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배우’ 석호필이 아닌, ‘독립투사’ 석호필입니다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5.08.05. 14:21

수정일 2015.08.05. 16:53

조회 1,474

국립 현충원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태극기 조형물

국립 현충원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태극기 조형물

멀리서 국립서울현충원을 바라보면 대형 태극기 조형물이 보인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8월의 첫 주말, ‘저 태극기는 무슨 사연을 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기자를 현충원으로 향하게 했다. ‘충성분수대’가 물을 뿜는 정문을 지나 ‘겨레의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태극기 조형물에 도착한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애국지사 212분을 모신 곳, 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지사묘역’이다. 한 분 한 분 애국지사의 묘비를 살펴보다가 뜻밖에 제 96호 묘역에서 ‘외국인 애국지사’ 한 분을 발견했다.

애국지사 묘역으로 향하는 길

애국지사 묘역으로 향하는 길

자세히 들여다보자 묘비명에는 ‘애국지사 프랭크 W 스코필드의 묘’라고 적혀 있다. “내가 죽거든 韓國(한국) 땅에 묻어 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少年(소년) 少女(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주세요”라는 그의 유언도 묘비명 하단에 함께 새겨져 있었다. ‘단단하게, 무섭게, 남을 도우며 살겠다’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한국명 석호필(石虎弼)을 사용하며, 조선독립운동에 함께한 스코필드. 그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더불어 ‘서른 네 번 째’ 독립운동가라고 불리는 캐나다 출신 선교사이자 의사였다. 그는 1889년 영국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했고, 토론토대학 수의과를 졸업한다. 191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연세대) 교장(Avison,O.R.)의 초청으로 세브란스에서 세균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애국지사 플랭크 W 스코필드의 묘

애국지사 플랭크 W 스코필드의 묘

1919년 초 미국인 샤록스(A.M. Sharrocks)로부터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을 계기로 이승만, 안창호 등이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국내의 이갑성(李甲成,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연락하며 “조선에서도 독립을 위해 모종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등 3·1운동을 지피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현장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으며 실상을 꼼꼼히 기록한다. 또 외국인이란 특수신분을 활용하여 독립운동으로 구금된 학생을 구출한다. 음력 3월 1일(양력 4월 1일)이 되자 지방에서도 ‘제 2의 3·1운동’이 일어난다. 이에 일본군은 격분하여 ‘제암리 학살사건’을 일으킨다. 주민들을 교회 안에 몰아넣고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러 무고한 양민 26명을 살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제암리로 잠입하여  ‘총살·방화 현장’을 촬영하고, 미국·캐나다의 지인을 통해 해외 언론 보도에 기여한다. 그리하여 일제의 잔혹상이 마침내 전 세계로 폭로되었으며, 심지어 일본 언론까지도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질타의 기사를 싣기에 이른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출판한 스코필드 박사 자료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출판한 스코필드 박사 자료집

어느 날 스코필드는 수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이완용(李完用)과 조우한다. 이완용이 스코필드에게 “어떻게 하면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소?”라고 묻자, “먼저 이천만 국민에게 사죄부터 해야 될 수 있소”라고 대답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총독을 만나서는 일제의 만행과 고문을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서대문형무소, 대구형무소 등을 찾아다니며 노순경, 유관순, 어윤희 등 독립운동가를 위문하고, 수감 중인 이상재(李商在), 이갑성(李甲成), 오세창(吳世昌) 등 독립운동가들을 면회한다. 급기야 일본 총독부는 1920년 그를 강제 출국시킨다.

그는 추방당한 후에도 한국을 잊지 못하고 수시로 방문한다. 해방 후에는 자신이 보관해 온 3·1운동 관련 사진과 기록물을 모두 한국에 기증하였고, 우리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196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과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는다. 1969년부터는 한국에 영구 정착하여 서울의대에서 강의를 하며 여생을 보낸다. 그는 1970년 4월 12일, 81세로 생을 마감하고,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이 되었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애국지사 스코필드, 8월이 가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한번쯤 애국지사 묘역을 찾아 스코필드를 만나본다면 아주 특별한 광복 70주년으로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 국립서울현충원 관람안내

 – 지하철 4호선 동작/현충원역 4번 출구(동문 150m)
 – 지하철 9호선 동작/현충원역 8번 출구(정문 10m)
 – 버스 : 350, 360, 640, 752, 5524, 6411, 9408 등 다수

 – 참배 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 개방 시간 : 오전 6시 ~ 오후 6시
 – 전시관 관람 시간 : 오전 9시 ~ 오후 5시 반

 – 단체견학, 전시관, 영화관람은 사전 예약 원칙.
 – 주차 : 동문 현충선양광장, 현충문 옆 이용 가능
 – 문의 : 02-811-6342 (교육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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