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은 좋은 한글을 잘 쓰지 못할까?

강원국

발행일 2015.10.12. 17:10

수정일 2015.11.26. 13:31

조회 1,766

세종대왕ⓒ뉴시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 합니다. 늘 '쓰는 게' 일인 편집실도 마찬가지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글을 좀 잘 써보고 싶다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특별한 칼럼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이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란 제목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의 글쓰기 비법을 쫓다보면 언젠간 나만의 글쓰기 필살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1)

2006년 10월 한글날 직전.
한글날 기념식 대통령 연설문을 준비하기 위해 광화문에 있는 한글학회를 찾았다.
입구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나라가 내리면 말이 내린다.”
주시경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전 세계에 40여개 문자가 있다.
그 가운데 반포한 날과 만든 사람이 있는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
1443년 12월, 세종대왕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글은 푸대접 받아 왔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85년 전인 1930년 당시, 우리 국민 2,000만 명 가운데 78%인 1,600만 명이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한글’이란 명칭도 1910년에 와서야 주시경 선생이 붙였다.

1990년까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쓰기를 했다.
글을 쓰는 오른손이 이미 쓴 글을 가리게 되고 손에 먹이 묻어 가로쓰기로 바꾸게 됐다.
1900년대 이전까지는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다.
종이가 귀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1896년 비로소 독립신문이 띄어쓰기를 시작했다.

한글은 글 쓰는 사람에게 축복이다.
한글은 현존하는 글자 중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다.
한글은 8,800자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중국은 400자, 일본은 300자가 고작이다.
개 짖은 소리를 들었을 때,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비해 한글이 가장 원음에 가까운 소리로 표기한다.
한글은 초성과 중성, 받침을 조합해 1만 1,172자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이론적으로 가능한 수치이고, 실제로 사용하는 글자 수는 2,500자다.
나머지는 그런 소리를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쓰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껆’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글자지만 이런 소리가 없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한글은 배우기도 쉽다.
“지혜로운 자는 아침을 마치기 전에, 어리석은 자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말이다.
외국인도 두세 시간만 집중해서 배우면 읽을 수 있다.

​한글은 미래 정보화 시대 최적의 문자다.
휴대전화에 문자를 입력하기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보다 월등히 쉽다.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영어보다도 40% 정도 빠른 속도로 입력이 가능하다고 한다.
타이핑도 일본어나 중국어에 비해 일곱 배 이상 빠르게 칠 수 있다.

그런 한글이다.
우리는 성능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표현하지 못할 게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많이 쓰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우리 국민의 집단주의 성향이다.
글쓰기는 주체적인 자아의 표현인데, 우리는 나로부터 생각을 시작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전체적으로 합의한 것으로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내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한다.

개인주의가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서양 사람들이 객관보다 주관, 대상보다 자신,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체험, 집단의식보다 개인의식을 강조하는데 비해 우리는 눈치를 심하게 본다.

그것이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글쓰기에서 만큼은 도움이 안 된다.
글은 자신을 믿고 자신 있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잘 쓴다.

세 번째는 반응의 부재다.
서양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감탄한다.
감탄이 생활화돼 있다.
음식, 풍경, 성취 등 모든 것에 필요 이상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그것을 ‘오버한다’고 한다.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한다.
글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글쓰기 실력은 반응에 반응한다.

많이 쓰자.
내 이야기를 기탄없이 하자.
남의 글에 반응해주자.

그것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한글을 잘 활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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