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소굴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최경

발행일 2015.12.31. 13:46

수정일 2015.12.31. 14:14

조회 1,587

그림자ⓒ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6)

내게는 오랜 습관이 하나 있다.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아이템들을 메모지에 적어두는 것이다. 해마다 수첩이 바뀌어도, 그 메모들을 늘 수첩 첫 장에 붙여놓곤 한다. 책을 읽다가, 뉴스를 보다가 혹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다가 뭔가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아이템 리스트에 하나둘씩 써놓곤 했다. 어느 날, 기사를 훑어보다 눈에 들어온 기사 하나, 그것은 ‘미혼부가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지만, 아빠는 나 몰라라 가버리고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이야기는 많았어도, 그 반대로 아빠 혼자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우는 미혼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낯설지만 당시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미혼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어김없이 나의 아이템 후보리스트에 올라있었다.

아홉 살 준이를 알게 된 것은 메모에 있던 미혼부 아이템을 꺼내들고 프로그램 제작을 하면서였다. 제보의 내용은 단칸방에서 아빠 혼자 키우는 어린 사내아이가 있는데, 늘 혼자서 지낸다는 것이었고, 제작진은 곧바로 확인에 나섰다. 저녁 무렵 서울의 어느 주택가 반지하 방에 도착했을 때, 진짜로 사내아이 혼자 단칸방을 지키고 있었다. 바퀴벌레가 사방을 기어 다니는 지저분한 방안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TV를 켜놓고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밥은 제대로 먹었는지 힘들지 않은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당연히 힘든게 한 개 있죠. 배고파서 울었던 적 있어요.”

아이는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역시나 굶고 있었다. 이렇다 할 살림살이가 거의 없는 방안 한쪽엔 작고 낡은 냉장고 하나가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제작진이 냉장고 안에 먹을 것이 없냐며 물어보니, 준이는 질겁하며 말했다.

“문 열면 진짜 많아요. 열면 큰일 나요.”
“뭐가 있는데? 한번 열어볼래?”
“진짜 많은데,,,”

망설이던 준이가 열어 보인 냉장고 안은 그야말로 바퀴벌레 소굴이었다. 뭔지 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 썩은 채 검은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불쑥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귀에 뭐가 들어간 줄 알아요? 막 귀가 아팠어요. 딸그닥 딸그닥 했는데 벌레가 들어간지 몰랐어요. 아빠가 물 넣어주고, 바퀴벌레 약 이렇게 뿌려서 이젠 안 아파요.”

아홉 살인데도 표현하는 것이 서툰 준이는 귓속에 바퀴벌레가 들어가 몹시 아팠는데 아빠가 약을 뿌려준 적이 있다고 했다. 대체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고, 아이를 왜 이런 환경에서 방치하고 있는 건지, 키울 의지는 있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일하러 갔다는 아빠는 그날 밤늦도록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다시 준이 집에 찾아갔을 때 비로소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10대였던 엄마는 준이를 낳고 두해를 키우다 집을 나갔고, 그 뒤부터 아빠 혼자 아이를 키웠다고 했다. 몇 년 전, 아이 혼자 집에 있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모든 살림살이를 잃고 난 뒤부터 아빠는 아이를 혼자 두는 게 불안해서 직장을 다닐 수 없었고, 막노동으로 겨우겨우 한 달을 버텨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준이 부자에게 복지혜택은 없었다. 아빠가 노동능력이 있기 때문에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돼 지원은 되지 않았고, 아이를 복지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해고 싶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갈수 없었다. 주위에선 아이를 그만 포기하고 편해지라고들 했지만 아빠는 7년 동안 노숙을 하면서까지 준이를 끌어안고 어떡해서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단다.

“입양 보내서 저 혼자 편하게 살면 뭐하겠어요. 애가 지금 당장 배고프더라도 정에 굶주린 건 아니니까 차라리 둘이 배고픈 게 낫다고 생각해요.”

아빠 말대로 부자 사이는 끈끈한 정이 있었다. 아이가 표현력이 떨어지고, 학습능력이 저하돼 있는 것 같긴 해도 정서적으로는 안정돼 보였다. 그렇더라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준이를 방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아빠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준이를 병원에 데려가 보기로 했다. 영양 상태는 괜찮은지, 발달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아이가 귀에 벌레가 들어간 적이 있다고 했으니 혹시나 싶어 추가로 귀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 귓속을 의학용 카메라로 들여다보니, 무언가 크고 시커먼 것이 보였다. 정말로 바퀴벌레가 죽은 채 고막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검사를 하던 의사도, 설마 했던 제작진도 깜짝 놀랐다.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건 준이 아빠였다. 다행히 귓속에 몇 달 동안 달라붙어 있던 바퀴벌레를 제거할 수 있었지만, 아빠는 넘치는 사랑과 의지만으로도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준이를 힘들게 한 것 같다며 울먹였다.

이후 준이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아빠가 일자리를 찾는 동안만 머문다는 조건으로 쉼터로 갔다. 거기까지가 제작진이 할 수 있는 노력이었다. 방송 이후, 몇 달도 안돼 준이와 아빠는 다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여전히 아빠는 막노동을 다녔고, 아이는 혼자 단칸방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그래도 주위의 도움으로 살림은 예전보다 늘었고, 아이가 끼니를 굶주리는 횟수는 적어졌다고 했다. 몇 해 동안은 아이의 근황을 전해들었지만 그 뒤로는 소식을 알지 못한다.

벌써 스무 살이 됐을 준이와 아빠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정적인 일자리는 찾았는지, 아이가 사춘기를 무사히 보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준이 아빠와 같은 미혼부들이 자식을 키우기가 녹록치 않은 환경이다. 2016년 새해엔 이런 안타까운 아이들의 이야기가, 엄마 아빠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뉴스에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미혼부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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