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의 영원한 `형님` 경찰관

시민기자 신성덕

발행일 2014.07.23. 00:00

수정일 2014.07.23. 00:00

조회 634

서울역 파출소 장준기 경위

[서울톡톡] 서울역 파출소로 한 노숙인이 찾아왔다. 그리고 한 경찰관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노숙인은 경찰관과 한참 얘기를 나누더니 이내 얼굴이 환해져 돌아간다.

노숙인과 얘기를 나눈 경찰관은 서울역 파출소 장준기 경위(이하 장 주임, 파출소에서 그를 장 주임이라고 부른다). 사실 장 주임은 서울역 노숙인들의 '대부'로 통한다.

면담 내용을 장 주임에게 넌지시 물으니 "그 분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준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면담을 마친 장 주임은 바로 빗자루와 청소 용구를 들고 서울역 광장을 돌며 청소를 시작한다. 헌혈의 집 입구에는 이미 노숙인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고 있다. 장 주임이 다가가자 모두가 일제히 일어나면서 '형님'이라며 반긴다. 장 주임은 이곳에 있지 말고 노숙인 쉼터로 가도록 설득한다.

장준기 경위가 이들을 깨워 노숙인 쉼터로 안내한다

그의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두 명의 노숙인이 술에 취해 그냥 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다. 이들을 깨워서 노숙인 쉼터로 안내한다. 그 때, 건너편에서 싸움이 벌어진다고 장 주임에게 바로 현장 신고가 들어온다.

그를 따라 현장으로 가보니, 노숙인들이 이내 장 주임을 알아본다. 장 주임은 서울역 부근에서 노숙하는 300여 명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나눈다. 싸움은 장 주임의 등장으로 바로 해결됐다. 장 주임이 가는 곳마다 노숙인들은 그를 형님, 아버지, 대부 등으로 불렀다.

이발 봉사

이번엔 한 노숙인이 다가와 머리를 깎아 달라고 한다. 이발 봉사는 매주 금요일마다 하는데 이렇게 수시로 원하는 사람에게는 즉석에서 봉사하기도 한다고. 파출소 옆 한적한 곳에서 노숙인의 머리를 깎아 준다. 이발 기계 4개, 가위 10개 등 이발기구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모두 장 주임이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찢어진 옷을 입고 그마저 벗겨진 채 서성이는 노숙인을 만났다. 장 주임은 그를 '노숙인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 데려가 샤워를 하게 하고, 새 옷을 갈아입힌다. 서울역 지하에 있는 노숙인 쉼터에서는 샤워를 할 수 있고, 혹한기·혹서기에 200명 이상이 쉬고 잠잘 수 있다.

서울역 파출소 앞, 한 노숙인이 장준기 경위를 찾아왔다

장 주임은 "처음에는 힘이 들었다. 차츰 노숙인과 가까이 지나도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전국에서 노숙인의 행방을 모를 때 나에게 연락이 오고 있다. 기쁘기도 하고 사명감을 느낀다.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전에는 노숙인의 인적사항을 기록으로 남겨 관리했는데, 지금은 노숙인의 인권문제 때문에 기록으로 남길 수 없다. 오로지 기억력에 의존해야 한다. 서울역 노숙인들의 인적사항이 내 머릿속에 아직은 많이 입력되어 있고, 노숙인과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역 파출소장 한봉진 경감은 "장 주임은 15년째 서울역 파출소에 있으면서 노숙인 관리와 더불어 파출소의 어려운 일까지 뭐 하나 부탁하면 못 하는 것이 없다. 가끔은 노숙인들이 파출소에 찾아와서 소장을 찾는다고 해서 나가보면 장 주임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노숙인들도 장 주임을 마치 큰 형처럼 느끼고 인정해 주는 것 같아 항상 든든하다"고 했다.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 주지 못하더라도 같이 비를 맞아줄 수는 있는 것처럼, 노숙인들에게 장 주임이란 존재는 그런 사람인 듯싶었다. 장 주임과 같은 마음으로 다가가니, 그들을 무조건 배척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도 결국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속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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