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이 시대 `작은 영웅`들을 웃기고 울린 이야기

시민리포터 김순자

Visit1,737 Date2012.12.27 00:00






올 한해도 끝을 향해 갑니다. 얼마 전까지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한 대통령 선거도 끝이 났습니다. 이 사회에는 힘 있는 슈퍼히어로가 필요하죠. 하지만 세상 곳곳에서 열심히, 남들이 봐주지 않아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리틀 히어로들 때문에 살맛나는 것 아닐까요?


지난 1년 서울 곳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온 시민리포터들이 바로 그 작은 영웅들을 찾아가 2012년 어떤 일로 기뻐했고, 어떤 일로 눈물을 흘렸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이들의 눈물과 미소야말로 우리네 소시민을 대변하는 것이니까요. 그 첫 번째는 시민리포터 한 분이 보내준 가슴 아프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서울톡톡] 몇 년 전 강서구 까치신문을 보다가 ‘좋은 이웃 실버인형극단원’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내 나이 예순이 넘다보니,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있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신문에는 ‘좋은 이웃 실버인형극단, 응시 자격은 65세 이상’이라고 쓰여 있었다. 딱 내가 찾던 것이다. 나는 3기로 합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영웅을 만났다. 1기 선배였는데 그 ‘언니’를 보며 백발을 휘날리며 공연을 다니는 멋진 노후를 다짐했다.


어느덧 4년이 흘렀다. ‘혹부리 영감’, ‘삼년고개’, ‘빨간모자’ 등의 인형극을 가지고 노인정, 어린이집, 고아원 등 오라는 곳은 어디든 갔다. 나의 영웅은 무려 아흔을 넘기고도 노익장을 과시했다. 유독 그 선배에게 마음이 간 것은 혼자 사는 독거 어르신이라는 말을 듣고부터였다.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주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계셨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결혼 1년 만에 남편과 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선배는 91세 나이에 비해 더없이 정갈하고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는 분이었다.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하면서도 그걸 아끼고 아껴 어려운 학생들에게 매달 후원금까지 준 분이다. 선행으로 대통령표창까지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10년을 백발의 인형극단원으로 공연을 다니던 분이 감기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몇 번의 검사를 거쳐 받아든 결과는 폐암 3기.


그때부터 나는 선배의 보호자가 돼버렸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너무 힘들어 하는 환자를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관객들 앞에 나가서 정정한 목소리로 “도깨비 역을 맡은 아흔 한 살의 김◯◯”라고 소개하던 어르신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는 계속 공연을 다녔다. 선배가 맡은 역할은 다른 단원이 맡아 했다.


인형극 단원으로 그렇게 10여 년을 즐겁게 공연 다니 던 것도 내려놓은 지 10개월. 화요일과 목요일 내가 공연 가기 전에 들러 “얼른 나으셔야 공연 다닌다”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면 “내 병이 좀 나아 공연을 다시 할 생각을 하면 즐겁다”면서 부지런히 약도 드시고 식사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여 더 슬펐다. 아이들에게, 외로운 노인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줄 수 있는 매 순간을 진심으로 기뻐하던 분이다.



며칠 전 옆집 어르신이 급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선배가 숨도 못 쉬고 정신이 없단다. 올 것이 왔다. 제발 내가 갈 동안만이라도 가시지 말라고 빌면서 달려갔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입원할 때마다 간병인을 보내주고 많은 도움을 주는 ‘방화2복지관’에 연락해서 도움을 청했다.


지금 아흔이 넘은 선배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힘겹게 생사를 오가고 있다. 내가 환자를 위해 해 줄 것이 없어 가슴만 아프다. 소리라도 지를 수 있으면 고통이 좀 덜할까 싶은데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인 내가 이렇게 곁을 지킨들 그 어르신에게 무슨 위로가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앞으로 길어야 2~3개월이라는데… 무슨 말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라 해야 할 지. 비록 가족 하나 없었지만 정붙이고 살던 집에서 정신을 잃고 실려 나왔는데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겠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래도 정리할 정신이 있을 때 말 해줘야 하는데 나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올해 10년을 보람되게 해오던 인형극을 내려놓고 못내 아쉬워하던 어르신이다. 지금 이 순간 어르신에게 필요한 건 초라하고 작더라도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매일 속으로 빈다. 병원비 걱정 안 해도 되니, 제발 가는 길 재촉하시지 말라고…







■ 2012년, 나를 기쁘게 한 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인형극을 보여 줄 수 있었던 매 순간

■ 2012년, 나를 슬프게 한 일?
  폐암으로 인형극을 내려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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