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바리스타, 그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 한 잔

시민기자 이상무

발행일 2013.09.11. 00:00

수정일 2015.12.18. 15:17

조회 2,442

[서울톡톡] '내 생애 에스프레소'는 커피 가게다. 그러나 여느 커피 가게와는 다르다. 이곳은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지원하는 홈리스 카페로, 서울시립 영등포 '보현의집'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바리스타 3인은 서울시 노숙인 자활프로그램을 통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보현의 집'은 노숙인을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노숙인 자활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현재 250여 명이 자활 교육을 받고 있다. '내 생애 에스프레소'를 관리하는 최용선 복지사는 "노숙인이 보현의 집을 이용하려면 영등포나 서울역에 있는 상담소(서울시 희망지원센터)를 통하면 된다"고 전했다. 이때 보건소의 건강진단서, 주민등록증 등을 통해 신원이 확실하여야 입소가 가능하다.

지난 6일, 카페에서 근무하는 바리스타 원종운(59세)씨를 만났다. 원씨는 2011년 5월 서울 영등포 보현의 집에 들어갔다. 보통 노숙인들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데 그는 밝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 주었다. 사진 촬영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Q. 처자식도 있을 텐데 어떻게 노숙자가 되었는지…

충남 예산이 고향입니다. 지방대학에서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건설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 후 다니던 회사가 여행사를 인수하게 되어 20여 년을 여행업에 종사하며 살았습니다. IMF 영향으로 여행사가 부도나면서 여행사 프리랜서 활동도 여의치 않자 집을 나왔습니다. 이후 몇 년간 거리를 떠돌았고, 그러는 동안 가족들과도 소식이 끊겼습니다. 노숙자 되는 게 별거 아닙니다. 노숙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는 겨울이면 사우나를 이용하고, 여행을 좋아해서 기차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Q. 보현의 집은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저는 좀 특이한 경우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2011년 4월,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려다가 다른 노숙인과 어울려 밤을 새웠어요. 다음 날 영등포역 앞 노숙인 상담소(희망 지원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상담소에 갔습니다.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20일 정도 지나서 연락이 왔지요. 그렇게 2011년 5월 19일 입소 허락을 받았습니다.

Q. 쉼터에서 받은 교육은?

쉼터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철학과 문학을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에 들어갔어요. 주 1회 6개월 간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듣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습니다. 한 번은 벚꽃 아래서 부모와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고 '의자'란 시를 썼는데,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수필도 쓰고 싶습니다.

Q.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면서 어려웠던 점은?

단어들이 생소해 외우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동작이 젊은이들보다 둔해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리스타 2급 자격증 교육과정엔 10명이 참가해 3명이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Q. 다른 노숙인에게 희망을 주는 얘기를 해 주시죠?

노숙인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술과 도박입니다. 내일만 보지 말고 1달, 1년 후를 보고 절제하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큰 욕심 버리고 자기 나름대로 조그만 목적과 희망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차근차근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배우면 만족도 느끼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차근차근 저축해서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돈을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면서 생활하고 싶어요. 가족들과는 가게를 내서 더 성공하면 그때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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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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