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커서 엄마 창피해할까봐 공부합니다!"

하이서울뉴스 조미현

발행일 2012.05.30. 00:00

수정일 2012.05.30. 00:00

조회 3,046


누군가는 '계절의 여왕'이라 노래했던 찬란한 5월이 끝나간다. 그리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이어 입양의 날과 성년의 날까지 모두 들어 있어 유난히 준비할 것도 많고 스케줄 짜기도 바빴던 '가정의 달'도 끝나간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다. 달력이 한 장 더 넘어가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느낌마저 들 것이다. 5월은 그렇게 언제부턴가 선물과 이벤트로 팡팡 채워야 하는 부담스러운 달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족에 대해 생각해 봤던가. 하이서울뉴스에서는 이 아름다운 5월에 그저 사랑만으로도 충분한, 아무런 선물 없이도, 아이와 단둘이 행복한 꿈을 꾸는 '작은' 가족들의 삶이 영근 곳에 다녀왔다. 바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 도담학교다.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구로구청 사거리에서 구청의 대각선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가 있다. 말그대로 서울에 사는 '한부모가족'에 대한 총괄지원을 담당하는 전문기관이다. 한부모가족이라 하면 흔히 '미혼모'와 '미혼부'를 떠올리게 되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손주가 이룬 조손가정이나 가장이 일시적으로 가정을 돌볼 수 없어 위기에 놓인 경우 등 생각보다 다양한 가족 유형이 여기에 포함된다.

센터에서는 2009년 6월 문을 연 이래 유선전화와 온라인상담실을 열어놓고 막다른 골목에 놓인 한부모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가령 "임신을 했는데 집에서 쫓겨났어요. 살 곳이 없는데 어떡하죠?"라는 소녀의 전화를 받으면 가장 가까운 복지시설을 소개해준다. 갑자기 엄마가 된 여성이 20대 이상이라면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길을 안내해준다. 여성가족부와 서울시 등 공공기관에서 하는 다양한 사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도 해준다.

하루에 문의하는 상담 건수는 통상 10~20건. 한 통화 당 30분을 훌쩍 넘기는 건 보통이니 '미혼모부자 지원기관사업' 담당자 외에도 13명의 센터 직원 모두가 전천후로 상담전화에 매달릴 때도 있다. 배가 불렀거나 출산 직후인 경우에는 직원들이 아예 방문상담을 나선다. 이러한 초기 위기 지원 외에도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을 지원하고,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편견없는 사회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인식개선 캠페인이나 인권교육을 하는 것도 센터의 영역이다.

편견에 가득 찬 또 한 사람의 일반인으로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입에 담기는 끔찍하지만, 왜 그들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입양이나 낙태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평생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실제로 부모나 교사가 상담 전화를 한 경우 문의의 초점이 아예 어떻게 입양을 하느냐, 심지어 아주 간혹 어떻게 낙태를 하느냐에 맞춰진 때도 많다고 하는데 말이다.

이영호 센터장은 그야말로 엄마 같은 대답으로 어린 엄마들을 대변해주었다. "올해로 4년째. 센터를 스쳐간 두리모들을 돌아보면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아이가 하나같이 없었습니다. 일찍이 돌아가셨거나, 가출한 뒤로 같이 살지 못했거나 한 거죠. 그러다가 난생 처음으로 자기를 사랑해주고 안정감을 느낀 상대가 나타난 거예요. 그 남자의 아이를 가진 거죠. 외부에서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상대가 자주 바뀌는 아이들이 미혼모라는 편견이 있지만 정작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책임감이 있는 겁니다. 나만큼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거구요."

정규학습반에 들어가면 약국 사무보조원 취업은 보장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의 가장 획기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도담학교는 전국 최초의 두리모(미혼모)·부 계속학습 지원 특화 대안학교다. 임신과 출산 전후로 학습 기회가 단절된 청소년들을 위해 정규 학습반과 검정고시 학습반 두 개를 운영하고 있다. 출석장학금 및 성적장학금도 나오고, 지각하지 않으면 일일 교통비도 지급된다. 공부하는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아늑한 보육실도 있다. 중식도 무료제공이다. 임신·출산 특성화 학교이다보니 정규 교과과목 외에 가정 시간에는 이유식 만들기를 배운다거나, 체육 시간에 임산부요가를 한다거나, 예술치료나 부모교육을 하는 식으로 대안교과가 진행된다.

두 반의 차이라면 학적이 있는 경우에만 정규학습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가장 큰 차이라면 정규학습반은 수업시간에만 충실하게 따라가도 약국 사무보조원 취업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센터와 서울시약사회가 협약을 맺은 덕분이다. 단, 정규학습반은 재적학교에서 신청하고 서울시교육청이 도담학교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므로 학교측의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예상 밖으로 학교 측에서 냉담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이영호 센터장은 그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희가 두리모들을 도담학교에 올 수 있게 하려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정작 학교 때문에 좌절한 적이 많아요. 문전박대 수준일 때도 있었어요. 우리 야경이를 정규학습반에 넣으려고 예전 학교를 몇 번이나 찾아갔는지 몰라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배우고 싶다는 아이에게 결국 기회를 주지 않았던 학교...약간의 배려만 있었다면 야경이는 지금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을 거예요."

"제 이름 진짜 특이하죠?"라고 여유있게 내뱉는 박야경(28) 씨는 도담학교 검정고시반의 자칭타칭 우수학생이다. 작년 추석 직후인가 한부모가족에게는 아기 기저귀와 분유를 무상 지원해준다는 정보를 듣고 무턱대고 이곳 센터를 찾아왔다가 학교 포스터를 보고 바로 등록한 경우다. "편해요. 여기도 학교잖아요. 그런데 원래 다니던 학교하고는 많이 달라요. 꼭 집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랄까..." 야경씨는 학교를 안 다니던 무렵부터 돈을 벌어 혼자 살았다. 아이를 낳고는 기초수급자 신청도 혼자 했다. 올해 3월부터는 무상보육 덕분에 영유아 전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게도 됐다. "오늘 아침 아기가 일어나니까 열이 나는 거예요.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안 오는 걸 보면 괜찮겠죠 뭐."

점심 때 되서 아이 업고 나타나도 반겨주는 학교

검정고시반에 등록한 학생은 야경 씨를 포함해서 총 4명. 그런데 오늘은 야경 씨 혼자만 등교했다. 도담학교 두리모들은 친정엄마나 아기 아빠 등 다른 식구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아기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가 아파도 결석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등교시간에 대해서만큼은 교과교사나 담임교사나 허용 범위가 넓은 것이 도담학교의 특징이다. 점심밥상을 차려 놓을 무렵 미소 지으며 아이를 안고 등교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데 이상하다. 11시 50분.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오전 과학 수업을 마친 선생님과 야경 씨가 교실을 나왔는데도 아직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담임교사인 윤신정 선생이 "오늘은 야경이 일대일 과외 날인가봐. 기회야!"하며 농담을 건넨다.

화수목. 일주일에 3일을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꼬박 세 과목씩 매달려야 하지만 야경 씨는 금요일에도 따로 공부하러 도담학교에 나온다. "올해 8월에 시험이 있는데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집에 가면 아이랑 놀아주고 먹이고 씻기고 잠들어야 2~3시간 겨우 책을 볼 수 있거든요." 그래도 공부를 굳이 해야 하는 이유는? "나중에 아이가 창피해 할까봐요. 취업을 하려고 해도 고졸은 되야 하고요." 정규학습반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야경 씨는 졸업장을 따면 바로 일을 할 생각이다. 동주민센터 자활사업인 장애인학교의 보조교사로 일하는 목표를 세웠다.

'나홀로' 엄마는 무엇이든 확고했다.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자신의 가정을 믿었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었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려면 아직 20분쯤 남았을 무렵 마지막으로 물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느냐고. '푸하하' 웃음이 돌아올 만한 뜬금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대답이 박하사탕같이 상큼하다. "얼음 씹어 먹어요. 턱이랑 이가 좀 아프기는 하지만 스트레스가 정말 풀려요. 기자님도 한 번 해보세요." 이런 게 젊음일까. 전국의 두리모 여러분들, 야경 씨처럼 '와자작' 얼음을 깨물어 버리듯 사회의 벽들을 하나하나 깨치고 나아가세요! 돌아오는 길은 또 왜 이리 경쾌하던지.


■ 미혼모가 아니고 '두리모'라고 불러주세요!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서 공모를 통해 '미혼모'의 새 이름을 내놓았다. '두리모'다. 네이버 사전에도 등재됐고, 언론에서는 이미 '두리모'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모전을 실시하게 된 이유는 '미혼모'라는 단어에 담긴 우리 사회의 편견이 생각 이상으로 뿌리 깊어서다. 이영호 센터장은 "2010년 도담학교에 다녔던 지연(가명)이 일이 있고서예요. 17세의 미혼모가 아기를 출산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공부를 한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했죠. 빵집을 차려서 아기와 함께 잘 살고 싶다는 포부도 가득했구요. 지연이 이야기가 기사로 나가면서 모두가 박수를 칠 줄 알았는데 악성 댓글이 난무했어요. 단지 지연이가 미혼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라며 회고했다. 다행히 당시 지연씨나 도담학교의 '미혼모' 당사자들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아기와 함께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두리모'들 화이팅!

문의: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 02) 861-3020, http://seoulhanbumo.or.kr, http://cafe.naver.com/seoulhanbu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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