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그레한 얼굴을 드러낸 시청역 성당의 비밀

시민기자 박분

Visit5,390 Date2015.09.24 17:21

세종대로변 서울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철거되는 모습

세종대로변 서울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철거되는 모습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마당이 환해졌다. 앞을 가로막았던 큰 벽이 헐리면서 성당이 새롭게 태어났다. 큰 벽은 다름 아닌 서울 국세청 남대문 별관으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뿐만 아니라 덕수궁을 비롯해 이 일대 주변 건물들과의 부조화로 누를 끼쳐왔던 건물이다. 더군다나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로 일제가 지은 이 남대문별관 자리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귀비 엄(嚴)씨의 사당이었던 덕안궁 터였기에 오랫동안 철거 논의가 되어왔었다. 이 건물을 단지 허물었을 뿐인데도 ‘성당이 새롭게 태어났다’로 표현하는 이유는 이 치욕적인 건물이 사라진 것에 대한 통쾌감과 동시에 그동안 그늘에 가려진 채로 성당의 존재가치를 잊고 지낸 미안함의 반영이 아닐까?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인 성당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인 성당

성당일까? 교회일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사실 무얼하는 덴지 정확히 알고 있던 시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국적인 건물 외관도 그렇거니와 안으로 깊숙이 가려 있는 통에 접근마저 쉽지 않아 어렵게만 비쳐졌다. 잘 알 수 없어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이곳을 이제 앞을 가로막았던 벽이 트인 지금 설렌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시민들의 작은 결혼식장이 돼주기도 한다

시민들의 작은 결혼식장이 돼주기도 한다

성당으로 오르는 입구의 백화만발한 꽃밭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색 고운 꽃들이 한 눈에 보아도 정성껏 가꾼 꽃밭임이 느껴진다. 보랏빛 분홍빛의 과꽃과 백일홍 금잔화 등 시골 꽃밭에나 있을 법한 정겨운 꽃들이 풍성함을 더한다. 소담스런 꽃들로 인해 엄숙한 성당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것 같다. 때마침 결혼식을 마친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가 하객들에 둘러싸여 활짝 웃으며 뜰을 거닐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마당을 뛰어 다녔고 햇살 가득한 뜰 한 쪽에서는 성당을 구도 삼아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름다운 대한성공회 성당은 시민들에게  그림소재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대한성공회 성당은 시민들에게 그림소재가 되기도 한다

중세 유럽풍의 주황색 지붕이 이채를 띠는 서울주교좌성당은 1922년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의 설계로 아시아에선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양식으로 건축됐다. 덕수궁과의 조화를 생각해 수직 느낌의 고딕 양식 대신 아치형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랐다고 전해진다. 유럽적인 디자인에 한국의 전통 기와를 얹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한다. 창문도 격자무늬의 전통 창호 모양으로 꾸몄다.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양식이라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인정돼 1978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됐다.

성당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까지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대성당 주교관 사제관 대한성공회성가수녀원 등 둘러 볼 곳이 많다. 사제관 앞에는 마을 정자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아름드리 회화나무도 있어 더욱 정감을 주고 있다.

6월 민주항쟁 기념비

6월 민주항쟁 기념비

회화나무 아래에는 1987년 6월10일부터 전국적으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있어 아픈 역사를 품고 있음을 알려준다. 사제관 뒤편의 붉은 벽돌 건물은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이다. 이 건축물 또한 지난 9월13일 설립 90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곳이다.

사제관을 지나 성당 안쪽으로 들어서면 뜻밖에도 한옥 한 채가 나타난다. 한옥이라기보다 전각에 더 가까운 이곳은 대한제국 광무 9년에 세워진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 양이재다. 초기에는 함희당이라는 건물과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1906년~1910년 일제 강점기 직전까지 대한제국의 황족과 귀족 자제들의 교육을 전담하던 수학원(修學院)으로 쓰이다 1920년에 대한성공회에서 사들인 후 현재 서울 교구장 주교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경운궁 양이재 너머로 영국대사관이 보인다.

경운궁 양이재

경운궁 양이재

때때로 이곳에선 매우 특색 있는 예배에 시민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지난 9월 한 달 매주간 수요 저녁예배에는 오르간 음악이 있는 전통적 성찬례와 떼제형식의 성찬례, 치유 기도가 있는 성찬례 등 주간별 특색 있는 성찬례를 열어 성공회 예배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자리 마련도 했다. 사색의 계절인 9월과 10월 매주 수요일 오후 12시 20분에는 이 일대 직장인들을 위한 정오 음악회를 열어 문화 공간으로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울주교좌성당 안쪽에 있는 안내 표지판

서울주교좌성당 안쪽에 있는 안내 표지판

개방시간을 놓쳐 아쉽게도 성당 내부를 볼 수 없었지만 채색 돌을 붙여 제작한 비잔틴식 모자이크 제단화와 지하 성당인 세례자요한성당엔 3대 교구장인 조마 주교가 안장된 묘도 있다고 한다. 또한 매일 타종되는 부드러운 종소리와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이국의 풍취와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평일 정오·오후 6시에 18번, 감사성찬례 시작 때는 33번 타종을 한다고 한다.

서울시의 세종대로 일대 역사문화특화공간 조성사업으로 서울 국세청 남대문별관이 사라진 빈터에는 시민광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니 시민들의 기대치는 더욱 크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시민들이 언제나 편하게 다가가 쉴 수 있고 위안도 받을 수 있는 종교와 문화 행사의 명소로 사랑받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시청역에 내리면 영국대사관 옆 주황색 지붕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꼭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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