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가 돌발사태로 이르기까지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8.25. 13:55

수정일 2015.11.16. 07:52

조회 660

손ⓒ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11

방송 프로그램 촬영중에 출연자가 PD를 폭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KBS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나를 돌아봐> 촬영지에서 벌어진 일이다. 최민수와 PD가 촬영 환경이나 출연자의 태도 등을 놓고 언쟁을 벌이던 중에 감정이 고조되어 일이 터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민수가 곧바로 사과하면서 해당 PD와 화해가 이루어졌고, 제작진은 방송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네티즌은 그런 미봉책으론 안 된다며 최민수 하차를 요구했다.

최민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인 최무룡과 강효실이 이혼하고 외롭게 컸다. 나중에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 등으로 대스타가 되었지만 터프남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2008년엔 노인폭행 논란의 주인공이 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산 속에서 칩거했다. 나중에서야 최민수의 억울함이 밝혀졌다. 그는 노인을 폭행하지 않았는데 오해가 커져 사회적 매장까지 당했던 것이다. 겨우 진실이 알려지면서 명예를 되찾았고, 작년에 <오만과 편견>에서 문희만 부장검사 역할로 오랜만에 대중의 사랑을 회복한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폭행 논란에 휩싸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나를 돌아봐>에서 문제가 처음 터진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제작발표회에선 김수미의 막말에 조영남이 하차를 선언했었다.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자가 하차를 선언한 것도 초유의 사태였다. 따라서 크게 화제가 됐는데, 동료들의 간곡한 설득에 조영남이 하차를 번복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그러자 다음엔 김수미가 하차를 선언하며 재차 논란을 일으켰다. 제작발표회장에서 막말했던 모습을 다시 돌려보니, 자신이 평정심을 잃은 것 같다며 방송일을 그만 두고 정신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동료들은 간곡히 만류했고 김수미도 결국 하차선언을 번복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 최민수 사태가 터진 것이다. 출연자들이 돌아가면서 돌출행동을 하고 있다.

<나를 돌아봐>는 ‘욱벤져스’라며 조영남, 김수미, 최민수, 이경규, 박명수 등 평소에 ‘욱’하기로 유명한 연예인들을 한 자리에 몰아놓은 프로그램이다. 말로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욱’하는 연예인들의 극단적이고 돌출적인 언행을 재미 요소로 활용하는 설정이다.

프로그램의 구성 자체가 연예인들의 욱하는 모습을 조장하는 것이다. 제작진은 제작발표회장에서의 돌출행동들을 영상으로 다 찍어 예능으로 방영했다. 제작진이 출연자들로 인해 발생하는 논란을 즐긴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런 구조에서 출연자들은 더욱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게 되고, 그러다 그것이 선을 넘으면서 결국 폭행 사태까지 터진 것으로 보인다. 최민수 폭행 논란이 단지 최민수 한 개인의 인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요즘 막말, 돌직구, 감정적 대립 등을 재미 요소로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와도 관련이 있는 일이다. 과거에 방송은 출연자들의 모습과 정서를 최대한 아름답고 정제된 모습으로 포장했었다. 그러다 시청자는 그런 포장을 거부하게 됐고, 이젠 리얼리티란 이름으로 출연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대세가 됐다.

그런데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것만으론 재미가 없기 때문에, 출연자들이 캐릭터를 잡아서 감정을 극단적으로 과장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막말과 감정적 대립이 나타나면 극의 긴장이 고조되기 때문에 제작진이 그런 대립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돌발사태가 거듭 일어나게 된다. 최근 <나를 돌아봐>에서 잇따라 터진 논란은, 그러한 돌발사태가 이젠 시청자를 피로하게 만드는 방송공해 상황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지금처럼 자극적인 리얼리티 흐름이 이어지면 나중엔 출연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실제로 싸우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방송이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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