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번 돈으로 동생이랑 오빠에게 용돈도 줬어요”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1.08.25. 00:00

수정일 2011.08.25. 00:00

조회 2,875

도봉구 방학동에는 지적장애 청년들 다섯 명과 엄마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운영하는 맛있는 커피전문점 ‘세움 카페’가 있다. 올해 3월 24일 문을 연 세움(세상을 움직이는 힘) 카페는 현재 5개월째 성업 중이다. 세 명의 지적장애 친구들이 커피를 만들고, 한 명의 친구가 생과일주스를 만든다. 또 다른 한 명은 커피와 과일주스를 손님 테이블로 옮기는 일을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달 8월엔 엄마들을 도와 빵과 쿠키를 만드는 일을 할 지적장애 친구 두 명이 이곳에 취업했다. 지난 4월엔 한 달 조금 넘게 일해 43만원의 첫 월급도 받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에 월급이 들어왔고 감격한 친구들과 엄마들은 통장을 복사했는가 하면 사진도 찍어 놓았다. 한 엄마는 한 달 동안 고생한 친구에게 체크카드도 만들어줬다고 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옷이랑 신발이랑 필요한 것을 사는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면서 말이다. 오빠랑 동생에게 용돈을 준 친구도 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청년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1~2급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그 평범한’ 일이 얼마나 많은 훈련과 긴 시간이 있은 후에야 얻어지는 소중한 일들인지 세움 카페 일곱 친구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이 잘 모를 것 같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일을 얼마나 뿌듯해 하고 좋아하는지 몰라요. 표정으로 나타나요.” 세움 카페 윤경희 대표의 말이다.

3년을 준비해 탄생한 아름다운 카페

세움 카페는 담쟁이넝쿨이 근사하게 휘감긴 벽돌색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1층은 아름다운가게 방학점이 있어 아름다운가게와 출입문을 함께 쓰고 있었다. 1층에 들어서자 “커피 한 잔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보여 주세요”라는 문구가 발길을 2층 세움 카페로 안내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면엔 네모난 게시판 주변으로 이름들이 새겨진 작은 나무 조각들이 오밀조밀 약 3백여 개가 넘게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세움 카페를 후원한 후원자들의 이름을 세움 카페 친구들이 나무 조각 하나하나에 감사한 마을을 담아서 적어 붙여 놓은 것들이었다.

세움 카페 안에 들어서자 유니폼과 앞치마를 근사하게 두른 지적장애 청년들이 주문 들어 온 커피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매니저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숙련된 동작이 여느 카페의 바리스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카페 바로 옆 제과제빵실에서는 엄마들 세 명과 두 명의 지적장애 청년들이 빵과 쿠키를 만들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후 2시엔 세움 카페가 자랑하는 웰빙 쿠키와 롤, 흑미 식빵이 나온다.

파이팅 외치는 세움 카페 주인공들(좌), 후원자들 이름이 새겨진 나무조각(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서민영 복지사는 “세움 카페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 고객들에게 솔직하고 정직한 맛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공정무역 커피와 우리 밀과 쌀, 과일 등 유기농 재료만으로 먹거리를 만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음료 가격이 이곳의 경쟁력이다”라고 말한다.

지난 3월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세움 카페는 준비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무려 3년을 준비해서 탄생했다. 지금까지도 장애인 복지관이 없는 도봉구에 1998년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이 개관하면 장애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장애우두레비전학교’가 생겼다. 지체장애인반과 지적장애인반 등 두 반이 운영됐다. 20대 장애 청년과 비장애 대학생이 1대1로 만나, 만남의 기회를 통해 관계를 증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첫 번째 목표는 장애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네 명의 대학생들이 집으로 찾아가 장애인 친구를 복지관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사회 적응 훈련과 관계 증진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직업 훈련에 초점이 맞춰졌다. 훈련을 통해 취업을 목표로 삼으면서 공동체 안에서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자 고심했다. 1년 과정의 장애우두레비전학교를 수료 한 후 장애청년들은 주간보호센터 혹은 월 5만 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 급여작업장 이외엔 갈 곳이 없었다.

서빙 연습 위해 바가지에 물 담아 나르기 1년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 고민을 거듭했고 지적장애청년들을 대상으로 2년 과정의 커피 바리스타 교육이 실시됐다. 엄마들도 합심해 함께 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적장애청년 다섯 명은 2년간 매주 토요일 커피바리스타교육을 받았고 1년 동안은 직업적응훈련을 받았다. 무려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빙하기에 체력이 약한 친구는 1년 동안 계단 오르내리기, 바가지와 냄비에 물을 가득 받아서 쏟지 않고 운반하기 등의 훈련을 받았다. 그동안 엄마들은 제과제빵교육과 사회적기업 양성기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컨설팅을 받는가 하면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사회적기업 양성과정을 이수했고, 지역의 사회적기업협의체 모임에도 참석해 정보를 공유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원예치료, 요가 등의 교육도 받았고, 공간 마련을 위해 1천여 만 원의 적립금도 모았다. 이들의 공동체 창업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은 재정적, 행정적, 교육 프로그램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적장애청년들과 엄마들은 이렇게 공동체 창업을 염두에 두고 착실하게 준비를 해 나갔다. 작년 말, 카페 오픈을 목표로 공간을 임대하고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최소 비용만 받고 인테리어를 책임져 준 업체, 아동벽화동아리 담쟁이가 그린 세움 카페 내부 벽화, 집수리아버지봉사단 도우기의 도배와 청소 도움, 재료비만 받고 모든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어 준 공공 예술팀, 1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400여 명의 지역주민 후원자들…

제과제빵실

인테리어 비용과 관리비 등 안정적인 기본 운영비를 확보한 세움 카페는 몇 만 원이라도 좋으니 매일 재료비만 꾸준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나기를 고대했다. 지적장애청년들이 계속해서 일할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세움 카페에 좋은 소식이 생겼다. 독립된 공동체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마을기업에 선정됐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인건비와 메뉴 개발 컨설팅 비용, 계속해서 훈련이 필요한 장애청년들이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비용이 마련된 셈이어서 운영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공동체 창업을 목표로 지적장애 청년들과 엄마들이 3년간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는 마을기업과 만나는 행운으로 이어졌다. 윤경희, 김정옥, 최정례, 강정남, 정영란 장애우두레비전학교 14기 학부모회 엄마들은 사업자 등록을 내고 사업자로 나섰다. 가정주부이며 아이들의 보호자에서 사회 활동을 당당하게 시작한 주인공이 됐고, 자신의 아이뿐 아니라 지역의 장애 청년들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주체가 됐다.

카페 매니저 한 명과 임사인(24), 이세미(25), 김정애(26), 이가영(24), 박상준(21), 최열매(28), 이윤숙(29) 7명의 지적장애청년들을 고용해 이들에게 일자리와 소중한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지적장애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의 다른 장애청년들에게 바리스타 교육과 제빵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며 창업에 관심이 많은 장애인 가족들에게도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세움 카페의 원활한 운영을 돕고 있는 서민영 복지사는 “세움 카페가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니라 서비스의 제공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일 뿐 아니라 장애 청년들의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거점 훈련센터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더불어 세움 카페가 성공해 제2호점, 제3호점을 오픈해 더 많은 장애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지역 사회가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세움 카페 : ☎070-4251-4264

#마을기업 #세움까페 #지적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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