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24) 인력거꾼 아니죠, 인력거 청년입니다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4.11.26. 13:22

수정일 2015.01.13. 16:27

조회 3,771

정다운 한옥마을 북촌에서, 이순신 장군이 바라다 보이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늦가을 풍경이 좋은 창덕궁 가는 길에… 종종 만나는 이채로운 것이 있는데 바로 바퀴가 세 개 달린 삼륜 인력거(人力車)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힘으로 끌어서 움직이는 교통수단을 말한다. 인도, 방글라데시 등 서남 아시아에선 '릭샤'라고도 부른다.

도심 속 느림의 미학과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인력거

도심 속 느림의 미학과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인력거

다른 아시아 국가의 인력거는 가난한 이들의 생계수단이다 보니 인력거꾼(혹은 릭샤 왈라) 대부분이 빼빼 마른 몸매에 나이든 아저씨들이나 심지어 노인까지 있어 마음 편히 타기엔 좀 불편한데 비해, 이번에 서울에서 만난 인력거꾼은 파란 유니폼를 갖춰 입은 이삼십 대의 젊은 라이더들이다. 성인 3명까지 넉넉하게 탈 수 있는 공간과 비와 햇빛을 막아줄 지붕, 산뜻한 디자인을 갖췄다.

아쉽게도 일반 시민들에게 인력거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단지 빛바랜 사진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인력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인데 일본인들이 수송용으로 도입하면서 확산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23년 전국에 4,000여대가 보급되며 절정을 이뤘다. 하지만 해방 후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전차와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내게도 인력거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종로에서 인력거를 볼 때마다 어릴 적 읽었던 현진건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인력거꾼 주인공 김 첨지가 인상적으로 떠오르곤 한다.

1920년대에 절정을 이뤘던 서울의 인력거 ⓒ위키대백과사전

1920년대에 절정을 이뤘던 서울의 인력거

지난 주말 밀린 책도 읽고 늦가을 풍경도 감상하러 자전거를 타고 종로구 화개동 정독도서관에 갔다가 또 인력거와 마주쳤다. 다행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어서, 인력거를 끄는 라이더(rider, 자전거를 타는 사람)와 얘기를 나누다 도서관엘 가는 것도 깜박 잊고 자전거를 탄 김에 손님을 태운 인력거를 잠시 쫓아가보기도 했다. 누구나 앉아보고 싶은 마차 같은 트레일러에 손님을 1~3명까지 싣고 달리는 인력거는 놀랍게도 전기가 아닌 일반 자전거처럼 기어와 사람의 다리 힘으로 달렸다. 100% 수동이다.

도심 속 느림의 미학과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인력거

도심 속 느림의 미학과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인력거

인력거는 경복궁, 종묘, 덕수궁 등 궁궐이 있는 주변을 투어 하는데, 북촌 한옥마을과 재동, 계동 등에 있는 언덕길이 떠올라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십 대 후반의 인력거 라이더는 오히려 "전기 모터로 된 기어를 쓰면 달리는 재미가 없죠" 하며 밝고 싹싹하게 웃는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도 공감하는 대답이다. 뒷좌석보다는 앞에 있는 자전거에 타고 달리고 싶어져, 손님이지만 앞에 타고 달릴 수 있는 이벤트 좀 해달라고 제안을 했더니 싱긋 웃으며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면 직원들과 함께 한번 검토해 보겠단다.

작은 상점들이 많은 거리와 유서 깊은 도심 지역을 달리는 인력거는 타는 사람만큼 달리는 사람도 재미가 있고 시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보니 전기 모터가 없어도 별로 힘들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온 듯싶다. 더불어 인력거 라이더는 여행 코스를 달리는 이동 수단뿐만 아니라, 문화관광 지식을 습득하고 손님에게 가이드, 문화 해설사에 손님의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선 사진사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이렇게 문화 여행 가이드 역할까지 하는 인력거를 한 시간 타는데 요금은 1인당 2만5000원이다.

여성 고객을 위해 따로 준비했다는 인형

여성 고객을 위해 따로 준비했다는 인형

여행 코스도 재미있게 구성해 놓았다. '역사 코스'와 '로맨스 코스', '166번지 코스' 등 세 가지다. 어르신들에게는 옛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과거를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 코스는 창덕궁 매표소에서 시작해 은덕문화원, 창덕궁 빨래터와 중앙고등학교, 북촌 문화센터를 지난다. 연인들이 즐기기 좋은 로맨스 코스는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동십자각, 갤러리길, 국립현대미술관, 헌법재판소, 가회동 한옥마을을 지나간다. '166번지 코스'는 정감 넘치는 한옥마을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여행길이다.

인력거를 타고 고즈넉한 옛 길을 달리면 마치 조선 시대를 여행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듯싶다. 보통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행하며 주중, 주말 모두 탑승 가능하다. 주로 금요일이나 토·일요일에 손님들이 집중된다니 사전예약을 하면 좋겠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선 자전거와 연결한 인력거는 문명의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이 '느림의 미학'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아직까진 한국인 손님이 많지만, 외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다고 한다. 파란 인력거가 노랗고 빨간 단풍이 든 돌담길 사이를 지나 안국동, 인사동, 북촌 한옥마을, 덕수궁 돌담길 등을 '사람의 속도'로 걷는 듯 달려가는 풍경이 낭만적이기도 하고 속도와 경쟁의 정글 같은 삭막한 도시가 새롭고 정겹게 느껴졌다.

○ 문의 및 예약 : 아띠 인력거 (1666-1693), www.rideartee.com

김종성 시민기자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인력거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