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을 위해 카메라 든 주민들

시민기자 박분

Visit1,054 Date2015.12.21 15:10

신월6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발간한 마을 풍경 사진첩

신월6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발간한 마을 풍경 사진첩

화롯가에 둘러앉으면 좋은 계절에 화롯불만큼이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마을이 있다. ‘화롯불 속 옛이야기’를 출간한 양천구 신월6동이다. 마을풍경을 담은 이 사진집을 낸 주체는 마을직능단체로 주민자치활동을 펴는 양천구 신월6동 주민자치위원회다.

양천구 신월6동 주민자치위원들은 도시개발로 곧 사라질 마을을 사진에 담아 마을 정취를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사진집 발간에 뜻을 모았다. 주민자치특화사업으로 발간한 이 사진집에는 신월6동의 유래와 함께 마을 전경, 이웃 사람들의 모습, 골목길, 신곡재래시장 풍경, 낡은 간판 등 동네 구석구석이 담겨 있다. 100여 장의 사진이 담긴 ‘화롯불 속 옛이야기’는 마을을 사랑한 주민들이 참여했고 사진 전문가가 아닌 마을 주민들이 담아낸 고향 기록물 사진집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신월6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

신월6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

지난 11월 7일 신월6동 주민센터에서는 ‘화롯불 속 옛 이야기’사진집 2차 출간과 함께 사진 전시회도 열렸다. 사진집 첫 출간은 사실 이보다 앞선 작년 7월에 이뤄졌다.  당시 비용 부담 때문에 60권만 출간했고, 금세 동이 나 버린 터에 사람들의 아쉬움이 컸다. 해가 바뀌면서 주민들은 사진집을 추가해 재출간하기로 뜻을 모았다. 봄이면 동네 뒷산인 장수산에 만발하는 진달래와 개구쟁이들의 눈썰매장이 되는 언덕 등 1차 때 빠트린 사진들도 더 보강했다.

신정로 지역으로 정랑고갯길 너머 흰 건물은 금옥여고다(1985년) ⓒ양천구청

고갯길 너머 흰 건물은 금옥여고다(1985년)

신월동은 서울시에 편입되기 전인 1960년대 이전에는 김포군에 속한 김포평야의 끝자락 구릉지에 자리 잡아 제법 큰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마을이 신선하며 반달 같이 생겼다 하여 ‘신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70년대 초에 서울시 개발이 되면서 각지의 철거민들이 이곳으로도 많이 이주를 해왔고, 남부순환도로와 경인고속도로가 나면서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 신정 뉴타운 지구로 2003년에 지정 되면서 현재 사업 진행 중에 있다.

신월6동 토박이 주민인 주민자치 위원장 이춘흥(63)씨는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철거민들이 이주해 형성한 마을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아요.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았지요. 그런 지역적 특성이 있었기에 사진집을 낼 수 있었죠.”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겨울, 신월6동의 마을 풍경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겨울, 신월6동의 마을 풍경

도심 변두리가 그렇듯 신월6동은 산비탈에 자리 잡은 흔히 말하는 달동네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고달픈 삶이었지만 순응하고 나름 행복을 찾아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며 이씨는 철거민들이 마을에 이주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일을 끝낸 해 질녘이면 연탄 하나 달랑 새끼줄에 매달고 한 손에는 국수다발을 든 채 집으로 들어가는 이웃들이 허다했어요. 그래도 단칸방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죠.” 애면글면 어렵게 살아도 집집이 돌며 고사떡이나 이사떡 등을 서로 나누고 눈 내리면 모두 나와 약속한 듯 함께 골목길 눈을 치웠던 인심은 어느 곳보다도 푸근해 서울깍쟁이가 뭔지도 모른 채 서울사람으로 살아왔단다.

서로 의지하며 아이들 키워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보낸 고향과 다름없다는 이곳 신월6동을 고스란히 담은 ‘화롯불 속 옛이야기’엔 골목길을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며 시장 좌판에서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의 얼굴, 빨래가 널린 담벼락 등 정감 어린 동네 풍경이 가득하다. 여기에 ‘도깨비마트’ ‘우정전파사’ ‘쌍방울메리야스’ 등 옛 정취 담긴 간판이며 오래된 일본식 목조건물 등 눈길을 붙드는 사진도 많다. 한 지붕에 출입문이 두 개인 ‘단지 집’의 아픈 내력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신트리지역으로 정랑고개에서 양천구청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목(1972년) ⓒ양천구청

정랑고개에서 양천구청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초가집 (1972년)

또한 사진집에는 신월6동 뿐만 아니라 양천구 전역의 옛 모습과 함께 현재의 변화된 생활상도 담았다. 초가집이 있는 정랑고개 부근(1972), 달구지 타고 학교 가는 강서초등학교 아이들(1980), 시골 주막집과도 같은 신곡시장의 막걸리 가게(1979), 양화교 신축 공사 사진(1963), 보트를 저으며 아파트에서 빠져 나오는 목동 아파트 물난리 장면 등이 그것이다.

신월 6동 골목길에 들어서니 예전의 활기는 사라지고 정적이 흐른다

신월 6동 골목길에 들어서니 예전의 활기는 사라지고 정적이 흐른다

기자는 신월6동 주민센터를 나와 사진 속 몇 곳을 찾아 나섰다. 골목길에 들어서니 단지집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주단지는 약 1천여 가구로 조성됐으며 처음 30평으로 계획했으나 철거민이 폭증하자 1필지에 집을 짓되 반씩 나누어 갖게 함으로서 ㄷ자 형태의 2개의 집으로 나눠지게 됐다. 한 지붕 아래 한 마당을 쓰는 두 집 살림의 형태가 바로 ‘단지 집’이다. 집이 좁았던 만큼 식구가 많은 세대는 좀 더 넓게 쓸 궁리를 했던 것 같다. 지붕에 커다란 물동이를 올려놓거나 다락방을 곁들인 단지 집들도 보인다. 골목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두부장수 방울소리로 한때는 활기가 넘쳤을 골목길엔 정적이 흐른다.

이곳이 철거지역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철거사무실 간판

이곳이 철거지역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철거사무실 간판

현재 ‘단지집에 거주하는 주민 절반 이상이 집을 비운 상태라니 골목길의 바람은 더욱 차게만 느껴진다.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철거사무실도 생겨난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개발이 지연되고 있음인지 사무실 내부는 캄캄한 채 텅 비어 있다. 하늘 높다랗게 걸린 간판이 이곳이 철거지역이라는 것을 을씨년스레 알리고 있을 뿐이다.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과 간판 위로 난데없이 ‘쌔액’하고 거친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계속 날고 있다.

신곡재래시장에서 마을 사진첩을 보는 주민들

신곡재래시장에서 마을 사진첩을 보는 주민들

사진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을의 재래시장도 들렀다. 영화 ‘7번방의 선물’ 촬영지가 되기도 했던 신곡재래시장이다. 해가 기울어 찾아간 겨울 저녁의 신곡시장은 의외로 행인들로 붐볐는데 상인들의 말로는 맞벌이를 하는 주부가 많아 퇴근길에 장을 봐 귀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0여 년 동안 한 자리에서 반찬을 만들어 생계유지를 했다는 김인자(55)씨 부부와 이웃 떡집 주인 정유순(54)씨는 사진집을 들춰 보며 감회 어린 표정들이다. 언젠가 신곡시장이 사라지더라도 젊음을 다 바쳐 일한 곳이라 아마 꿈속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이라며 애틋한 마음을 비쳤다.

현재 뉴타운 재개발지구로 지정돼 있는 신월6동은 머잖아(2016년 개발 예정)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 지금의 마을 모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주민자치위원회는 기억 속에 묻힐 동네 모습을 남기고자 작년 3월부터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사진집 발간 사업을 추진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마을을 돌며 직접 사진을 찍는가 하면 오랜 세월 살아온 주민을 찾아가 사료(史料)를 발굴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은 그 해 7월, 한 권의 멋진 사진집이 돼 주민들에게 뿌듯한 보람과 기쁨을 안겼다. 사진집 발간으로 신월6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작년 11월 양천문화회관에서 열린 ‘2014 자치회관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8개 동 주민자치위원회가 경합을 벌인 결과였다. 사진집을 만드는 동안 이웃 간 정도 다시금 확인 했다. 골목길과 시장 주변 등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는 동안 친절히 응대하는 선량한 이웃들을 만나면서 더욱 보람을 느꼈다고 주민자치위원들은 전했다.

재개발로 내년이면 사진 속으로 사라지게 될 주택 모습

재개발로 내년이면 사진 속으로 사라지게 될 주택 모습

신월6동은 전철도 닿지 않는 지역이라 더러 불편을 겪고 살아왔으련만 고단한 삶터를 잊지 않으려 한 컷 사진으로 남긴 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정든 마을이 사라져가는 걸 차마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길이 보존할 방법을 찾아 사진집이란 기록물로 남기기가 말처럼 쉬운 일 또한 아니었을 터다. 머잖아 이곳이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상전벽해가 된 이후에 마을의 자랑으로 남게 될 이 사진집은 향토문화 사료 발굴을 위한 자료로도 활용되어질 전망이다. ‘화롯불 속 옛이야기’는 신월6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누구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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