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내음 켜켜이 쌓여 있는 ‘책마을 해리’

서울마을이야기

발행일 2015.08.05. 17:22

수정일 2015.08.05. 17:25

조회 1,155

더 이상 아이들이 없는 교실을 책으로 꽉 채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더 이상 아이들이 없는 교실을 책으로 꽉 채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산책을 하다가 덩치가 큰 개를 산책시키고 있는 자매를 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저렇게 큰 개가 갑자기 아이들을 뿌리치고 가면 어쩌나 잠시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개의 박동하는 생명력이 분명히 목줄을 따라 아이에게도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함께 발맞추어 개와 산책하고 있을 아이의 마음도 읽혔다. 그렇게 인간을 품어주는 자연과 함께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된다면 어떤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될까. 그 풍경을 보며 속으로 아이는 역시 자연 속에서 자라야지 싶었다.

필자도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자연과 가까이 살았던 것 같다. 이름 모를 풀꽃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민들레씨앗을 친구 등 뒤에 문질러도 봤고, 풀꽃의 줄기를 꺾으며 나오는 노란 물을 신기하게 여긴 적도 있다. 아카시아 이파리를 따러 뒷산에도 올라갔다. 풀꽃들 속에서 꾸물대던 무당벌레와 진딧물이나, 땅거미, 개미를 잡아보기도 했다. 손이 뜯길 위험을 무릅쓰며 용감하게 잠자리와 사마귀 따위를 잡았다. 어쩌다 냇가로 놀러 가면 소금쟁이니, 물맴이니, 게아제비를 신나게 찾았다. 장마 때 비가 한참 내리고 그쳤을 때, 잔디에 고인 웅덩이에 그새 물방개가 와서 살고 있고나 놀랐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들은 이때 책을 본다. 꽃들을 만지고, 그 사이 흙장난을 하면서 뒹굴고 기어 다니며 살아 있는 것들을 볼 때 아이들은 더 알고 싶어 책을 본다. 아이들은 진딧물을 두고 경쟁하는 무당벌레와 개미의 관계를 책에서 읽고, 실제로 만났을 때 개미 편을 들어본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두려울 것 하나 없는 거미와 사마귀를 곤충들의 포식자라고 책에서 읽고 그들에게 도전한다. 책에서 멋있게 그려진 매미들을 보고 싶어 자기 키보다 더 큰 망을 들고 매미 소리를 따라 나무로 뛰어간다. 땅에 사는 생물들과 놀며 책을 읽다가 이제는 물의 생물들을 만난다. 그 생물들은 꼭 만나야 하는 존재들이 된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의 책을 써내려 간다.

책마을 해리. 바다 가까운 폐교 나성초등학교에 책마을과 박물관, 도서관이 들어선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참석자들

책마을 해리. 바다 가까운 폐교 나성초등학교에 책마을과 박물관, 도서관이 들어선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참석자들

관련해서 소개하고 싶은 마을이 있다. 고창에 있는 책마을 해리라는 곳이다. 규모 있는 출판업계에 종사하고 있던 이대건 촌장은 자신의 증조부가 설립한 나성초등학교가 폐교될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귀농한다. 밤늦게 적막히 앉아 있으면 쿵쿵 거리며 바닷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바다 가까운 이곳에서 책으로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는 공간을 만들었다. 더 이상 학생들이 찾지 않는 교실을 책과 출판 이야기로 가득 찬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꾸몄다.

편히 뒹굴며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공간

편히 뒹굴며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공간

개다리소반도 책상으로 탈바꿈했다

개다리소반도 책상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이곳에 오는 이는 모두가 출판자고, 작가고, 시인이 된다. 모두가 한 권의 책이고, 한 개의 도서관이 된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가 갯벌에서 뒹굴며 뛰어놀고 들어와 글을 써낸다. 학생들이 시문학관, 염전, 바람공원을 다녀와서 그림책을 그린다. 아이들은 주변 논밭으로 나가 흙을 밟고, 보리와 토마토를 심고, 새모이통을 달아주면서 시인이 된다.

마침 고창교육청에서 지원하고 책마을 해리가 주관하는 2015 책마을어린이시인학교가 초등학생 3학년에서 6학년까지를 대상으로 책마을 해리에서 8월 6~8일 진행될 예정이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숲을 탐사하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느끼고, 갯벌에서 뒹굴며 시를 쓴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 자연과 책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고 쓴다. 필자도 이번에 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 단체장 업무 연수를 따라 고창에 내려갔다가 그 아이들의 글들을 엮은 시집을 우연찮게 접했다. 아이들의 스스로 써낸 시를 본 적이 있는가? 정말 아이들이니까 이렇게 시를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글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러면서 왠지 마음이 촉촉해지고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 단체장 업무 연수로 내려간 사람들,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됐다

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 단체장 업무 연수로 내려간 사람들,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됐다

시골의 평화로운 풍경

시골의 평화로운 풍경

성인이 돼서 인간의 발걸음으로 서울에 살다 시골로 내려와서, 그 어린 날 간직한 감수성에 이끌려 풀꽃 사이를 볼 때, 고인 물을 볼 때, 그렇게 조막만한 그 안에 바글바글 박동하는 생명력들을 또 다시 보게 될 때, 한없는 경외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정말 보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조차 없는 세상들. 이 세상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갈 것들과 만나며 자신의 책을 써내려가야 한다. 책마을 해리는 그것을 접하게 해줄 장소가 된다.

책마을 해리 : 전화 070-4175-0914, 블로그 http://blog.naver.com/pbvillage

글_류민수(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
사진_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
출처 : 서울마을이야기 vol.30호(2015.7.29.)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