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할 수 없어 오늘도 불행으로 스스로를 들볶는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1.23. 15:26

수정일 2015.11.16. 06:09

조회 800

ⓒ김용대(2014빛공해사진UCC공모전수상작)

불행이란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왜 불행에 빠져 있는가?
불행이란 병을 고칠 수 없는데
무엇을 위해 불행해하는가?

--적천의 《보리비결(菩提翡潔)》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9

수험생 엄마 노릇을 한다는 핑계로 5년이 넘도록 연재했던 신문 칼럼을 중단했다. 아무리 거대담론이 아닌 일상다반사를 깜냥깜냥 쓴대도 지면이 지면인지라 시사에 촉수를 세우게 되고, 그러다보니 절로 분통에 울화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 전에 내가 화병으로 죽을 듯하여 졸필이나마 꺾고 말았지만 울울한 심정은 여전하기만 하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전쟁, 테러, 독재, 불황, 빈곤, 고령화, 실업, 입시지옥, 빈익빈 부익부, 차별, 편견...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 속에 끝내 젊은 여주인은 '갑질'을 하며 비행기를 돌리고, 어린이집 교사는 네 살배기 어린애를 후려쳐 날리고, 히키고모리 소년은 과격파 조직을 기웃거린다. 불행의 징후들이 창궐하면서 행복은 불 속에 던져진 종잇장처럼 오그라들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그 종이 위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읽지 못한다.

행복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한 세상에서 혼자만 행복하다면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행 속에 한데 엉켜 누가 더 불행한가를 경쟁할 수도 없다. 그때 적천(寂天: 695-730)의 짧고 간명한 진언은 뜻밖의 출구를 제시한다. 샨티데바 보살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적천은 불교 중관학파를 계승한 인도의 학승으로, 석가모니처럼 본래 서인도의 나라 사우라스뜨라의 왕자였다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세속의 기준으로 충분히 행복했으나 더 큰 행복을 찾아 작은 행복을 미련 없이 버린 것이다. 먹물 옷과 탁발을 위한 바가지 하나만 달랑 지닌 채로 적천은 행복과 불행에 대한 고언들을 쏟아낸다.

그의 말대로 불행이라는 병이 난치일지나 불치는 아니라면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치료에 힘써야 할 것이다. 불행의 요인이 바깥에 있다면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달걀로 바위라도 쳐야 할 것이고, 불행의 요인이 내 안에 있다면 기도든 수양이든 상담이든 갖은 방법으로 애써 보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불행이란 병이 영영 불치라면, 백약이 소용없다면, 더 이상 불행하다는 사실에 꺼둘려 불행해질 까닭이 사라져버린다. 논리는 간명하다. 놓으면, 놓인다.

하지만 여전히 놓을 수 없어, 놓여날 수 없어서 인간이다. 그저 보통의 존재인 우리는 뻔히 알면서도 행할 수 없어 오늘도 불행으로 스스로를 들볶는다. 그리고 불행은 너무도 쉽게 전염된다. 폐업해 닫힌 가게 문 만큼이나 웃음기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 세상을 우울하게 물들인다. 해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점점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로 실망하고 낙담할 뿐이다. 그럼에도 다시 적천의 말에 기대어 시린 무릎을 짚고 일어서 볼까.

해답이 있다면
낙담할 필요가 있겠는가?
해답이 없다면
낙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도 그를 흉내 내 본다. 불행할지라도 낙담하지 마라. 끝내 낙담하지 않으면, 어찌 불행하겠는가?!

#김별아 #빛나는말 #가만한생각 #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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