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형`을 보면 누구나 웃지요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현정

발행일 2012.11.29. 00:00

수정일 2012.11.29. 00:00

조회 4,059

[서울톡톡] 지난 2012 서울 등축제에 다녀왔다면 주제등인 한양도성등을 기억할 것이다. 도성 문을 지키던 수문장 인형을 보며, 그 꾸밈없이 순수한 표정에 미소가 절로 나오지 않았던가? 수문장의 위엄보다는 친근함이 느껴진 인형은 바로 우리 전통한지로 만든 닥종이 인형이다. 우리네 얼굴을 담아 푸근한 미소가 느껴지는 인형이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다. 그렇다면 한양도성등의 '귀염이' 수문장인형을 만든 작가는 누구일까?

한양도성등의 마스코트 인형을 탄생시킨 이는 바로 안정희 작가. 현재 한국 종이접기 협회 닥종이 조형연구회 연구회장이며 닥종이 조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작가이다.

야외에서도 끄떡없는 닥종이 인형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서울 시민인 안정희 씨의 활동반경은 전국구다. 약수동 연구소에서 전문가 대상 강의를 하고, 서울 신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성인대상 강좌도 진행하며, 수원과 영동 등 지방 곳곳의 초대전이나 행사에 초대되면 닥종이 인형과 함께 바로 달려간다. 이날 안정희 작가를 만난 곳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작가의 공방이었다.

공방 한쪽에서는 청계천 등축제에 전시되었던 바로 그 수문장 인형들이 보인다. 보름 이상 청계천 야외에서 전시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끔한 모습이다. 한지로 만든 인형이라 무척 약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세찬 비바람에도 손상되거나 때를 타지도 않은 모습이라니 무척 신기했다.

"생각보다 깨끗하죠? 제가 노하우를 좀 터득했어요.(웃음) 한지로 만든 것이라 먼지나 비바람에 약간의 손상은 입지만, 마르면 금세 회복 됩니다. 손상된 곳이 있으면 바로 수정할 수도 있고…."

안정희 작가가 야외 전시를 시작한 것은 2010년 서울 등축제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당시 G20 정상회의 참가 정상들의 캐리커처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 참가 한 것. 그해 서울시장 표창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인형을 밖에 전시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죠. 한지는 물 흡수를 정말 잘하거든요. 쫙 빨아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데, 제가 방수 처리도 하고 안에다 심도 세우고 해서 야외에서 전시를 시작했죠. 아마 비바람에 맞서 닥종이 인형 전시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예요."

이젠 외부전시가 두렵지 않다는 안정희 작가는 그녀의 닥종이 인형처럼 해맑게 웃어 보인다.

한겹 한겹 수만 수천 겹의 정성이 담긴 인형

닥종이 인형을 하나 완성하려면 초보자의 경우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작가인 안정희 씨의 경우는 급하게 제작의뢰가 들어오면 하루에 맞춰 완성하기도 하지만, 한지 한겹 한겹 떼서 손으로 붙여 만드는 것이다 보니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한다.

닥종이 인형을 만들려면 먼저 한지와 밀가루 풀이 필요하다. 기본 틀 없이 풀칠한 한지를 동그랗게 뭉쳐서 시작한다고 한다. 뭉친 한지에 눈, 코, 입을 만들고 팔과 다리를 만들고, 다듬어 피부를 입힌다. 머리카락을 붙이고 인형에 어울리는 옷을 입히고 소품을 만들어 부착하면 완성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한지를 한겹 한겹 뜯어서 붙이는 작업이라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제가 이렇게 뜯고 있으면, 보시는 분들이 어쩜 그렇게 맛있게 뜯냐고 하세요."

풀을 묻힌 한지를 가볍게 손톱만 한 크기로 뜯어내 붙이는 안정희 작가는 손놀림에도 따뜻함이 묻어 있다. 닥종이 인형은 이렇듯 수천 수만 겹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한지가 겹겹이 이어져 피부나 옷의 질감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때론 가볍게, 때론 거칠게…. 질감에 맞게 표현하는 노하우는 오랜 경험 속에 터득되고 자연히 쌓이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닥종이 인형은 한두 해 해서는 안 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야 한다. 닥종이 인형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짧게는 1년 반 정도 기간이 걸린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 많다. 실제 안정희 작가의 제자 중엔 10년 이상, 오랜 제자가 많다. 10년 이상은 되어야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고, 전시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시중에는 철사나 볼 등을 넣어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안정희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지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이 닥종이 인형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고 닥종이 인형이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인형이고 닥종이 인형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닥종이 외에 다른 것은 넣지 않고 있어요. 작가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심지어 눈이나 입 등 세세한 부분도 따로 채색을 하지 않고, 모두 한지로 표현한다. 좀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을 마다하고 전 과정 한지만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니 닥종이 인형에 작가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도 닥종이 인형 보면 웃는다

"닥종이 인형을 처음 보신 외국인들은 부드럽고 포근하고 따뜻하다며 너무들 좋아하시죠.(웃음) 닥종이 인형은 가장 아이처럼 만들었을 때 가장 예뻐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얼굴과 몸의 비율이 대략 3등신 정도 일 때가 가장 귀엽죠. 그래서 전 '어른도 아이처럼 만들어라'라는 얘길 많이 해요."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작가의 닥종이 인형을 들여다보자니, 작가와 인형이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50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비결은 닥종이 인형에 있는 듯싶다.

"닥종이 인형을 만들면 사람이 모가 날 수가 없어요. 처음에 무표정이셨던 분들도 이거 만들면서는 많이 웃으세요. 얘는 표정이 너무 웃긴다는 둥, 얘는 다리가 어떻다는 둥 하며 많이들 웃으세요."

실제 제자들 중엔 숨이 차서 걸을 수도 없었는데 인형을 하면서 건강해져 이젠 강의도 하고, 활발히 활동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10년 이상 닥종이 인형을 만들다 보면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되며 인형을 통해 치유를 받기도 한단다.

닥종이 인형은 치매 환자들에게도 치료 목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안정희 작가는 현재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를 안하고 있는 게 죄를 짓는 것 같더라고요. 뭔가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으니 마침 기회가 생기더군요."

성모병원 정신병동에서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간단하게 닥종이 인형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호박 열쇠고리나 메주 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는데, 모두들 열심히 한다고 한다.

작가는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자녀와의 대화가 부족한 요즘, 부모들을 위해 함께 닥종이 인형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는 것. 아이들 수업에는 작가의 닥종이 인형을 뜬 석고틀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끈기가 필요한 닥종이 인형 제작 전 과정을 아이들이 해내기엔 쉽지 않아 석고틀에 작업을 하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금천구 건강가족지원센터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엄마, 아빠 인형 만들기를 진행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꿈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주부에서 닥종이 인형 작가이자, 존경받는 엄마로...

"저도 엄마로 애 키우다가, 큰 애 초등학교 2학년 때 종이 접기를 하면서 일을 시작했죠. 한지가 너무 좋아서 한지그림도 했었는데, 일본 종이가 아니면 그림 효과가 나지 않더군요. 약간의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 때 접한 것이 닥종이 인형이었어요. 전통 한지로만 작업을 하는 닥종이 인형이야 말로 바로 제 일이다 생각했죠."

안정희 씨는 거의 매일 인형을 만든다고 한다. 작업을 하다보면 식사도 잊고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만 뜨면 들여다보는 닥종이  인형이다 보니 지겨울 법도 한데, 한번도 힘들다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아이 키우며 살림만 하던 자신을 성장시킨 것도 다 이 닥종이 인형이라니 그녀의 닥종이 인형 사랑은 끝이 없다.

"한지에 이렇게 풀을 먹이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몰라요. 한지 자체의 부드러움도 매력이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표현하며 힘들 때 어려울 때 정화가 되고, 살아가는 데 버팀목이 되는 것 같아요."

닥종이 인형 작품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식료품을 나르는 세모자의 인형도 가만 보고 있자니 그 안에 담겨진 소소하며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귀찮은 마음에 살짝 꾀를 내는 큰아이와 그저 뿌듯한 마음에 자랑스레 짐을 나르는 작은 아이, 도와주는 아이들이 있어 마냥 기쁜 엄마의 마음이 어우러져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이야기를 만든다.

닥종이 인형을 시작하고 처음 몇 년간은 예쁜 인형을 만드는 것을 배우지만, 작가들은 사람의 이야기, 미래의 꿈같은 것을 담는다고 한다. 안정희 작가는 이렇게 작품에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를 짧은 문구로 함께 적어둔다고 한다.

"인형을 만들다보니,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미운 사람이 없어졌어요. 모든 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는 인형을 만들면서 부쩍 주변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사람이란 얘길 많이 듣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 활동을 하며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거 하면서 돈의 가치가 저한테는 별 의미가 없어졌어요. 돈이 꼭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전 아이들한테 엄마는 돈이 없어도 '고품격' 인생을 산다고 얘기해요.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안정희 씨의 남편도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다소 무심한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늘 밖에서 아내 자랑을 슬쩍한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안정희 씨가 그 무엇보다도 보람으로 느끼고 있는 건 자녀들이라고 한다. 20대 중반의 두 자녀는 늘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존경한다고 얘기한다.

문득, 성인이 된 우리 자녀들에게도 존경받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돈보다는 높은 품격을 가지고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함께 웃을 수 있을까? 닥종이 인형의 해맑은 순수한 표정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 2012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남은 한 해 한번쯤 부모로서 자신을 돌아봐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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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인형 #전통한지 #한지 #안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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