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풍경을 간직한 `서부 버스 터미널`
발행일 2015.03.16. 11:30
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35) 서울 도심 속, 시간이 멈춘 듯한 '서부 버스터미널'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이나 양주시 장흥면의 송추, 일영 유원지에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되면 이용하는 버스터미널이 있는데 바로 은평구 대조동 서부버스터미널이다. 이 버스터미널을 알게 된 건 재미있게도 서울에서가 아니라 파주시 적성면 버스터미널에서였다. 임진강변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귀가하기 위해 들른 적성면 버스터미널. 서울로 가는 버스 편이 있길 래 탔더니 바로 이곳 '서부버스 터미널'에 내려 주었다. 이 버스터미널 덕분에 멀게만 느껴졌던 임진강이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전철 3호선과 6호선이 지나는 은평구 불광역 주변은 각종 상점들과 지나는 차량, 전통 재래시장까지 가까이에 있어 늘 분주하다.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은 이렇게 북적거리는 도심 속에 숨어 있는 듯 존재하고 있다. '서부 버스 터미널'은 서울 시민들에게도 "그런 버스 터미널이 있었어?"라고 반문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버스 터미널이다. 유명하진 않아도 오래된 곳이라는 사실은 터미널 앞 풍경이 증명해 준다.
개미 상회, 터미널 탁구장, 만남 커피숍, 군인 백화점 등 정겨운 간판이 가득하다. 특히 군복 수선, 각종 명찰과 상패 등을 취급하는 군인 백화점 '중앙사'는 파주시에 많은 군부대의 군인들이 휴가 때 이 터미널을 이용했음을 짐작케 했다. '남부 버스 터미널'과 '동서울 버스 터미널' 등 서울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기는 하지만 '개미 상회', '중앙사'같은 가게들이 함께 있는 서부 버스 터미널은 왠지 특별한 느낌을 전해준다.
눈길을 끄는 건 서부 버스 터미널을 오가는 버스들은 마을버스처럼 생긴 미니버스들이라는 점이다. 버스 노선에 전철이 생기고, '마이카(My Car)'시대가 되면서 자연스레 노선이 줄어들고 버스 크기도 함께 줄어들었다고 한다. 버스는 작아졌지만, 저 멀리 의정부, 파주시의 적성면, 법원읍 등 먼 마을까지도 달려가고, 북한산 국립공원, 일영 유원지, 송추계곡도 간다.
매캐한 디젤 기름 냄새를 풍기는 버스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터미널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무소안으로 들어가니 서부버스 터미널의 역사와 함께 했을 법한 반백의 아저씨가 모니터를 보며 혼자 일하고 계셨다. 예상대로 아저씨는 이 버스 터미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서부 버스 터미널은 1969년에 금촌•문산 등 서북방면 노선들을 서울역 앞에서 서대문구 홍은동, 현 백련빌딩 자리로 이전시켰던 것을 1971년에 현재의 대조동 자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경기도 일산, 문산, 적성, 의정부 등 11개의 직행, 완행 시외버스 노선을 운영했고,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하루 1만여 명이 이용하는 규모가 큰 터미널이었단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일산신도시가 개발되고 일산선 개통으로 수도권 지하철이 일산, 문산까지 연결되자 이용객이 급감했다. 또한 서울 시내버스가 경기도 외곽지역까지 연장 운행을 하게 되면서 가격경쟁력에도 밀려 이용객이 더욱 감소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인터넷 지도에는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아닌 서부버스터미널로 표시되는 것 같다.
직원 아저씨에게 예전 터미널이 번성했을 때의 사진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쉽게도 그런 책자나 사진은 남아있는 게 전혀 없다고 하신다. 사무실 벽에 서 있던 오래된 철제 캐비넷에 기대를 걸었는데 아쉽다. 여행 삼아 가끔씩 오가는 곳이지만 이 터미널이 서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종종 찾아와 사진으로 잘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이 좋은 건, 촌스럽고 풋풋한 대합실 때문이기도 하다. 커피, 음료 자판기와 작은 여행사, 지명수배자들을 알리는 경찰서의 전단지가 붙어 있는 대합실로 들어서면 놀랍게도 길쭉한 나무 벤치가 반긴다. 바쁘게 표를 사고팔았을 매표소도 남아 있는데, 오래된 대합실 매표소 창구 구멍은 늘 그렇듯 참 자그마했다.
의자에 앉아 있노라 하니, 가끔씩 오고 가는 앳된 얼굴의 군인들과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왠지 쓸쓸하기도 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의 흑백 풍경이 다가오는 듯한 공간이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강원도 정선읍의 공용버스터미널, 전북 임실군 강진읍 시외버스터미널, 제주도의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온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지역마다 터미널의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퍽퍽하고 바쁜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에게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다른 나라 같으면 거리 곳곳에서 옛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사물을 자주 접하겠지만, 워낙 변화가 많은 사회 속에 살다보니 이제 도시 서울은 이런 과거의 흔적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풍경을 담고 있는 공간을 만나면 새삼스러운 감회와 함께 때로 삶의 화두를 얻곤 한다.
요즘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의 버스들은 파주, 고양, 의정부 등지에 전철이 가지 않는 길과 동네를 골라서 운행을 하고 있다. 노선이 줄어들어 한가한 시골버스 정류장 같기도 하고, 시대에 밀려 이제 더 이상 시외버스터미널이 아니라고 하지만 시외버스터미널만의 소박하고 한적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도심 속 보석 같은 곳이지 싶다.
○ 터미널 위치 : 지하철 3, 6호선 불광역 5번 출구에서 도보 5분
○ 터미널 이용 문의 : 02-355-5103
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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