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에 나온 최고급 한옥, '백인제 가옥' 개방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5.11.18. 15:25

수정일 2015.11.20. 22:42

조회 23,213

백인제 가옥

올 여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영화 〈암살〉. 대궐 같은 강인국의 저택이 영화관 스크린에 모습을 비췄을 때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습니다. 컴퓨터그래픽(CG)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으리으리해서 많은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었죠.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그곳! 바로 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이 실제 촬영지라고 합니다. 이곳이 박물관으로 조성돼 18일부터 시민에게 전면 개방됩니다. 오늘 ‘내손안에 서울’에선 '백인제 가옥'을 찾아가봤습니다.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 100년 역사 북촌 ‘백인제 가옥’ 일반시민에 개방
 - 서울역사박물관, 당시 생활상 복원 연출 '역사가옥박물관' 새단장… 18일부터 공개
 - 2009년 서울시가 매입… 150여 개 소품, 가구 및 백인제 박사 관련 전시품 30여 점
 - 1913년 한옥 12채 합친 부지에 전통방식+일본양식 접목 당시 최고급 가옥

북촌의 한옥 문화와 일제강점기 최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백인제 가옥’이 18일부터 시민에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4월부터 가옥을 건축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고, 당시 서울 상류층이 사용하던 생활 집기나 가구들을 전시해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조성했습니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가, 재력가들이 살았던 북촌 일대 대형한옥 중 오늘날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것은 '백인제 가옥'과 '윤보선 가옥' 두 채뿐인데요. '윤보선 가옥'은 현재 후손이 거주 중이라 일반 시민에게 개방이 불가해, 대형한옥이 일반 시민에게 상시 개방되는 것은 '백인제 가옥'이 처음입니다.

백인제 가옥 내부

백인제 가옥 내부

개장에 앞선 두 차례의 시범 개방시엔, 가옥 건물 자체에 대한 탐방 위주의 관람이었다면, 전면 개방 후엔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가옥 관람을 통해 그 시대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백인제 가옥'은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약 744평)에 이르는 대지 위에 전통방식과 일본양식을 접목해 지은 근대 한옥입니다.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 아담한 별당채로 구성됐습니다. 가회동 일대의 한옥 12채를 합쳐 널따란 대지에 압록강 흑송을 재료로 지은 당시 최고급 가옥이었습니다.

안채 마당

안채 마당

안채 대청

안채 대청

백인제 가옥, 이 재미 모르고 가지마오~

① 이 방주인은 누구일까?

가옥 내부의 각 방은 의걸이장, 이층장 등 전통 목가구와 병풍 등 소품 150여 점으로 꾸며졌습니다. 아버지가 쓰는 사랑방, 어머니가 쓰는 안방, 할머니가 쓰는 방, 아들 내외가 쓰는 건넌방 등 방 주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된 전시를 관람하며 누구의 방이었을지 맞혀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② 서양, 중국문물과 전통이 한 방에···

각 방에는 수입 중국가구, 축음기 등 당시 유행했던 서양 문물과 전통 목가구, 병풍, 방장 등 조선시대 문물이 함께 어우러져, 이색적인 한옥 인테리어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당시 상류층의 생활이 생생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사랑채 외부

사랑채 외부

사랑채 내부

사랑채 내부

③ 한옥인 듯 한옥 아닌?

안채와 사랑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전통한옥과 달리 백인제 가옥에는 이 둘을 연결하는 복도가 있습니다. 이집 바깥주인과 안주인의 사이가 매우 가까웠나 봅니다. 또 전통한옥에선 볼 수 없는 2층 공간과 본채 전면에 설치된 유리 창호는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④ 일제강점기의 흔적

내부를 둘러보다보면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모두 전통적인 우물마루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랑채의 툇마루와 복도, 사랑대청은 일본식 장마루 형태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가옥의 첫 주인인 한상룡이 일본 고위 인사들을 위한 연회를 염두에 두고 이 건물을 지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건물에선 역대 조선총독부 총독들을 비롯해 당시 권력가들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도 연회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고위 인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경쓴 공간이라고 하니, 마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네요.

대문간채

대문간채

백인제 가옥의 주인들

대궐같은 백인제 가옥의 실제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첫 번째 주인이자 이 가옥을 지은 한상룡(韓相龍, 1880년~1947년)은 일제강점기 시절 은행가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완순군 이재완과 인연을 맺고 일본의 한국 강점 이후 조선 재계의 1인자가 된 그는 가회동 일대의 민가를 구입해 1906년부터 대저택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1913년에 완공된 이 가옥은 역대 조선 총독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까지 방문한 바 있습니다.

두 번째 주인인 최선익(崔善益, 1905년~미상)은 1924년부터 조선일보사의 주주이자 기자였던 민족 언론인이었습니다. 조선중앙일보 부사장직에서 사임한 후 한상룡으로부터 가옥을 매입해 1935년 1월부터 1944년 8월까지 거주했습니다.

세 번째 주인은 백병원 창립자로 잘 알려진 백인제(白麟濟, 1898년~미상)입니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신장 적출 수술에 성공하는 등 조선 제일의 외과의사라는 명성을 얻은 그는 1941년 백병원의 모태인 백인제 외과의원을 개업하고, 1944년 가회동 저택을 매입했습니다. 현재 ‘백인제 가옥’이라는 명칭을 따온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백인제의 부인인 최경진(崔炅珍, 1908년~2011년)은 사실상 가장 오랜 기간 백인제 가옥을 지킨 마지막 주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가옥의 소유기간은 1968년부터 1988년까지였지만, 백인제가 매입한 1944년부터 아들 백낙훤이 소유권을 가졌던 2009년까지 60년이 넘는 기간동안 백인제 가옥이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별당채

별당채

백인제 가옥 관람하려면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휴관일은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입니다.

예약이 필요없는 자유관람과 사전 예약이 필요한 가이드투어 방식으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가이드투어는 50분 정도 소요되며, 하루 네 차례 진행됩니다. 투어 예약은 서울시 공공예약시스템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문의: 02-724-0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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