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폐지 할머니 “도둑질만 빼놓고 다 해봤지만...”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승철

발행일 2011.12.23. 00:00

수정일 2015.07.01. 17:14

조회 3,819

“어떻게 이런 데서... 할머니가 사시는 집에 들어섰는데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식사라도 한 끼 사드리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아니라며 도망치듯 걸음을 옮기던 할머니의 작은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듯 겨울 바람이 더욱 매섭고 두려운 이웃이 있다. 착하고 여린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 위해 하이서울뉴스 시민리포터들이 따뜻한 마음을 고이 품고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온 사연은 하이서울뉴스에 소개될 뿐 아니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희망온돌 프로젝트’와 연계, 어려운 이웃에게 작으나마 도움의 손길이 미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저 그만 둘래요. 부끄럽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리포터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할머니가 수줍어하며 하는 말이었다. 79세 고령에 폐지와 버린 전자제품 등 폐품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이말순(가명) 할머니를 만난 곳은 강북구 송중동 시장통 길가에 있는 고물수집상 입구였다.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 겨울해가 저문 저녁 5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폐품 종이상자들을 작은 철제 운반 기구에 싣고 고물상으로 들어섰다. 오후 한나절동안 싸늘한 바람이 부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주워 모아 고물상으로 끌고 온 폐품 종이상자들, 그러나 할머니가 손에 받아 쥔 돈은 고작 1,800원이었다.

 

“2~3년 전에는 하루 수입이 잘하면 만 원씩은 되었는데 요즘은 폐품 줍는 사람이 많아 하루 5천 원 벌이도 힘들어요.” 돈이 떨어지면 그냥 굶는다며 자꾸만 사양하는 할머니의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할머니의 뒤를 따라나섰다. 길가의 가게 두 곳에서 한두 개씩의 종이상자를 할머니에게 건네준다. 고물상에서 500여 미터 쯤 떨어진 오현로 14길 할머니가 사는 집은 너무나 허술한 모습이었다. 도로 밑 축대 아래 공터 옆 담장은 온갖 쓰레기가 덮여 있고, 잠겨 있지도 않은 낡은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비좁은 통로에 폐품들이 쌓여 있어 발 디딜 틈도 없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백열등을 켜자 덕지덕지 종이를 붙인 허술한 두 개의 방문이 보인다. 한 개는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사는 41세 된 막내아들이 사는 방이고, 또 다른 방이 할머니가 거처하는 방이었다. 할머니의 미닫이 방문을 조심스레 열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너무 놀랍고 안타까운 방안 풍경이 펼쳐진다. 지저분한 이불이며 세간살이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방안은 한쪽에 취사용 싱크대가 놓여 있긴 했지만 방안 전체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방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겨울바람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은 할머니집 방문과 허름한 세간

 

너무 가난한 6남매 자식들, 도움 받을 수 없지만 기초생활수급대상자도 안 돼

 

“너무 부끄러워 방안에 들어가시자고 말씀도 못 드리겠네요.” 할머니의 민망해하는 모습이 참으로 눈물겹다. 할머니는 나이 40세 때 남편이 병사하여 홀로 8남매를 키우며 살다가 둘을 병으로 잃고 6남매가 성장했다고 한다. 가난한 살림에 6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막노동은 물론 노점상 등 도둑질 빼놓곤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는 것. 그러나 극심한 가난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어 자식들을 올바로 교육을 시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했다. 자식들도 모두 가난하게 사는 것이 엄마가 무능하여 교육을 시키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하는 것이었다.

 

“저 방에 사는 아들이 올해 마흔 한 살이지만 배우지 못하여 취직도 못하고, 장가도 못가고 혼자 살아요.” 할머니의 눈자위가 붉어지며 목이 잠긴다. 어쩌다 하루씩 막노동을 하러 나가지만 직업도 없이 마음씨만 착한 아들을 보면 할머니는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노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부양의무가 있는 자식들이 6남매나 있으니 기초생활수급대상자도 될 수 없어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하루 몇 천 원씩 버는 돈으로 겨우겨우 연명한다는 것이었다.

 

고장난 보일러도 고치지 못하고 추운 겨울을 나야하는 딱한 사정

 

방안에서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이불 밑에 손을 넣어보자 너무 싸늘한 감촉으로 몸이 웅크려진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난방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얼마 전에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중고품 보일러를 구해 설치했지만 또다시 고장 나서 포기하고 겨울을 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한다. 보일러는 대문에서 방 쪽으로 들어오는 비좁은 통로 한쪽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너무 불안한 모습이었다.

 

“엊그제 쌀이 떨어졌는데 이웃에 사는 고마운 분이 쌀 한 포대 사다줘서 굶지 않고 밥해 먹어요.” 폐지 주우러 다니느라 바빠서인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싱크대 위의 냄비며 식기들을 가리키며 말하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얼굴표정이 처연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막내아들과 둘이 세 들어 사는 방 두 칸이 전셋집이어서 그나마 거리에 내몰리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저 보다도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말끝을 흐리는 할머니의 착한 마음이 전해오는 듯하여 가슴이 먹먹해진다

 

“단돈 10만 원만 마음 놓고 한 번 써 봤으면 좋겠어요.” 며칠 남지 않은 해를 넘기면 80세가 되는 할머니, 평생을 힘들게 고생하며 살아왔지만 가난을 대물림하여 자식들까지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80세 나이에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복지사각지대의 한겨울 추위 속에 서있는 할머니에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해 보였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등록할 수 있는 ‘희망온돌 프로젝트’ 홈페이지

 

- 폐지 할머니를 만나고 온 이승철 리포터는 ‘희망온돌 프로젝트’ 홈페이지(http://ondol.welfare.seoul.kr) ‘도움이 필요한 이웃 등록하기’ 메뉴에 할머니의 사연을 정성껏 올렸다. 현재 희망온돌추진본부의 담당자는 이 사연을 확인, 할머니가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희망온돌 프로젝트’ 홈페이지에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사회단체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언제든 접속,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등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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