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재생 ② 결과보단 과정에 주목을

서울사랑

Visit593 Date2015.07.30 15:00

꽃이 만발한 하이라인 파크를 거니는 시민들 ⓒDavid Berkowitz

꽃이 만발한 하이라인 파크를 거니는 시민들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는 경향은 이제 학자들만의 견해는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서울숲은 비단 성수동과 압구정동 일대 주민들만의 공원이 아니라 서울 시민 전체의 허파로 받아들여진다. 이렇듯 인구 1천만의 메가시티 서울은 거대한 ‘개발의 터전’에서 ‘공’이라는 미시적 관점으로 접근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의 뜻이 모여 탄생한 로테르담 루크싱 프로젝트

최근 2~3년 사이 ‘도시재생’이 화두로 급부상하면서 이러한 관점과 조망은 더욱 확산되어 왔다. 기존 전면철거와 재건축이라는 도시재정비 사업이 부동산경기 침체와 저성장 기조라는 경기 흐름과 맞물리고,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개발과 삶의 쟁투를 본 시민들의 관점의 변화와 부딪히면서 ‘부수고 짓는’ ‘재개발’이 아닌 ‘고치고 회복하는’ ‘재생’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루크싱(Luchtsingel) 프로젝트는 도시재생의 주체가 정부나 기업만이 아닌 시민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이다. 철길과 8차선 도로로 막혀 보행이 불가능한 데다 경제적 상황 악화로 점점 낙후되어가던 지역에 대해 로테르담시는 도시개발계획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날이 갈수록 낙후되어가는 지역의 주민들에겐 너무 긴 시간이었다.

이때 한 건축사무소가 로테르담 건축비엔날레에서 ‘내가 만드는 로테르담(I Make Rotterdam)’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프로젝트의 내용은 시민들이 직접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 육교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것인데, 펀딩에 참여한 시민들은 육교 상판의 나무에 이름이나 메시지를 기록할 수 있도록 해 펀딩 참여를 유도하는 식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모인 자금으로 육교가 건설되었고, 이렇게 시작된 시민 참여의 활성화는 지역재생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이를 지켜본 로테르담 시는 약 4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해 육교를 잇는 옥상정원 설비 등 인근 도시재생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시민들의 참여로 도시재생의 매개물을 만들고, 도시재생의 동력을 확보하고, 재생의 방향을 결정한 것이다.

루크싱 육교는 8차선 도로와 철로 위를 지나는 육교로 길이 350m, 너비 3.3m에 달한다 ⓒRaban Haaijk(좌), 웨스트웨이에서 열리는 커뮤니티 행사인 `Westway Community Day 2014` ⓒWestway Trust 페이스북(우)

루크싱 육교는 8차선 도로와 철로 위를 지나는 육교로 길이 350m, 너비 3.3m에 달한다(좌), 웨스트웨이에서 열리는 커뮤니티 행사인 `Westway Community Day 2014` (우)

시민이 계획하고 만든 웨스트웨이개발신탁

1960년대 후반 영국 런던에 건설된 A40 고가도로는 증가하는 히드로 공항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용도였다. 하지만, 인근 노스 켄싱턴 지역 주민들은 공사 기간 내내 소음과 분진으로 고통받고, 완공 후에는 하루에 수만 대의 자동차가 달리며 만들어내는 소음과 대기오염에 괴로워해야 했다. 주로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빈곤지역으로 가뜩이나 소외에 시달리던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집회와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시 정부와 주민들 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던 중 지역의 풀뿌리단체가 고가도로 아래 약 3만 평의 버려진 땅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워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공간과 접근성이 용이한 상가를 만들자는 결론을 내린다. 반면, 땅 소유주인 런던 시와 켄싱턴, 첼시 구는 주차장 건설계획을 수립했고, 갈등은 다시 반복된다.

이에 풀뿌리 단체들과 주민들은 <고속도로개발신탁 (Motorway Development Trust)>을 설립하고 건설계획을 포함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2년 넘게 지속된 줄다리기 끝에 주민, 풀뿌리단체, 구청이 함께 운영하는 <노스켄싱턴 지역편의시설신탁(North Kensington AmenityTrust)>이 설립된다. 이것이 지금 영국 <웨스트웨이개발신탁(WestwayDevelopment Trust)>의 시작이다.

현재, 웨스트웨이개발신탁은 전체 공간의 80%가량을 지역주민을 위한 시설로 개발하고, 15%는 상업공간으로 개발해 연평균 300만 파운드의 꾸준한 수익으로 운영경비의 90% 이상을 충당하는 영국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의 하나로 성장했다. 영국 웨스트웨이개발신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신뢰에 기반한 민관거버넌스’이다. 주민과 풀뿌리단체, 행정당국 간의 지속적인 협의 끝에 런던 시와 켄싱턴, 첼시 구는 고가도로 밑 유휴지를 주민들에게 100년간 무상임대하고, 약 10억 원의 개발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주민이 협력하고 계획을 수립해 운영주체를 마련하고 행정당국은 안정적 토대를 마련해준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서로를 증명해 보이고 신뢰하기 위한 10여 년의 시간이 있었다.

영국 웨스트웨이에 마련된 인공 암벽.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Westway Trust 홈페이지

영국 웨스트웨이에 마련된 인공 암벽.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해외 성공사례에서 찾는 서울역 고가의 미래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의 주역인 로버트와 조슈아의 첫 만남도 고가철거에 관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일종의 공청회(커뮤니티 위원회)였다. 둘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된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지금의 하이라인 파크를 만들었고, 아직도 시민들의 참여로 운영되는 공원의 세계적 상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미국 센트럴파크의 컨저번시도, 영국의 그리니치 레저도, 일본의 뱅크아트1929도, 모두 참여와 책임에 근거한 시민주도, 제3섹터와 행정기관의 협력으로 도시의 공공 공간이 운영되는 사례이다.

서울역 고가 보행로 전환 사업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비주거지역 1호 재생사업이다. ‘서울역’이라는 지리적, 역사적 상징성만큼이나 사업적 상징성 또한 크다. 첫발의 아쉬움이 컸던 만큼 지난 반 년간 민관협력을 위한 과정 또한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제 국제현상공모를 통한 설계 당선작이 발표되었고, 서울역 고가 운영전략 기본구상 연구가 한창이다. 실질적인 주민주도 도시재생사업을 위한 민관 협력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한다. 서울역 고가 보행로 전환사업의 성과가 향후 도시재생사업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해외의 성공사례를 통해 우리의 갈 길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선 사례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작동원리와 핵심적 동력 등을 간결하게 파악하고 우리 현실에 맞게 변용해볼 필요가 있다. 해외의 성공사례들은 하나같이 다음의 공통점이 있다.

고가를 이용한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인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풍경. 보행로이자 시민들의 안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Alex Correa(좌) ⓒDavid Berkowitz(우)

고가를 이용한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인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풍경. 보행로이자 시민들의 안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주체들이 교류하는 공론장의 활성화, 시민참여 방안의 다양화, 제 3섹터형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시민 주체의 출현, 신탁제도의 활용, 행정재산 운영 및 개발에 대한 민관협력 방안 등. 지금 서울에서 가장 다양한 논점과 의견이 교차하는 곳은 단연 서울역 고가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길 바란다. 이 과정 자체가 도시를 바꾸는 혁신의 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많은 시민이 만족하고,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결과론적 의견을 종종 만나게 된다. 청계천도 그랬고, 아현 고가도로도, 인사동 차 없는 거리도 그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론적 혁신’에 안주해도 되는 것일까? 이제 ‘과정의 혁신’을 통한 더 많은 이익과 성과,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이것이 보행친화도시, 전환도시 미래 서울의 출발선 아닐까. 설정된 목표가 아닌 매일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와 마주하는 서울역 고가의 일상 속에서 서울의 미래를 조심스레 그려본다.

출처 : 서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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