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작가 3인이 한옥 담장에 걸터앉은 사연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5.08.17. 15:23

수정일 2015.08.17. 16:38

조회 2,205

입추와 말복이 지나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냉기(冷氣)가 조금씩 느껴진다. 벌써 가을이 저기쯤 오고 있는 것 같다. 이맘때엔 가을을 마중하면서 좋아하는 시 한 편 골라보면 어떨까?

진관동 한옥마을 근처에 위치한 `셋이서 문학관`

진관동 한옥마을 근처에 위치한 `셋이서 문학관`

진관동 한옥마을이 지어지고 있는 메인 도로를 따라 북한산 ‘진관사(津寬寺)’로 가다보면 우리나라 작가(시인) 중 기인(奇人)이라고 불리는 ‘천상병, 중광(重光) 그리고 이외수 (천·중·이)’가 한옥 담장 위에 걸터앉아 있는 문학관이 하나 보인다. 이름하야 ‘셋이서 문학관’이다.

셋이서 문학관 앞뜰에서 아이들이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다

셋이서 문학관 앞뜰에서 아이들이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다

호기심에 전통한옥 형태의 문학관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조심스레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아담한 앞뜰에서는 아이들이 투호와 고리 등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뿜어 나오는 목재의 향을 맡으며 문학관의 뒤뜰까지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순수시인 천상병·걸레스님 중광·기행의 아이콘 이외수, 각 작가의 개성을 표현하는 조형물이 한 모퉁이씩을 차지하고 조용히 서 있다. 전통부엌과 능소화도 곱게 피어 한옥의 정취를 더 한다. 차분한 걸음으로 한 바퀴 뜰을 살펴보고는 뜨락에 올랐다. 문학관 자원봉사 해설사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문학관 1층으로 들어선다.

시원한 마룻바닥 위 방석에 앉아 책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시원한 마룻바닥 위 방석에 앉아 책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문학관 1층은 ‘북카페’와 사무실, 작업실, 물과 차를 마실 수 있는 휴게공간이 있다. 한옥의 운치를 즐기며 두툼한 방석을 깔고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는 ‘천·중·이’ 세 작가의 시·소설 등 작품들을 모아놓아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해설사의 설명은 물론 운이 좋으면 물레시인 정인관 관장(은평문인협회장)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혜도 누릴 수 있다. 1층의 왼쪽으로 들어가면 한지와 목판 위에 아름다운 붓글씨로 새로 태어난 ‘세 작가들의 詩(시)’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2층에 오르니 순수시인 천상병의 방을 만날 수 있었다

2층에 오르니 순수시인 천상병의 방을 만날 수 있었다

1층을 둘러보고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른다. 세 작가의 사진들이 추억의 스토리를 엮는 듯 계단실 벽면을 나란히 장식하고 있다. 드디어 2층, 바로 정면에 순수시인 ‘천상병의 방’이 나타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중략),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을 간결하게 함축한 詩(시)를 썼던 천상병(千祥炳), 그의 대표작품과 흑백사진, 전시된 유품에서는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서려있다. 우리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이라 불릴만했다.

기행과 파격의 아이콘, 이외수의 방

기행과 파격의 아이콘, 이외수의 방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니 먼저 ‘이외수의 방’이 나타난다. 번득이는 재치와 타고난 상상력, 아름다운 언어의 연금술을 펼치는 작가 이외수(李外秀), 그의 방을 둘러보니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기행과 파격의 아이콘이란 생각이 들었다. 관람 중이던 김용태(40세, 은평구) 부부는 “한옥마을 구경 왔다가 우연히 이곳에 들렀는데, 뜻밖의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쓰는 이의 고통이 읽은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그의 창작활동을 계속되리라.

중광스님 문학관을 둘러보는 김용태 부부

중광스님 문학관을 둘러보는 김용태 부부

이외수의 방을 지나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걸레스님 ‘중광의 방’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스스로 ‘미치광이 중’이라 자처하며 파격으로 일관하며 살아 온 ‘걸레스님’, 일찍이 통도사로 출가하여 승려의 길을 시작했으나 독특한 그의 기행 때문에 1979년 승직을 결국 박탈당한다.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하단 생략)” 언제나 파격적인 필치로 그 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하여 국내·외에서 큰 명성을 얻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작가가 되었다.

기자에게 세 작가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안내하는 정인관 관장(왼쪽)

기자에게 세 작가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안내하는 정인관 관장(왼쪽)

“관장님, 이 세분을 한 문학관으로 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기자가 물었다. “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문단의 대표적 ‘기인작가(奇人作家)’라는 공통점이 있지요”라면서 “보통의 경우에 문학관은 개별 작가별로 만드는데, 이렇게 3인을 함께 한 문학관은 드문 경우입니다” 정인관 관장이 들려주었다. 문학관에서는 조만간건물 뒤편의 언덕 위에 ‘조망대’를 지어 한옥마을 일대를 둘러보게 하고, 북한산 둘레길의 제9구간인 ‘마실길’과 연결하여 시민들의 관람편의를 높여갈 예정이라 한다.

이외수, 천상병, 중광이 함께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외수, 천상병, 중광이 함께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기자는 솔직히 문학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러나 ‘셋이서 문학관’을 둘러보며 그들의 작품과 살아온 방식을 보고나니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며 힐링(healing, 치유)이 된 것 같았다. 이제 여름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산의 진관사나 삼천사 또는 은평 한옥마을에 올 기회가 있다면 짬을 내어 문학관 방문을 권하고 싶다. 시 한 편 골라 가족들이 다함께 읽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눠보자. 아마도 이런게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문학관 뜰에 서 있는 세 작가의 조형물

문학관 뜰에 서 있는 세 작가의 조형물

■ '셋이서 문학관 관람' 안내

 ○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관람료 : 무료)

 ○ 휴관일 :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 다음 날), 1월 1일, 설날, 추석날

 ○ 주소/연락처 : 은평구 진관길 23(진관동) / 02-335-5800

 ○ 길 안내 : 지하철 연신내역/구파발역에서 701, 7211번 등 버스로 환승하여, 하나고·진관사·삼천사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도보로 약 300미터

#이외수 #셋이서문학관 #천상병 #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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