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어김없이 쌀 300포 보내오는 할머니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황에녹

발행일 2013.01.25. 00:00

수정일 2013.01.25. 00:00

조회 2,271

[서울톡톡]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 말을 인용하고 있다. 리포터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성경도 모르지만 수십 년을 한결같이 남모르게 아름다운 선행을 해온 할머니 한 분을  알고 있다.

서울 중구 중림동 주민센터에 연말마다 나타는 할머니. 자신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20년째 해마다 쌀 300포(20kg)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온 박연이(77세) 할머니다.

지난 연말에도 중림동 주민센터에 100포, 고향인 경남 함양에 100포, 본인이 알고 있는 어려운 이웃에게 100포를 나눴다. 이같은 선행을 해온게 20년 째이지만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좋은일 하시면서 왜 그렇게 숨기세요?"라고 물으니 "내가 하는 일이 큰 일도 아닌데, 뭐하러 자랑을 해"라며 인터뷰 제의를 몇차례나 거절했다. 해마다 어떻게 아는지 신문사에서 전화가 와 거절하는 것도 힘들다고 하신다. 그러다 같은 봉사단체 회원인 리포터에게 "이제 나이들어 거절하기도 힘드네... 아는 사람이 부탁하는데 계속 사양하는 것도 미안하고..."라며 어쩔 수 없이 곁을 내주셨다.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 쌀을 나누게 되신 계기가 있으세요?
▲자원봉사를 하다보니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고. 더 옛날부터 이 일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렵게 자식을 키우다 보니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나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그래서 시작했지요. 20년 전 서대문구 충정로동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시청으로 가는 고가가 생기면서 중구 중림동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어 그 다음부터는 중림동에 기증한 거지요. 충정로동에 13년, 중림동에 7년 그렇게 20년 쯤 된 것 같아요. 몇 년간은 추석 때도 좀 나눴으나 지금은 연말에만 하고 있어요.

- 그럼 할머니 재산이 많으신가요?
▲내 이름으로 집이나 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돈이 많아서 하는 것 아니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모아서 한 일이에요. 환갑, 칠순, 매년 생일 때 자식들에게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쓰려고 하니 생일상 차리지 말고 현금으로 달라고 해서 은행에 넣었다가 연말에 어려운 이웃에게 썼지요.

- 자식들은 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아들이 넷 있어요. 사업하는 아들도 있고 회사 다니는 아들도 있고, 손자 셋에 손녀도 둘, 모두 모이면 대가족이지요. 어렵게 공부를 시켰지만, 우리가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항상 가르쳤어요. 그래서인지 아들들이 잘 따라 주고 있고 그 아이들도 소년소녀 가장이나 장애인을 돕는 등 나보다 더 많은 이웃을 돕고 있어요.

- 할아버지는 안 계시나요?
▲남편은 자식을 다 키워 놓고 몇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 그럼 평소엔 뭘 하며 지내세요?
▲봉사 활동이 가장 큰 취미지요. 봉사활동이 없는 날은 등산을 좋아하여 주로 북한산을 다녀요. 또 서예도 하고 집에서 꽃나무도 가꿔요.

- 보통 서예하시는 분들은 가훈을 자주 쓰시던데요.
▲여러 가지 좋은 글귀가 많지만, 가화만사성, 진인사대천명을 좋아합니다. 서예를 할 때 가화만사성을 가장 많이 썼어요. 집안이 화목한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가훈 덕분인지 집안이 항상 평안했어요. 아들, 며느리도 다 착해요. 왕래도 자주하고 서로 우애도 좋지요.

-쌀 기부 활동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언제까지 하기는? 죽는 날까지 해야지. 좀 더 많은 분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 되는 것을요. 자식들도 알아서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있어 우리 가정이 화목한 것이니, 나는 이웃을 도와 얻는 게 더 많아요. 해마다 쌀값이 오르지만 그래도 항상 연말이 기다려져요. 연말까지 더 많이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1년 내내 알뜰하게 저축하며 사는 것도 신이나요.  

중구 중림동 정희창 동장은 "박연이 어르신은 항상 말없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직접 봉사활동도 활발히 하신다. 이름 밝히는 것을 싫어하시는 숨은 봉사자시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일 말고도 더 많은 봉사를 하고 계실 것 같다"라고 전했다.

'욕심을 버리고 사는 것,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것'을 강조하는 박연이 어르신은 나이가 77세인데도 젊은이 못지않게 지역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돈이 있어야 자식에게 효도 받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는 돈만 모이면 모두 기부해버려 가진 것 없지만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고 있다. 나눔의 실천은 베푸는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큰 소득으로 돌아오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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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봉사활동 #불우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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