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정원을 공개한 정릉의 특이한 마을?

시민기자 김영옥

발행일 2015.10.12. 17:21

수정일 2015.10.13. 10:40

조회 4,692

지난 9~10일, 성북구 정릉교수단지에서 열린 정원 페스티벌

지난 9~10일, 성북구 정릉교수단지에서 열린 정원 페스티벌

“어머, 너무 예쁘다”, “어서 오세요~”, “어머 어쩜 ……”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오며 정원을 바라본 사람들의 입에선 예외 없이 탄성이 새어 나왔다. 흉흉한 일들이 적잖이 들려오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정원을 개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성스레 가꾼 정원을 이웃들과 외부 사람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주민들은 이틀간 자신의 집 대문을 활짝 열었다.

정원이 들려주는 다양한 소리에 주민들은 행복~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양일간 성북구 정릉교수단지에서는 정원축제가 열렸다.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 라는 테마로 열린 이날 정원축제는 정릉교수단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 중 11집이 자신의 집 정원을 공개했다.

마을에서 가장 꽃이 많은 `도도화` 정원

마을에서 가장 꽃이 많은 `도도화` 정원

‘선이 머무르는 집, 도도화, 하모니가 있는 집, 금낭화 뜨락, 매화향기, 목화향기, 다복한 뜰, 쌈지정원, 뜰사랑, 행복한 뜰, 백세며느리댁’ 등 집 주인과 정원의 특색에 맞게 붙여진 정원이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정원 이름은 예쁜 문패로 만들어져 대문 옆에 앙증맞은 화분과 함께 걸렸고, 축제 참가자들은 교수단지 골목길을 걷다가 이 예쁜 문패가 걸린 집들을 찾아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문패가 걸린 집들은 하나같이 대문이 활짝 열렸고, 이 집의 정원이 궁금한 사람들은 조용히 대문으로 들어가 정원을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정원을 공개하고 다과를 마실 수 있게도 한다

정원을 공개하고 다과를 마실 수 있게도 한다

마을에서 꽃의 종류가 가장 많기로 소문 난 도도화의 정원에서는 목련나무 아래서 흐드러지게 핀 가을꽃들을 바라보며 따뜻한 효소차를 마실 수 있었고, 산과 집과 꽃이 가득 핀 정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금낭화의 뜨락에선 꽃과 새소리가 먼저 방문자들을 맞았다. 이곳을 찾아 온 사람들이 가져 갈 수 있도록 꽃씨를 단아한 그릇에 담아 놓기도 했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꽃, 항아리가 어우러진 아담한 정원 쌈지정원은 눈을 즐겁게 해 주었고, 마치 갤러리에 온 듯 깔끔하게 정돈된 모던한 정원인 뜰사랑엔 석류와 감, 대추 등 유실수와 일본에서 공수해 왔다는 기다란 종 모빌이 인상적이었다.

100세까지 사셨다는 시아버지와의 추억을 전시한 `백세 며느리댁`

100세까지 사셨다는 시아버지와의 추억을 전시한 `백세 며느리댁`

밖에서 안의 정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나지막한 울타리와 대문 하단에 매달린 들꽃 나무화분에서는 남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집주인의 따뜻함이 묻어났다. 100세까지 사셨던 시아버지가 100세 기념으로 받았다는 귀한 명아주 지팡이 ‘청려장’과 시동생이 쓰던 40년 넘은 우리나라 초창기 스키 장비를 정원 옆에 함께 전시한 백세며느리댁 정원엔 가족들과의 추억도 고스란히 머물러 있었다. 넓은 잔디정원이 있는 하모니가 있는 집 정원에서는 잔디에 앉아 이웃과 담소하며 꽃비빔밥과 야채전도 먹을 수 있었고, 어린이 연극과 정원음악회도 열렸다.

정릉교수단지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아름다운 노력이 만든 꽃길과 정원축제

교수단지 바로 옆엔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정릉이 있다. 정릉교수단지는 조성될 당시 아름다운 정원을 소유한 단독주택들이 많았고 현재까지 정원이 남아 있는 곳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정릉 주변이 재개발 되면서 이곳 교수단지도 2000년경부터 재개발의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교수단지 옆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정릉 주변이 더 이상 개발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릉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제작해 유네스코에 제출하는가 하면 주민모임 ‘정사모(정릉을 사랑하는 모임, 현 정릉마실. 대표 김경숙)’을 만들었다.

정릉마실 대표 김경숙(도도화 정원)

정릉마실 대표 김경숙(도도화 정원)

교수단지 재개발을 반대하는 의미로 각자의 집 대문에 예쁜 화분들을 내걸고 폐목재를 잘라 주택 담장을 따라 미니 화단을 길게 만들기 시작했다. 꽃길을 만들면서 주민들은 자기 집 담장 밑 화단은 자신들이 물을 주고 보살피며 가꾸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시작된 골목 꽃길은 ‘정릉교수단지 꽃길’로 유명해졌고 ‘2014년 서울, 꽃으로 피다’ 경관조성사업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모니가 있는 집`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모니가 있는 집`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이 정성껏 가꾼 자신의 집 정원을 공개하는 축제를 기획했다. 작년 10월과 올해 5월 정릉교수단지에서는 정원축제가 열렸다. ‘정릉교수단지 정원축제 –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 라는 테마로 작년 가을엔 8집이, 올해 봄엔 9집이 이틀 동안 자신의 집 대문을 활짝 열고, 자신들이 알뜰살뜰 가꾼 예쁜 정원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축제기간 동안 정원에선 사진전이 열렸고, 지역 주민들이 그린 수채화가 전시되기도 했다. 손수 수놓은 다양한 들꽃 자수 작품을 자신의 정원에서 전시한 주민도 있었고 마을 주민들이 출연하는 소박한 음악회도 열렸다.

`2014 서울 꽃으로 피다`에 선정된 정릉 교수단지

`2014 서울 꽃으로 피다`에 선정된 정릉 교수단지

조선왕릉 정릉 주변과 교수단지의 무분별한 재개발을 막기 위해 주민들은 자신의 대문에 예쁜 화분을 내걸고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서 마을 꽃길을 가꾸며, ‘여기 정릉교수단지는 이런 곳이다’ 라며 자신들의 정원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재개발을 막기 위해 정릉교수단지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마을의 재개발을 막기 위해 정릉교수단지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인 마을사람들은 그동안 마을의 역사문화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도토리문화학교(대표 강희정)의 자문을 얻어 사료와 신문기사를 통한 마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 책으로 엮어냈다. 마을에 오래 산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정릉의 이야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정릉의 마지막 능참봉의 후손을 비롯해 교수단지가 조성될 당시부터 현재까지 거주중인 90세 마을 주민, 선대에 교수단지에 정착해 2대째 살고 있는 주민, 결혼 후 교수단지에 살고 있는 주민 등 이곳 정릉교수단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들려주는 마을의 이야기들은 마을을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이유가 됐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아름다운 마을 정릉교수단지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소박한 바람만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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