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거듭 잔인해질 4월이 서럽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4.10. 14:22

수정일 2015.11.16. 06:05

조회 497

4.16ⓒ뉴시스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 우리가 말을 해도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설사 들어준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 《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9

그곳의 이름은 소박하다. 편안할 안(安)에 뫼 산(山), 고려 초부터 순하고 아늑한 형세를 이름으로 인정받았던 그곳은, 이제 누구도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부를 수 없는 뜨거운 기억이 되었다. 작년 4월 16일에 우리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쉬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눈앞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실은 배가 검푸른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던 것은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최초의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왜, 그들을, 구하지, 않는...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더욱 놀랍고 끔찍한 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고 애도가 외면으로 전도되는 과정은 말이 말이 아니고 이해가 이해가 아닌 불통의 참경이었다. 어쩌면 의혹을 풀어달라는 이들에게 떼를 쓴다고 삿대질을 할까? 어떻게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지겹다고 진저리칠까? 우리가 이른바 원시인이라고 부르는 네안데르탈인조차 꽃가루와 조개보석들을 뿌려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식을 가졌다. 세월호 침몰과 그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문명과 이성의 펜으로 쓴 우리의 이름을 단번에 지워버렸다.

일반인 희생자들의 사연도 기막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찢은 건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이었다. 살아있었다면 올해 고3, 한창 입시 혹은 취업 준비로 애를 끓일 터이다. 모의고사 등급에 울고 웃고, 수시며 논술이며 정시...다양한 입시전형에 골머리도 썩을 테다. 하지만 그 모두가 살아있음에 겪는 수고스러움일 뿐, 이 봄에 그들은 더 이상 지상에 없다. 단원고로 가는 골목 어귀에도 벚꽃이 만개하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재잘재잘 학교 앞 편의점과 중국집 <길림성>에서 돌아서면 헛헛해지는 젊은 배를 채우고 있지만, 환상통처럼 그들이 떠난 자리가 아프다. 무언가 뭉텅 끊겨져나간 게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우리의 미래다.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해 삼십여 년을 더 살고도 어느 날 갑자기 투신자살한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일생을 걸고 야만과 비이성을 폭로하는데 전력했지만, 끝내 그 자신의 기억을 넘어서지 못했다. 상처란 그런 것이다. 슬픔이 유예된 채로는 거듭 덧나고 곪아 터질 수밖에 없다. 무고한 죽음 앞에서 순정하게 눈물을 흘릴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여전히 망연자실한 채 분노와 무력감과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찢겨진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는 진실과 그에 대한 공포를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해마다 거듭 잔인해질 4월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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