 예술가의 시절을 함께 한 예술적 동지였던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최소한 30분 이상은 보라는 그의 말에 응하듯 비디오아트 작품마다 앞에 의자를 두어 천천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이스복스

보이스복스

안무가 머스 커닝엄과 함께한 작품으로 춤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고자 했던 영상 ‘머스 바이 머스 바이 백’, 지구촌 전체를 망라하는 음악의 축제를 나타낸 ‘글로벌 그루브’ 등은 예술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찰이 느껴진다. 천장에 닿을 듯 커다란 비디오 설치 작품은 월금과 첼로를 형상화한 ‘호랑이는 살아있다’이다. 위성시리즈의 4번째 작품으로 2000년 1월 1일 DMZ에서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한 영상들을 담고 있다. 서구 한복판에 떨어져 서양예술세계에서 동양으로 명성을 얻은 자신을 호랑이로 지칭한 것으로 뇌졸중 이후에도 자신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글로벌그루브(좌), 호랑이가 살아있다(우)

글로벌그루브(좌), 호랑이가 살아있다(우)

지하에 있는 세종미술관 2관으로 내려가면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의자를 보게 된다. 1963년 뒤셀도르프 예술학교에서 벌어진 플럭서스 그룹전 전시장 입구에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재연한 것이다. 관객들이 전시장 입구에 쌓인 의자 더미에서 자신이 사용할 의자를 하나씩 빼내어 원하는 자리에 앉아 영상작품을 관람하게 한 ‘엔트런스 음악’이라는 퍼포먼스로 관객이 의자를 빼는 과정에 발생하는 소음도 하나의 음악이란 것을 말하고자 하였다.

설치작품 `엔트런스 음악`

설치작품 `엔트런스 음악`

1963년 백남준의 첫 번째 개인전의 전시 포스터에 적힌 16개의 테제는 그의 미학에 대한 기본테제라 할 수 있다. 전시장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16테제’에서는 성인을 위한 유치원, 70%로 만족하는 법, 20세기의 기억, 소리 나는 오브제 등 전시장의 한쪽 공간에는 16개의 테제를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백남준 최초의 위성아트로 요셉 보이스, 더글러스 데이비스 등과 협업한 ‘6위성 생중계’,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준 존 케이지에 대한 영상 ‘케이지에게 보내는 헌정’ 등의 작품을 차례차례 보다 보면 수많은 종이가 걸려있는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에서 사용된 TV 모니터 숫자에서 유래한 ‘1003‘. “방송이라는 것은 물고기의 알과 같은 것이다. 물고기의 알은 수백만 개씩 대량 방사되지만, 그 가운데 대부분이 낭비되고 수정되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

다다익선을 형상화한 `1003`

다다익선을 형상화한 `1003`

마지막으로 백남준을 만날 수 있는 섹션은 사진작가 김용호의 사진을 통해서이다. 백남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작품, 그의 모습, 그의 작업실 등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2005년 어시스턴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백남준이 뉴욕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작업실까지 매일 오가던 소호거리를 촬영한 영상 앞에는 지금까지 놓여있던 의자가 아닌 휠체어가 놓여있다. 정비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사람들에 가려진 시야, 도시의 잡음 등 백남준이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백남준의 작품은 한 번만 보고 이해하기엔 쉽지 않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입장권으로 1회까지 재입장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작품 옆의 설명을 꼼꼼하게 읽어보아도 사실 난해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작품들 속에는 한결같이 음악이란 무엇이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그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남준의 예술과 사상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전시 ‘백남준 그루브 흥’ 전은 10주기가 되는 2016년 1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가능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입장마감 오후 7시)이며, 관람료는 성인은 9,000원, 청소년(만 18세까지)은 4,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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