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감독 출신 할아버지의 생태 사랑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5.01.14. 14:39

수정일 2015.01.14. 17:25

조회 1,013

서울에서 한강에 인접한 공원 중 가장 많은 겨울철새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강서습지생태공원이다. 올해도 강서습지생태공원에 어김없이 겨울철새들이 돌아왔다. 철새를 보러오는 탐방객들이 들끓는 요즘, 자리에 앉을 새 없이 바빠진 한 사람이 있으니 자연해설사 이영규(72)씨다.

강서생태습지공원 자연해설사 이영규 씨

강서생태습지공원 자연해설사 이영규 씨

한 손엔 필드스코프(=지상망원경), 또 다른 손엔 여러 개 쌍안경을 들고서 탐방객들을 몰고 다니는 칠순의 할아버지는 목소리도 쩌렁쩌렁해 마이크도 필요 없을 정도다.

"자, 함께 초를 한 번 재봅시다. 하나 둘 셋…"

물 속 깊이 들어간 철새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잠수를 하는지 탐방객들과 함께 시간을 재본다. 철새의 작은 행동 하나도 함께 체험하니 더욱 즐겁다. 탐조대 나무 벽엔 겨울철새를 잘 식별 할 수 있도록 철새들 사진이 죽 걸려있는데 모두 그가 찍은 사진이다.

전직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감독이었던 만큼,  공원사업소 3층 생태교육실을 도배하듯 장식한 동식물 사진에서도 그의 재능이 확인된다. 그 종류는 들풀, 곤충 그리고 동물 천연기념물인 칡부엉이에 이르기까지 습지공원에 서식하고 있는 모든 동식물을 총 망라한다.

위장텐트를 사용해 촬영한 천연기념물 칡부엉이 (촬영: 강서습지생태공원 / 2008년)

위장텐트를 사용해 촬영한 천연기념물 칡부엉이 (촬영: 강서습지생태공원, 2008년)

새 박사들도 찍기 어렵다는 천연기념물 칡부엉이를 오랜 관찰과 밤샘 잠복 끝에 찍어 내는가하면 재작년엔 맹꽁이의 산란 장면을 장맛비 속에서 촬영하는데 성공하여 공원 생태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니 이보다 확실한 재능기부가 어디 있겠는가?

▶맹꽁이의 짝짓기, 산란, 부화 영상 (촬영: 강서습지생태공원 , 2013년)

그는 아침이면 마을 뒷산인 개화산을 넘어 갈대 우거진 습지로 달려온다. 공원 한 바퀴 돌며 생물을 모니터링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아이들과 함께 필드스코프로 강변 겨울철새들을 관찰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다. 사실 이영규 씨는 이곳에서 '너구리 선생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많은 동물 중 왜 하필 '너구리'라는 닉네임을 택했을까?

"너구리는 하천의 청소부예요. 다른 동물들이 먹다 버린 것들도 다 먹는데, 만일 너구리가 살 수가 없는 곳이 된다면 정말 큰일이지요."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최후의 환경 보루인 너구리, 그 너구리가 다치게 되면 야단난다는 무언의 경각심을 삼아 지었다는 그의 이름에서 다시금 습지사랑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영규 자연해설사에게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을 들어보았다.

"저 새들 좀 보세요. 정말 순하고 착해요. 털 빛깔, 몸집, 모양 다 다른데도 서로 다투지 않고 잘 어울려 살잖아요? 제가 항상 그걸 배웁니다. 맑은 바람 쐴겸, 새 보러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망원경과 필드스코프를 챙겨들고 공원에 10년 가까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자연에게 인생 공부 수강료를 내지 못했다는 너구리 선생님, 어쩌면 10년이 흐른 뒤 다시 소감을 청해 듣는대도 같은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겨울 철새 두루미 영상 (촬영: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앞 한탄강, 2014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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