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청맹과니로 살지 않으려면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6.26. 14:10

수정일 2015.11.16. 05:46

조회 627

흑백사진ⓒjet96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어쩌면 진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삶은 우리에게 지능을 준 뒤 자신을 우리에게 맡겨 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이것이 우리가 그 삶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에요.(...) 가장 눈이 심하게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80

역사는 진정 돌고 돌아 반복되는가? 가뭄과 역병의 창궐, 이라는 사서(史書)에서나 읽던 시정기의 일절이 생각나는 즈음이다. 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초유의 사태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생눈이 멀어버리는 병이 번지고, 그렇게 눈먼 사람들은 전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지옥 같은 수용소에 격리된다. 애초에 원인을 모르니 치유법도 없다.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을 끔찍한 병균처럼 여기며 내치려고만 한다. 정치인들은 수용 조치 외에는 할일이 없다는 듯 무책임하게 냉소하고, 군인들은 수용자들을 합법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감금되어 방치된 눈먼 자들은 너무도 빨리 인간성을 잃고 짐승이 된다. 식욕과 성욕이라는 욕망, 살인과 강간이라는 범죄, 그리고 눈이 멀어서도 여전히 인간 집단이라는 표식인 듯 엄연한 권력에 대한 탐닉과 착취...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소설만큼의 생생함을 전달하기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그 보이지 않는 ‘백색 공포’를 설명하기에는 시각적 장치에 한계가 있고, 소설 전체에 가득한 삶과 죽음의 끔찍한 악취에 대한 후각적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설이 죽어가는 시대에 소설이 단말마처럼 세상을 예언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상황은 악몽 같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 극한에 다다른 사람들이 펼치는 살풍경을 통해 우리는 오늘을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뇌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감각의 70%를 시각에서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눈 뜬 삶’과 ‘눈먼 삶’에 대한 비유와 상징에 의미를 더한다. 우리가 보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입으로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우리의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니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고, 그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있을 것’이다. 멀쩡히 뜬눈으로 살았던 때에도 우리는 ‘반은 무관심으로, 반은 악의로’ 만들어져 있었으니,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살았던 그때에 우리는 이미 눈이 멀어있었던 것이다.

아무러한 지옥도 우리 손으로 그린 것이다. 언젠가 모든 사태가 진정된 후, 고통스럽더라도 눈을 부릅뜨고 이 잔혹하고 적나라한 그림을 낱낱이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영원히 청맹과니로 살지 않으려면.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