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밝게 뜨고, 말은 어눌하게

김별아(소설가)

Visit940 Date2016.01.08 16:50

ⓒ시민작가 남효진

식견은 무겁게(識欲沈)
기운은 날카롭게(氣欲說)
힘은 진중하게(力欲定)
담력은 결단성 있게(膽欲決)
눈은 밝게(眼欲明)
말은 어눌하게(口欲訥)
– 황순요, 《자감록(自監錄)》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06

새해가 밝았다.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오늘이지만 날짜를 적어 넣는 앞머리가 새로운 만큼 마음은 얼마간 다를 수밖에 없다. 기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믿음 하에 기대하지 말아야 실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별간장이지만, 어떻게든 스스로 변해보려 애쓰는 눈물겨운 시도까지 반대할 생각은 없다. 아니, 권장하고 격려한다. 끝끝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바위를 굴리고 또 굴리는 시시포스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인간의 상징이 아니런가?!

그런데 변하고 싶다, 변화시키겠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변하고 싶은지,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 더 긴요하다. 잘못 변하면 더 나쁘게 변한다. 나쁜 세상에 나쁘게 적응하다보면 차라리 예전보다 못해지는 경우가 숱하다.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아니라 꼰대가 되고, 어리보기가 세상 물정을 알았나 싶더니 속물이 되어버린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 술을 줄이고 담배를 끊고 운동과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는, 그런 뻔한 것들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을까? 바로 이럴 때 앞서 시간을 살아냈던 옛사람들의 지혜가 소중하다.

황순요는 명나라 말기의 문인으로 혼란의 시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냈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해 열심히 학문에 힘쓴 그였지만 난세에는 홀로 온전할 길이 없었다. 청나라에 항거하는 민중봉기에 지도자로 추대되었다가 성이 함락되자 친동생과 함께 암자에 들어가 목을 매어 자살했으니, 그 비극적인 생의 후반기가 절개와 지조의 한평생을 증명한다.

난세의 문사 황순요는 스스로를 이렇게 살피고 경계했다. 사물을 분별하는 식견은 가볍지 않고 무겁게, 살아 움직이는 기운은 둔하지 않고 날카롭게, 능력과 역량을 다룰 때에는 균형을 갖추어 진중하게, 배짱 있게 용감한 기운을 발휘할 때는 어물거리지 말고 결단성 있게… 여기까지는 너무 훌륭한 말씀이라 평범한 우리는 그저 고개 밖에 주억거리지 못할지라도, 마지막 두 덕목 정도는 결단코 사흘에 한 번씩 마음먹어봄직하다.

최소한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눈만은 밝게 뜨고 있어야겠다. 꼬락서니가 아무리 보기 싫어도 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 외면하지 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하고 살아내는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때로는 밝은 눈을 빛내며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해악과 거짓을 찔끔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보았다고 알았다고 섣부르게 화문(禍門)을 열지 말고 어눌하게 말하는 것이다. 언제나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이 어리석음과 분쟁의 원인일지니, 한번만 더 생각하고 말하기를, 꼭 필요한 말만 하기를, 말하기보다 듣기에 힘을 쏟기를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또 잊어버릴 게 분명하니 사흘에 한 번씩 다짐하기로 한다. 비록 작심삼일일지라도 3일에 한 번씩 마음을 먹으면 어쨌거나 일신우일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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