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나이를 뛰어넘는 ‘치명적인 부끄러움’

김별아(소설가)

Visit707 Date2015.10.16 15:20

공원ⓒjh94645

인간이 가장 위험할 때는
얼굴을 붉히기에 너무 늙어버렸을 때보다,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을 때다.
–사드(Marquis de Sade)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5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파헤친, 폭력과 공포와 성적 도착으로 뒤엉킨 작품들을 쏟아낸 사드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리고 사후 이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학사에서 ‘가장 위험한 작가’로 손꼽힌다. 사드의 작품들은 1960년대까지 프랑스 내에서 공식적 출판이 금지되었으며, 그의 소설 <소돔:120일>은 2012년 한국에서 과도한 음란성과 반(反)인륜성을 이유로 판매금지 조치 당하기하였다(개인적으로도, 심약하거나 ‘곱게’ 자랐거나 초자아가 발달한 분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살다보니 그냥 모르고 사는 것이 나은 경우도 왕왕 있다).

일평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살았고, ‘성적(性的) 대상에게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異常) 성욕’으로 해석되는 ‘사디즘’의 어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주기까지 한, 희대의 문제아 사드가 말하는 ‘위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치부를 날것으로 가감 없이 드러냈던 작가로서는 지극히 아이러니하게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상태이다.

‘부끄러움’에 대해 여러 날 곱씹고 있다. 어린 날의 나는 부끄러워도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살았다. 얼굴을 붉히고 수줍어하는 것이 나약한 패배자의 징후라고 멋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강하게 보이고 싶었기에 위악을 부리며 염치없이 태연하게 굴기도 했다. 하지만 맨얼굴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치장한 얼굴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천연스레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즈음에 이르러, 부끄러움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새삼스레 느낀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에 익숙해지고, 세상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뻔뻔해진다. 그리고 뻔뻔함에마저 익숙해지면, 더 이상 얼굴을 붉히지 않게(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부끄러움은 여린 삶의 증거, 젊음의 표식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사드의 말대로 진짜 위험하고 치명적인 부끄러움은 시간과 나이를 뛰어넘는다. 자신의 악덕과 악행, 실수와 오판 앞에서 뻔뻔함을 넘어 당당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경악한다. 어쩌면 저리도 부끄러움을 모를까?! 정말 모를까?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것일까? 차라리 알면서도 모른 체 한다면 언젠가 그 자신에게 결과로 돌아갈 자기기만을 동정하기라도 할 테다. 하지만 정말로 모르는 것 같은, 스스로마저 감쪽같이 속이는 후안무치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있다. 무신론자의 입에서도 저절로 <루카복음>의 일절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주여,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에서는 부끄러운 일을 한 이들 대신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다. 조금은 억울하고 무력할지라도, 누군가는 보속(補贖)하듯 부끄러워해야 한다. 세상을 위험에서 구하는 슈퍼히어로는 될 수 없을지언정, 그래야만 나 자신이라도 위험에서 건질 수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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