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늑대로 방치된 10대들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1.27. 16:12

수정일 2015.11.17. 18:44

조회 474

청소년ⓒ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81

상상할 수도 없었던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10대 청소년 김 모군이 테러집단인 IS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 정확히 IS에 가입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김군이 지속적으로 IS에 관심을 가지며 IS 가입의사를 밝혔고 그 연장선상에서 터키까지 찾아갔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사건이 무서운 이유는 이것이 단지 한 개인의 일탈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2의 김군, 제3의 김군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우리의 10대들이 테러범이 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상상. 그 상상이 현실화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김군은 학교폭력과 왕따를 당했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사회적 차원에서의 심리적 보살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차원에서 방치돼왔던 셈이다. 심리적 상처를 입고 학교생활이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10대들이 김군처럼 방치돼있는 상황이다.

김군은 중학교 때부터 학교를 이탈했는데, 이렇게 학교를 이탈하는 초, 중, 고 미성년자가 연간 6만 명 정도에 달한다. 총 36만 명 정도의 청소년이 현재 학교 바깥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보듬어 안으려는 노력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하고 있을까?

한국사회는 주류 궤도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끌어올려주는 사회가 아니다. 탈락자들은 '낙오자', '루저'로 낙인찍히며 주류로부터 멸시를 당한다. 루저가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점점 줄어만 간다. 그에 따라 좌절과 절망, 분노가 커져간다. 김군의 사례는 그런 청소년들이 한국사회에서 '외로운 늑대(lone wolf)'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외로운 늑대는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되는 외톨이를 일컫는 말이다.

사실은 외로운 늑대의 테러 사건이 이미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졌었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10대의 사제인화물질 테러 사건이다. 이른바 '종북'이라고 불린 토크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것을 있을 수 없는 테러가 아닌 충만한 애국의기로 인해 벌어진 우발적 사고 정도로 치부하는 바람에 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었다. 이번에 한국 10대의 IS 가담 추정 사건이 벌어지자, 사제인화물질 테러 사건이 상기되면서 이 사건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10대가 지금 대단히 위험한 상태에 있으며, 그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꼭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됐거나 학교에서 이탈한 10대들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교육공동체로서의 학교가 붕괴됐기 때문에 우리의 10대 모두가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한국의 학교는 교육을 빙자한 입시경쟁만을 강요하는 살벌한 싸움판이 되어간다. 아이들은 오로지 승자만이 가치 있는 인간이고, 패자는 열등하며 무가치한 존재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은 황폐해져가고 자존감은 하락한다.

현실 사회에서 위안을 받지 못하는 10대들은 많은 경우 인터넷에 심취하는데, 이 대목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인터넷에선 몇몇 약자나 소수자들을 증오하고 공격하면서 위안을 얻으려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증오의 대상은 여성(페미니스트), 소수자, 호남, 외국계 등이다. 김군이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도 인터넷상에서의 증오 움직임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증오열기를 선도하는 사람들은 애국우파를 자처하면서 좌파에 대한 증오도 키우는데, 사제인화물질 테러를 자행한 10대는 이런 흐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열패감에 휩싸여있고, 외롭고, 좌절한 10대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전해져오는 강한 집단의 선전이나 증오의 선동은 달콤한 유혹이 된다. IS를 통해 자신이 강한 집단의 일원으로 재탄생한다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고, 증오와 공격을 통해 열패감을 씻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가 10대와 학교를 지금처럼 방치하는 한 또 어떤 극단적인 사태가 터질지 알 수 없다. 우린 정말 무서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청소년 #10대 #하재근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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