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을 보면 신은 과연 어떤 기분이실까?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10.23. 13:10

수정일 2015.11.26. 13:29

조회 641

하늘ⓒ뉴시스

제나라 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왕이 물었다.
“어떤 것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가?”
화가가 대답했다.
“개나 말이 그리기 가장 어렵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그리기 쉬운가?”
화가가 대답했다.
“귀신이 가장 그리기 쉽습니다. 개와 말은 모두가 아침저녁으로 보는 짐승이기 때문에 꼭 그대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귀신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그려도 되니 아주 쉽습니다.”
--한비자 제32편 외저설(좌상)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6

일교차가 유난해진 것도 모르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잠들었다 일어나니 목이 부어 따갑고 아팠다. 마침 일요일이라 집 앞에 셋씩이나 되는 약국들이 모두 문을 닫아 할 수 없이 시내로 나갔다. 그러다 낯선 풍경과 마주쳤다. 나로서는 이 시간에 그 곳에 갈 일이라곤 거의 없었기에 처음 목도한 일인데, 심상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니 특별한 이벤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발표된 수치로 범죄율이 전국에서 최하위권이고 공개된 성범죄자가 한 명도 없는, 평화로운 이 작은 마을을 느닷없는 폴리스 라인이 갈라놓고 있다. 경찰차가 여러 대 출동해 있고 무전기를 든 사복형사도 몇 명 나와 있다. 느닷없는 소동에 어리떨떨했다가 마침내 상황을 파악하길, 인근의 어떤 회당에서 예배가 끝난 뒤 빠져나오는 신도들 앞에서 그들에게 가족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종교를 이단으로 지목한 이들이 연합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관심이 없었기에 느끼지도 못했지만, 나는 어느 신흥 종교의 이른바 ‘성지(聖地)’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빼앗긴 사람들과 빼앗은 사람들, 빼앗아가려는 사람들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일방통행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서고 있으니 분위기가 험악했다. 행여나 충돌이 벌어질까 졸지에 휴일 근무를 서게 된 경찰들도 바싹 긴장해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구경꾼이 된 채로 문득 떠오른 것이 한비자의 견마난 귀매이(犬馬難 鬼魅易) 고사였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부모에게서 자라나 종교적 감수성을 거의 갖지 못한 나는 분명히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을 뿐 보이지 않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귀신 따위는 믿지 않으니 두려워해본 일도 없다. 공식적으로는 일체의 자연이 신이고 신은 곧 일체의 자연이라는 범신론(汎神論)에 찬동하지만 그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말대로 ‘우아한 무신론’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보이는 것을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그것에 더 근접하게, 생생히 그리기를 목표 삼았다고 하여 보이지 않는 것에 몰두하는 이들을 몰이해로 폄하할 생각은 없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믿는 것을 통해 고양되어 비천한 인간의 틀을 벗어난다. 다만 무신론자인 내가 종교를 가진 이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만큼, 아니 최소한 존중하는 만큼도, 각기 다른 교리를 가진 종교를 믿는 이들이 이교(異敎)에 대해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간의 성스러운 신념이 가장 추악하고 위험하게 인간을 해치는 모습을 보면, 신은 과연 어떤 기분이실까? 평화가 깨진 일요일 아침, 그것이 궁금하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